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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Apr 23. 2018

38 마다바&누보산 : 성스로운 모자이크의 도시

세계일주 36일차, 요르단 여행 6일차

요르단

6일차

마다바&누보산


사해에서의 고즈넉한 하루를 끝으로 우리와 사막을 함께 누빈 동지, 마쯔다를 보내줘야할 때가 왔다. 여행 처음부터 암만(Amman) 시내주행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렌터카를 반납하고 암만으로 들어가기로 했었다. 하지만 순순히 보내줄 수는 없는 법. 암만까지 돌아가는 길에 몇 몇 군데를 좀 더 돌아보고 차를 반납하기로 했다. 반납시간도 오후 6시까지 넉넉했다. 중간 목적지는 모자이크의 도시인 마다바(Madaba)다.


마다바를 가는 길에 유대 헤롯왕의 이야기가 있는 성채를 잠시 들렀다. 마차(카)에루스(Machaerus) 성터는 헤롯 대왕(Herodes the Great) 시절에 만들어진 성채인데, 그의 아들 헤롯왕과 세례자 요한에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 세례자 요한의 위세가 커지는 것을 두려워한 헤롯왕이 요한의 머리를 잘라버린 곳이라고 하니 종교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성채로 오르는 길과 일부 성곽 흔적만 남아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 없는 산봉우리들만이 그 날의 영광을 침묵 속에 간직하고 있다

로마 제국에 의해 성채는 파괴되고 지금은 간신히 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바위들과 성터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다. 높은 산봉우리 위에 만들어져있는 곳이라 사해와 이스라엘을 조망하는 전망대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이날은 날씨가 좋지 않아 파노라마를 볼 수 없었다.

성채의 흔적

마차(카)에루스 성터에서 내려와 왕의 길(King’s Way)를 타고 조금 더 달려서 중간 목적지인 마다바에 도착했다. 마다바는 비잔틴 시절부터 전해진 그리스 정교 중심지로 요르단 지역이 이슬람 영향권 아래에 들어간 이후에도 계속 그리스 정교 지역으로 남아있었다. 비잔틴 시절의 교회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고 그와 관련된 모자이크 유적도 상당히 많다. 그렇게 마다바는 모자이크의 도시로 많은 여행객들의 방문하는 도시가 됐다. 그 중에서도 마다바 고고학 공원(Madaba Archeological Park)는 중앙에 교회 유적을 중심으로 복수의 지역에서 출토된 모자이크 유적들도 다양하게 전시하고 있어 방문의 가치가 높다. 교회 유적의 바닥 모자이크 장식은 이후에도 능가하는 모자이크를 볼 수 없었을정도로 대단한 퀄리티를 자랑한다.

Madaba Archeological Park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성조지 교회에 남아있는 예루살렘 지도를 보기 위해서 마다바를 찾는다. 6세기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지도인 예라살렘 지도는 가톨릭 성지를 그리고 있는 성지 지도 중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지도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예루살렘의 세부묘사가 실제와 상당히 유사한데, 실제 방문한 예루살렘에서도 이 지도에 관한 이야기는 반복해서 언급된다. 이렇게나 중요한 유물을 실제로 보고 왔다고 생각하니까 괜시리 뿌듯해졌다.

(좌) 마다바의 거리는 한산했다 / (우) 성조지 교회
성조지 모자이크 지도, (좌)에 이집트의 델타 지역이 그려져 있다. (우)의 좌측에 성벽으로 둘러쌓여있는 예루살렘이 보이고 그 위로 배가 떠있는 부분이 사해(DeadSea)다.

자동차를 반납하기 전에 들르는 마지막 여행지로는 마다바에서 서북쪽으로 10키로 정도 떨어져있는 기독교 성지 누보산이다. 모세가 유대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수십 년을 황야에서 헤맨 끝에 약속의 땅을 바라봤다는 그곳. 모세는 스스로 유대인들을 이끌지 않고 그의 후계자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인도하게 했다는데, 모세 자신은 누보산에서 사라졌다고 성서에 기록돼 있다.

모세와 유대인들이 헤맸을 황야의 모습이지 않을까

누보산 정상에는 수도원 유적들이 발견되는 현재는 발견된 수도원의 유적지를 보존하며 계속 교회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놓은 성모 성당이 산 정상에 있다. 성모 성당의 정문은 모세가 가나안을 바라봤다는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그 끝자락에는 뱀이 십자가 조각을 감싸 오르는 형태의 조형물이 설치되어 이곳이 모세가 서있었던 자리임을 표시하고 있다. 그 옆의 안내판에는 이스라엘 방향으로 어떤 도시들을 볼 수 있는지 표시되어 있다. 수십 년간 찾아 헤맸지만 도달하지 못한 그곳을 발견한 모세의 심정이 어땠을까, 또 자신은 그곳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선지자의 기분이 어땠을까, 생각하니 뭔가 가슴이 먹먹해졌다. 막상 가면 별 거 없을 줄 알았는데,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었지만 그 느낌이 전해지는 것 같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좌) 모세가 뱀을 땅에 꽂아 나무지팡이로 만들었다는 고사를 묘사한 조형물 / (우) 이스라엘 방향으로 성서 도시들의 방향을 표시하고 있다
성묘 교회와 그 내부의 모자이크 유적

성지 순례를 오는 많은 인파를 뒤로한 채 우리는 여행의 시작이었던 퀸 알리아 공항으로 다시 돌아갔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숙소가 있는 암만 시내로 들어갔는데 첫 인상이 굉장히 놀라웠다. 작은 언덕 사이의 계곡을 끼고 생긴 도시는 마치 초원을 덮은 풀과 바위처럼 회색 흙빛 건물들이 대지를 가득 매우고 있다. 중동의 도시를 상상한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그저 혼란스러운 곳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반전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니 처음부터 기분이 좋았다. 역시 여행은 상상을 뒤집는 무언가가 항상 있다.<이어서>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시티스케이프는 예상외로 굉장히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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