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위대한 엑소더스
스스로가 시작이자 끝이라고 매일을 되새기며 살아가는 대령과 그의 추종자들의 모습은 영화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대령은 지금 이 순간이 인간의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연에 복종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렇게 끝까지 인간이고 싶어 했던 대령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하며 끝까지 자연에 저항한다. 반면 인간의 실수로 태어난 시저와 그의 유인원 부족은 점점 인간화되고 쇠약해지는 인간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사라져가는 자와 미래를 잇는 자의 만남이 만들어낸 비극이 영화 <혹성탈출 : 종의 전쟁>에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다.
영화는 3부작 중 단연 최고의 영화였고, 너무 안 좋은 평을 많이 듣고 망설이다가 스크린 내리기 전 막차를 타고 봤는데, 정말 영화관 상영을 놓쳤다면 뼈를 치고 후회했을 영화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스케일은 많이 작았지만 유인원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함께 그 거대한 자연에 대한 연출 때문에 넓은 영화관 스크린과 정말 어울리는 영화였다.
몰입도는 두말하면 아플 정도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도 깜빡이지 못했고, 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유인원들의 리더 시저의 심리상태와 풍전등화와 같은 유인원들의 상황을 대변하듯 영화는 온종일 겨울이고 눈이 내린다. 그 때문에 전반적으로 굉장히 차분하지만 그 속에서 세밀하게 묘사되는 시저의 심리상태를 따라가다 보면 숨죽이고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전편에 비해 풍부해진 캐릭터들도 눈길을 끌었다. 이전부터 계속 등장했던 로켓부터 윈터, 레이크, 코넬리우스 그리고 시저의 부족 외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진화한 유인원 뱃 에이프(Bad Ape)까지 유인원 캐릭터의 다양성이 영화 자체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줬다. 게다가 어쨌든 신인류라고 할 수 있는 노바와 구인류의 대령까지 인간 캐릭터들도 이전에 비해 그 비극성이 한층 격해졌다. 특히 우디 해럴슨이 연기한 대령은 악역치고 생각보다 분량이 적었지만 그 짧은 등장만으로도 너무 강렬했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인물이었다.
시저 스스로의 변화는 영화의 중심을 이끌어 가는 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는 한없이 완벽한 리더로 묘사되던 시저 역시 감정적으로 진화하는 것을 보여준다. 계속된 노력에도 좌절하고 실패하면서 인간과의 공존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는 시저를 한 단계 도약시켜주는 과정이 유인원 부족 전체의 고난과 맞물리면서 시저와 그의 백성들을 새로운 시대로 인도한다. 그런 과정을 출애굽기에 빗대어 연출한 감독의 취향도 여간 악취향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
영화에 대한 찬사를 하면서도 극악의 악평들이 이해는 갔다. 일단 <종의 전쟁>, 원제로는 <War for the Planet of Apes>이면서 전쟁 이야기는 어디 간데없고 역경과 탈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애초에 영화의 재미란 기대치를 얼마나 충족시켜주는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목부터가 저렇게 돼 있는데 전쟁과 화려한 스케일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관객 기만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온전히 스케일적인 면만 보자면 오히려 대탈출을 감행하는 1편이 더 강렬한 기분마저 든다. 시원한 액션 영화를 기대하고 간 관객들에게 고뇌에 가득 찬 유인원만 줄곧 보여주니 그들의 지루함을 누가 보장해줄 수 있겠는가.
영화 자체의 완벽성과 별개로 살짝 아쉬웠던 점은 <종의 전쟁>이 이전 작품들과는 결이 너무 달랐다는 점이다. 여태까지는 시저와 유인원의 문제를 다루면서 다양한 사회 문제라든지, 서로 다른 것들의 공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었다면 3편은 그에 관한 것보다는 시저 스스로의 각성에 초점이 강하게 맞춰져 있는 것 같다. 한때 사랑했던 인간이지만 사라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는 연민과 슬픔에 대한 묘사가 잠깐 등장하기는 하지만 영화 전체에서 보자면 공기 정도의 분량이었다. <전쟁의 서막>이 있은지 겨우 2년 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을 그리고 있으면서 그 결과 내용이 너무 새로운 영화로 간다는 것이 영 시리즈 영화로써 맞지 않은 행보였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도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는 강렬한 여운이 있었다. 뭐라고 한 번에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영화였고 앞으로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중에 한 번 정도는 더 봐야 할 것 같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정말 3부작의 완벽한 결말이었다는 것이다. 소문에는 20세기 폭스가 시리즈를 이어가기로 결정했다고 하는데, 제발 찬사 받을 때 떠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