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34일차, 요르단 여행 4일차
와디무사에서의 하루를 끝내고 우리는 좀 더 남하했다. 달의 사막인 와디럼을 가기 위해서였다. 생애 첫 사막에서의 밤을 보낼 생각에 굉장히 설렜다. 아부다비에서의 사막과는 완전히 다른 바위 사막인데다가 사진에서 보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어서 페트라 다음으로 가장 기대가 되는 곳이었다. 와디럼에서는 베두인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와디럼 공원 내부에 있는 베두인들의 럼 빌리지에서 가이드와 만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출발해 두 시간 가량을 달리니 와디럼의 산세가 나오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요르단 패스를 확인하고 공원 내부로 또 한 10분, 20분 정도 달려서 마침내 가이드와 만났다. 바위산을 올라가 아치 형태의 자연 다리를 올라가는 하이킹 코스를 선택한 사람들이 우리뿐이라 투어의 시작은 친구와 나뿐이었다. 저녁에 캠핑 사이트에서 나머지 사람들과 합류한다고 했다.
짧은 소개와 함께 차는 곧장 길이 아닌 사막으로 내달렸다. 가이드들만이 볼 수 있는 길들이 오묘하게 있는 것 같은 게 신기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마션의 촬영 장소로도 유명한 와디럼의 볼거리는 단연 넓은 사막 위에 거대하게 솟아있는 사암산들이다. 이게 어떻게 생겼나 싶을 정도로 그냥 커다란 바위가 땅에 박혀있는 것 같았다. 또 바람에 이리저리 깎여서 둥글둥글하게 물결치듯 문양이 있는 모습은 페트라에서의 광경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아부다비의 모래사막과도 확연히 달랐다.
아치 다리까지의 하이킹은 굉장히 힘들었다. 저 산을 올라가나, 싶었던 산 앞에 차가 멈춰 섰고 실제로 올라갔다. 사실 산행이라기보다는 그냥 바위 등반이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을 거 같은 바위였지만 미끄러지지 않는 표면 덕분에 가이드는 잘도 바위를 오르내렸다. 내리쬐는 햇볕에, 게다가 어제 그제 연속적으로 페트라에서 트래킹을 한 탓에 허벅지가 정말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중간중간 쉬면서 내려다보는 와디럼의 모습은 참 굉장했다. 이 고생을 하는 이유가 있구나, 단번에 납득이 가는 풍경이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하이킹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하는데 정말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시간 정도 갔나, 드디어 바위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어쩜 저렇게 완전히 다리의 형태를 할 수 있는지 자연이 빚어낸 예술작품이란 말이 아깝지 않았다. 그 위에 올라가 바위 사막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굉장히 벅차오르는 것 같았다. 정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은 완벽한 고요 속에서 사람들이 사막을 찾는 이유가 느껴졌다. 정말 인간의 손때가 묻은 그 무엇과도 단절된 이 상태가 알게 모르게 감동적이었다.
내려올 때는 간편했다. 점심시간이 되어서 바위 밑 그늘 자리에 자리를 펴고 휴식을 취하면서 점심을 기다렸다. 돗자리에 누워서 구름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을 보니 마치 손에 닿을 것 같아 손을 뻗어봤다. 와, 평화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점심은 가이드가 직접 끓인 스튜와 호무스같은 기본적인 중동식이었다. 그런데 너무 놀라웠던 건 거기서 뚝딱뚝딱-만든 그 토마토 스튜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치킨스톡이라도 부어 넣었나. 아무튼 정말 고기 하나 안 들어간 최고의 토마토 스튜였다. 거기에 약간 짭짤하게 양념된 참치가 정말 기가 막히는 조화였다.
점심을 먹고 차까지 모두 마신 후 우리는 남은 시간 동안 차를 타고 사막을 돌았다. 높은 바위에서 내려다본 사막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사막을 느낄 수 있었다. 피라미드와 같이 뾰족하게 생긴 바위가 있는 곳에서 사진도 찍고 높은 협곡 사이를 걸어 건너편으로 가기도 하고 조금은 낮지만 또 다른 바위 다리에 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 옆을 지나기도 했는데, 이 모든 것들이 다 자연이 빚은 예술품이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위대한 자연 앞에서 한낮 작은 미물이 되는 기분이었다.
우리의 캠핑 사이트는 동굴 안? 밑?(사실 동굴이라기보다는 약간 기울어진 바위 그늘 밑에서 자는 것)이었는데 그 근처에 사구(sand dune)이 있어 그 곳에서 잠시 시간을 보냈다. 주변이 넓은 평원인데 사구 하나가 서있는 지점이라 노을을 보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역시 시간이 되고 해가 기울자 차를 타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사구에서 좀 벗어나 캠핑 사이트 근처의 좀 더 높은 바위 위에서 노을을 기다렸다. 해가 기울고 하늘이 붉어지면서 모래 바위와 사막도 함께 붉게 물들었다. 바닥 이곳저곳에는 노을 빛과 바위산이 함께 만들어내는 그림자 얼룩들이 생겨났다. 기다리는 그 순간이 조금 춥기는 했지만 마음만은 낭만으로 그득해지는 순간이었다.
해는 금방 저물었고, 사막은 온전히 달과 별빛에 의존하는 어둠의 공간이 됐다. 페트라에서 느꼈듯 달은 마치 전등을 켜놓은 것 마냥 밝았고 그 이틀 사이에 더 차오른 달은 더 밝아진 것 같았다. 캠핑 사이트는 신기하게도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아 전혀 춥지 않았다. 오히려 피워놓은 불이 워낙 강해서 덥기까지 했다. 그곳에서 나중에 합류한 4명의 동행을 만났고 여러 이야기도 하고 베두인식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3명은 브라질에서 온 가족이었는데, 아버지 어머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지 그들이 포르투갈어로 우리에게 이야기하면 20, 30대 정도로 보이는 딸이 우리에게 통역해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나머지 한 명은 남수단에 있는 NGO에서 일하고 있는 잉글랜드 출신 남자였는데, 휴가차 요르단으로 여행을 왔다고 했다. 전쟁 지역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내심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빛이 매우 강했지만 정말 어떤 공해, 광공해도 없는 사막 지역이라 별이 정말 많이 보였다. 페트라에서 참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거기보다 별이 더 많았다. 더 기가 막힌 일은 새벽에 벌어졌다. 우리는 조금 일찍 잠들었는데 새벽에 갑자기 눈이 떠졌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4시쯤 되는 것 같았는데, 하늘에 정말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안경을 쓰고 다시 확인하니 얼룩덜룩한 것이 별들 사이로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가방을 열고 카메라로 하늘을 찍어봤다. 예상대로 은하수였다. 이렇게 환상적일 수가 없었다. 밤하늘이 이렇게나 아름답다는 걸 느낀 건 처음이었다. 우리들은 이런 환상적인 하늘을 잃어버렸던 거구나. 초점을 맞추고 밤하늘을 몇 번 찍었는데 갑자기 은하수의 형태가 옅어지기 시작했다. 동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몇 분의 차이로 사라질 정도로 민감한 존재였다니,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세상 충만한 감동을 가슴에 가득 품고 다시 따뜻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새삼 동굴 밖이 굉장히 추웠다는 것이 생각났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