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26~30일차, UAE에서 휴식 중
18일간의 인도 일정이 끝나고 몸과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휴식이 필요했고 친구 핑계를 대면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나기 전 조금은 긴 휴식 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6일간의 아랍에미리트는 과연 사막의 오아시스 다운 꿀같은 휴식이었다.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 중 하나인 아부다비에서 공부하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친구의 대학교로 찾아갔다. 아부다비 공항의 빠른 인터넷과 깨끗한 주변 환경에서 아, 드디어 현대 문명권으로 다시 돌아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18일이라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닐 텐데 8차선 왕복 도로를 타고 가는데도 마치 서울에 상경한 사람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리게 되었다. 역시 도시 체질은 어디 가질 않더라니.
넓은 검은색 승합차인 공항 택시를 타고 친구의 학교 앞으로 가니 친구가 마중을 나와있었다. 미리 방문 신청을 해놓은 터라 몇 가지의 절차를 거친 후 기숙사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재정비도 할 겸 짐을 꺼내서 빨래할 짐과 아닌 것들을 나누고 휴식을 취했다. 앞으로 6일을 있을 공간이었다. 이렇게나 아늑한 공간에, 6일씩이나 있을 수 있다니. 뭔가 집에 온 기분이었다.
사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별반 쓸 이야깃거리가 없다. 그냥 친구랑 수다 떨고 몰 가서 마냥 구경하고 카페 가고 한 게 전부니까. 두바이에서도 그냥 두바이몰에서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고 부르즈 칼리파 구경과 아랍 음식 체험이 전부였다. 여행을 목적으로 간 게 아니니 오히려 돌아다니는 것들이 더 귀찮았다.
그래도 아부다비와 두바이에 대한 감상을 조금이라도 남긴다면,
일단 오일머니의 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높디높은 건물들, 잘 깔려있는 도로들, 비싼 자동차, 끊임없이 공사 중인 바다와 사막들, 모든 것들이 오일머니로 만들어진,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었다. 그 규모가 너무 크고, 정말 도시 하나를 게임하듯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 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검은 돈이라는 게 이렇게나 무서운 존재구나, 싶기도 했다. 두바이는 조금 달랐지만, 정말로 아부다비는 마치 심시티 게임에서 치트키를 쓰고 건물을 지어놓은 것 같기도 했다.
또 신기했던 건, 어디든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 에미레이트 인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가게 등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노동자들은 모두 외국인들이었다. 그 인종이 황인종부터 흑인까지 너무 다양해서 내가 아랍국에 와있는 게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와서 일을 하는 걸 보면서 반기문 전 총장이 강연에서 한 말이 생각나기도 했지. 아무튼 여기는 아랍어를 쓸 필요가 전혀 없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여행객이 아랍인을 만날 일이 거의 없으니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뭔가 무서운 집착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두바이에 갔을 때 강하게 느꼈던 점인데, 뭐든 높게, 뭐든 화려하게, 뭐든 크게 지으려는 경향이 강하게 느껴졌다. 실제로 두바이 몰에 들어와있는 모든 브랜드들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 브랜드들이고 부르즈 칼리파 앞의 연못은 마치 수영장처럼 만들어진 인공 호수인데다. 그곳에서 하는 분수쇼는 최고 높이로 분사하는 분수라고 한다. 그렇게 최고 최대에 집착하는 것이 딱히 다른 것으로 내세울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두바이 몰 안에 그럴 듯하게 아랍식 거리로 꾸며놓은 것 하며, 마치 사람들이 '아랍'하면 떠올릴 법한 것들을 잔뜩 꾸며놓은 것만 같았다. 그곳에 진짜 '아랍'은 찾기 힘들었다.
사실 쉬려고 간 곳이었지만,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보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방문하길 잘한 것 같다. 항상 말로만 오일머니, 오일머니, 검은 돈 이랬지, 그게 실제로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어떤 일이 가능한지 느낄 수 없었는데, 그걸 실제로 보고 실제로 걸어보고 체험하니 그 대단함이 온전히 느껴졌다. 아랍에미리트 편은 앞으로 아부다비의 그랜드 모스크를 다녀온 이야기와 사막 투어를 다녀온 일지로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중동 여행 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