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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Jun 10. 2018

39 제라시 : 중동에서 로마를 만나다

세계일주 37일차, 요르단 여행 7일차

요르단

7일차

제라시


요르단 여행의 끝이 보인다. 제라시는 암만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여 떨어져있는 작은 도시다. 암만처럼 둔덕 사이의 계곡에 자리잡은 작은 소도시에 수많은 여행객들이 몰리는 것은 다름 아닌 제라시 고대 로마 유적을 보기 위함이다. 그 규모가 상당히 크고, 마을과 꽤 가깝게 붙어 있어서 현재의 생활공간과 천년 전의 유적이 작은 하천을 사이에 끼고 기이하게 균형을 맞춰 공존하고 있다.


보통 암만에서 당일치기로 다녀오는데, 암만의 북쪽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제라시 고대 유적 앞에서 내릴 수 있다. 출발하는 시간은 딱히 정해져 있지 않고 미니버스에 사람이 적당히 꽉 차면 출발한다고 한다. 한시간 걸리는 거리를 족히 삼십분은 기다려서 출발했으니, 상황이 안 좋으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지도 모르겠다. 다시 돌아오는 버스는 알수가 없어서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암만의 도시스러운 풍경에 조금 적응됐는지, 또 다시 휑한 유적을 오니 뭔가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한적한 도로변에 내린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다. 그 바로 앞의 위풍당당한 하드리아누스 문이 제라시 유적에 앞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으니 길 잃을 것 없이 바로 들어가면 된다. 작은 주차장과 망한 것인지 단지 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기념품 가게들의 초입을 통과하면 드디어 하드리아누스 문 앞에 이르게 된다. 인생의 첫 로마 유적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문을 통과했다. 이제부터는 로마의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하드리아누스 문

하드리아누스 문을 통해 유적을 들어간다면 남쪽의 도시 외곽에서 북쪽으로 훑고 오르는 형태로 도시를 둘러보게 된다.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타원형 모양의 마차 경기장이다. 영화 <벤허>에서 나왔을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마차의 바퀴가 부딪히며 내는 파열음으로 가득했을 열정의 스타디움은 그저 고요한 바람소리와 그에 흐느끼는 잡초로 가득할 뿐이다. 경기장을 지나 도시 남문을 통해 들어가면 그 때부터가 진짜 제라시의 시작이다.

원형 마차 경기장

이탈리아 여행에서 로마 포럼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백번 공감하겠지만, 제라시 유적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보존돼 있으면서 심지어 어느정도는 도시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망자들의 공간에서 무기고, 상점가까지 다양한 변화를 겪었던 남문 앞의 거리는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을 구획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있고, 그 앞으로는 단을 높이 세운 신전 구역이 있다. 단 위의 언덕 위로 세운 신전은 그리스-로마의 주신인 제우스-주피터의 신전이다. 가톨릭과 이슬람의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이교의 성역은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높은 곳의 제우스 신전의 기품은 여전하다.

제라시 남문, 남문 안 쪽의 시장거리
제우스-유피테르 신정 영역

신전 구역에서 짧은 다리로 연결돼 있는 타원형의 광장은 도시의 중심이다. 열주로 둘러쌓여 시민들의 생활공간이었을 광장을 시작으로 로마도시의 메인도로(Cardo)가 시작된다. 광장과 마찬가지로 메인도로도 양옆으로 있었을 행랑의 지붕은 온데간데 없지만 석주들만이 남아 과거의 화려함을 속삭이고 있다. 그래도 로마의 도로는 여전히 남아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보존돼 도시의 형태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타원형 광장
제라시의 Cardo를 걸으며

도로를 따라 걸으면 과거 로마 제국기의 시장이었던 공간과 비잔티움 제국 때의 성당, 우마야드 왕조 때의 모스크의 흔적까지 다양한 시간의 중첩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역시 제라시 유적의 하이라이트는 도시의 주신인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시는 신전 구역일테다. 성역 입구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그 중앙에 다소 외로이 신전이 자리하고 있다. 화려했을 여신의 성역은 시간의 풍파에 쓸려나가 온데간데 없고 단지 어느 목동의 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는 잡초 무성한 초원이 됐으니, 이 또한 세월무쌍이렸다.

시장이었다가 염색소로 바뀌는 등 다양한 변화를 겪은 공간
비잔티움 제국 시절에 동방정교 성당이었던 장소
아르테미스-다이애나 신전 입구
아르테미스-다이애나 신전

북문까지 갔다가 언덕길로 선회해서 원래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메인도로를 거치지 않고 위쪽 언덕의 포장되지 않은 길로 걸으니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좀 더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지금은 그저 쓰러진 돌, 누워있는 돌, 엎어진 돌에 불과하지만 천년 전 화려했을 로마의 도시를 상상하니, 왠지 기분이 울적해졌다. 권력도 화려함도 다 한순간이구나. 두시간여의 관람을 마치고 다시 암만으로 돌아갔다<>

도시의 북문 너머로 민가가 겹쳐 보인다
북쪽 극장
폐허가 된 제라시는 여전히 발굴 작업 중이다
남쪽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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