세계일주 25일차, 인도 17일차
마지막의 마지막, 최후의 최후, 다사다난했던 17박 18일의 인도 여행이 정말 끝에 다다랐다. 우리는 그 끝을 타지마할로 하고 싶었다. 물론 실질적으로 마지막으로 가게 되지는 않았지만 타지마할에 도착한 순간 마음만은 우리의 여행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서 가까웠던 타지마할 동쪽 티켓 오피스에서 다소 비싼 가격의 티켓을 사고 무료 셔틀을 통해 동쪽 게이트에 내렸다. 저 문만 넘으면 타지마할이라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야기한다. 인도는 타지마할을 보기 위해서라도 가야 한다고. 어떤 유명한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류 문화유산 중 단 하나만 남겨야 한다면 자신은 타지마할을 선택할 것이라고.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을지, 스스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다. 동쪽 게이트를 넘어 몸수색을 철저히 받은 후 남동서 게이트의 교차점에서 마침내 타지마할의 정문을 만날 수 있었다. 거대한 규모의 대문 위에는 타지마할의 건축 기간인 22년을 의미하는 22개의 돔 장식이 있다. 담장 너머로 흘끔 보이는 순백의 건축물은 모든 방문객들을 흥분시켰다.
정문을 들어서고 채 밖으로 나오기 전, 이미 타지마할은 우리들의 눈 안에 들어온다. 그 색이 너무나도 비자연적이라 어디에서 보건 타지마할을 보지 못할 수 없다. 푸른 나무들과 물감을 푼 듯 파란 하늘 사이에 자리 잡은 백색 건축물은 도도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태껏 봐온 건축물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었다.
타지마할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해서 많은 여행객들이 알고 있을 터. 무굴제국의 문화적, 건축적 전성기를 이룩한 5대 황제 샤자한은 너무나도 사랑하던 황후 뭄타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2만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장장 22년간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어 낸다. 이 때 무굴 제국 상당 부분의 부를 탕진시키게 되는데 그 이유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들 아우랑제브 황제에 의해 샤자한은 남은 생동안 아그라 성에 유폐되고 만다. 아그라포트의 무삼만 부르즈에 유폐된 채 강 너머의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죽음을 맞이했을 샤자한을 생각하면 안쓰럽다가도 한 나라의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샤자한 왕의 그러한 악명 때문인지 샤자한과 타지마할에 대한 괴담이 상당히 많은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타지마할의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와 관계자들의 손을 잘라 타지마할보다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이며 타지마할 이후에 지어진 상당수의 건축물에서 타지마할에 들어간 특징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동일한 인물들이 건설에 참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실은 한 나라의 지도자가 한 개인의 사랑을 위해 나라의 혈세를 탕진하고 백성들을 고통에 빠지게 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타지마할은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이야기와 비극적인 이야기가 공존하는, 굉장히도 아이러니한 장소다. 오히려 그런 아이러니함이 전 세계 사람들을 더욱더 매료시키는 것이 아닐까.
(좌)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스크. (우) 메카를 향해야 하는 모스크와 완벽한 대칭을 만들기 위해 만든 동쪽의 영빈관. 서쪽의 모스크만 세수를 위해 연못에 물이 차있다.
타지마할과 아그라포트의 일정을 끝으로 우리는 다시 델리로 돌아갔다. 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밤을 보낸 우리는 마침내 애증의 인도를 떠나보냈다. 이제 인도를 넘어 좀 더 서쪽으로, 좀 더 서쪽으로 간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