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멱 Oct 24. 2017

32 카라크 : 십자군의 기억을 품은 외로운 성채

세계일주 31일차, 요르단 여행 1일차

요르단

1일차

페트라 가는 길에 들른 케라크


오아시스에서의 휴식은 끝났다. 본격적인 중동 여행의 시작, 그 시작은 요르단에서.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만 해도 요르단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애초에 요르단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미국 비자 관련 문제 때문에 원래 가려고 생각했던 이란을 갈 수 없게 되면서 그 빈자리를 어디로 채울까 고민하던 중 친구가 툭 던진 요르단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찾아보니, 아니 이렇게 볼거리가 풍부한 나라를 여태 모르고 있었다니?! 일단 그 유명한 페트라가 요르단에 있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는 게 새삼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결정된 요르단 일정은 또 다른 친구와 함께 같이 가게 됐고, 함께 차를 렌트해서 같이 다니게 됐다. 본격 남북으로 종주하는 요르단 여행의 시작이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근처의 퀸알리아 국제 공항에 내린 우리는 현금 인출과 환전, 유심칩 구매, 렌터카 업체 일을 모두 끝내고 차를 인수받아 공항을 떠났다. 오랜만에 핸들을 잡는 거기도 하고, 타국에서 운전을 하려니 조금 어색하기도, 긴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르단 도로는 생각보다 상태가 좋았고, 도심 지역이 아니라 그런지 스트레스를 받게 하는 요소들도 거의 없었다. 유일하게 신경 쓰였던 점은 남부의 항구도시인 아카바까지 가는 걸로 추측되는 화물트럭들이 너무 많아서 피하고 추월하느라 좀 귀찮았던 것뿐.

우리는 도심 지역인 암만은 차 없이 여행하기로 하면서 여행 일정의 가장 뒤로 미뤄두고 바로 페트라로 남하했다. 꽤 남쪽에 있는 목적지까지 가면서 정말 처음 보는 광경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풀이 파릇파릇하게 자라기 시작하는 초원지대부터, 모래가 날리며 바위자갈산들이 있는 사막 지역까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지형들의 연속이었다. 그림 같은 풍경들이 참 많았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느라 사진으로 남기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페트라로 내려가던 중 우리는 케라크 성이라는 중세 성터를 방문했다. 굽이치는 계곡길에 있는 마을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케라크 성은 중세 십자군 시절 만들어진 요새다. 성경에도 나온다는 이 지역은 십자군 시절 이전에도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로 여겨졌는데 케라크 성 시절에는 '왕의 길'(요즘은 King's Way 라하여 도로가 정비돼 있다)을 따라 예루살렘의 성지로 떠나는 순례객들을 보호하고 무역로를 통제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는 많은 부분들이 폐허로 방치되어 있지만 성벽만큼은 단단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 멀리서 봤을 때 당시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높은 성벽 위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면 과거 12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맞붙었을 살라딘의 이슬람 군대와 십자군의 모습아 새삼 보이는 것 같다. 여행이란 항상 그렇게 새삼 상상을 해야 하니까, 그렇지 않으면 유적은 그냥 바위 조각에 불과하지 않을까. 새삼이라는 말이 참 중요하다는 게 또 새삼 느껴진다.

케라크 성을 지나 끝없는 사막지대를 통과하는 사막의 고속도로(Desert Highway)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페트라로 빠져나가는 표지판을 보게 된다. 해가 떨어지는 정서향으로 쭉 더 달리다 보면 사막이 끝나고 바위산 지대에 들어서게 되는데 그곳에 우리의 목적지인 와디무사가 있다. 홍해마저 가르며 유대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으로 향하던 모세가 계곡 통과를 거부당하면서 사막을 40여 년 동안 전전했다는 그곳, '모세의 건천'이라는 지명을 받은 와디무사는 페트라에서 1.5km 정도 떨어져 있는 마을로 페트라를 찾는 전 세계 여행객들의 베이스캠프다. 우리는 이곳에서 3박을 하기로 했다.
<이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31 아부다비(2) : 아라비아 사막의 태양 속으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