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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Apr 23. 2018

퍼시픽 림 : 업라이징(2018)

거대 로봇 덕후가 부재할 때 생기는 일


거대 로봇 영화는 로봇 팬들에게는 닿을 수 없는 꿈이었다. 다양한 메카 물이 만화에서 뭇 청년들의 열정에 불을 지폈지만 어째서인지 영화로는 거대 로봇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은 거대한 열망의 더미 위에 탄생했다. 그리고 2018년, 그 10년 후를 다룬 영화 <퍼시픽 림 : 업라이징>. 그래픽은 한층 업그레이드됐고 괴수는 더 거대해졌다. 하지만 이 허전함은 뭘까.

본작은 전작으로부터 10년 후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정상화되는 속도가 빨라도 지나치게 빠르다. 세기말적 분위기는 <퍼시픽 림>의 가장 강력한 특징 중 하나였다. 판태평양방위군이 신경 쓰지 못한 지역들이 어떻게 무법지대로 변해가는지에 대한 짧은 내레이션이 앞에 깔리지만 인류의 존망이 걸려있던 전작의 세계관과 비교하자면 어린애 장난 수준이다. 후지산 밑의 미래도시는 에반게리온과 공각기동대를 연상시키며 세기말적 분위기를 풍기던 홍콩을 대체하지 못한다.

캐릭터의 부재도 아쉽다. 스택커(이드리스 엘바)와 롤리(찰리 허냄)를 섞어놓은 듯한 제이크(존 보예가)의 캐릭터 설득력은 비교가 부끄러울 정도다. 예거에서 내릴 수밖에 없던 롤리의 인트로가 강력했던 반면, 제이크의 사정은 그다지 흡입력 있지 않다. 마코(키쿠치 린코)를 연상시키는 아마라(케일리 스패니)는 진부할 따름이다. 스택커라는 멘토와 롤리와 마코라는 영웅이 부재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제이크와 아마라의 모습은 전작에서 종말의 앞둔 인류처럼 위태롭다.

<퍼시픽 림>만의 텍스처는 또 어디로 사라졌는가. 일부 관람객들의 불만사항이기도 했던 어두운 텍스처는 동시에 팬들이 꼽는 영화의 최대 장점 중 하나였다. 폐기된 예거 프로젝트를 재가동시켰다는 상황에 맞게 여기저기 녹슨 예거, 사령부 기계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기름내가 나는 것만 같았다. 검은 대양을 마치 하천 건너듯 가르고 지나가는 예거들의 모습, 카이주와 묵직한 한 판을 벌이는 거대 로봇의 둔탁한 움직임에서 우리는 흔히 말하는 진정한 '타격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전작의 텍스처가 사라진 영화는 흔한 SF메카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본의 후지산과 고층 빌딩을 배경으로 싸우는 장면은 마치 전대물을 연상시키기까지 했다(의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대략 맘에 들지는 않았다).

평이 갈리기는 하지만 킬링타임용으로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다. 다만 세간에 퍼지고 있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의 혹평은 뛰어난 형님을 기구한 운명이다. 올해 아카데미를 들었다 놨다 한 기예르모 델 토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영화, <퍼시픽 림 : 업라이징>이었다.<>


재미 0.7/ 연출 0.5/ 배우 0.5/ 각본 0.5/ 만족도 0.8
총 점 3.0 /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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