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멱 Nov 10. 2017

35 페트라(3) : 더 높고 깊숙한 곳으로

세계일주 33일차, 요르단 여행 3일차

요르단

3일차

페트라


페트라의 두 번째 날. 전날 좀 무리하기도 했고 중요한 것들은 다 봤으니 조금은 쉬엄쉬엄 볼 수 있겠구나, 싶어서 느지막이 아점을 먹고 점심쯤 들어갔다. 햇빛의 입사각에 따라서 그림자도 다르게 생기고 사암의 색도 약간 달라진다고 하더니, 확실히 점심에 걸어들어가는 시크와 알카즈네의 모습은 어제의 것과는 굉장히 달랐다.

파사드 거리를 지나고 왕실 무덤군 지역에서 로마 도심지역의 반대 방향으로 가면 산언덕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뭔지, 예상보다 너무 힘들었고, 예상보다 훨씬 높게 올라갔다. 족히 어제의 알데이르 정도의 높이까지는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한참을 산을 올라가면 최정상에 고대 페트라가 생기기 이전부터 원주민들이 제사를 지내던 제단 유적이 등장한다. 확실히 제단이 있을 법한 지형이었는데, 발밑으로 도시 유적이 한눈에 들어오고 심지어 산 너머로 와디무사까지 보였다. 지금은 바위 위에 제단이 있었다는 네모난 흔적뿐이 안 남아있지만, 주변의 풍경만으로도 이곳의 신성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은 손을 뻗으면 마치 닿을 것만 같았다.

내려가는 길도 한세월이었다. 워낙 가파른 바위산을 내려가는 것이라, 길이 나있는 게 약간은 굽이굽이 있는 것 같았다. 트레킹은 어제의 알데이르로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 못한 트래킹을 하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로마 병사의 무덤과 르네상스 무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이렇게 유사한 굴들이 산의 한 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런 유적들을 볼 때마다 과거인들의 삶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너무 궁금해진다.

무덤들을 지나 이제 삼십분 정도만 걸으면 다시 페트라 대사원이 있는 도시 중심부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거의 길을 개척하는 수준이었다. 분명 구글 지도에는 길이 그려져있긴 했다. 산길을 뜻하는 점선으로. 근데 그게 길이 만들어져있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트레킹 코스 같은 길이라 길과 흙의 구분이 없었다. 단지 길 표시가 돼있는 곳을 따라가면 안정적으로 걸어갈 수 있는 정도..? 게다가 워낙 오지인 탓인지 GPS도 정확하게 작동하지 않아서 결국에는 그냥 방향만 보고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으니 페트라 안쪽에서 생활하는 듯한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염소를 치고 있었는데 이들도 베두인들일까). 과거 거주구처럼 보이는 동굴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는데 진짜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사람의 흔적과 함께 우리들의 거센 두 번째 트레킹도 끝나고 우리는 대신전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이 뭐라고 내려오니 뭔가 도시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페트라를 떠나기 전 거대한 왕실 무덤들을 찾아갔다. 파사드가 공기 중에 개방되어 있어서 마치 녹아내린 듯한 모양으로 풍화가 꽤 심하게 진행되어 있지만 그 규모만큼은 어마어마하다. 왕실의 무덤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그 규모로 보아 페트라 사회의 상류층 가족무덤으로 추측하고 있다. 무덤의 주변으로는 인공수로의 흔적이 발굴됐다는데 수로를 이용해서 무덤 사이로 인공폭포를 조성했고 산 자들의 도시로 물을 공급했으리라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설명만으로는 사실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이렇게도 메마른 사막일 뿐이니. 화려했던 고대 도시와 너무나도 황량한 현재의 모습이 쉽사리 매치되지 않는 것이 왠지 조금은 슬픈 마음이 들었다.
<이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34 페트라(2) : 알데이르 & 나이트 페트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