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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프롤로그

프롤로그를 써야 할 것 같아서 쓰는 프롤로그

by 이멱여행자

00. 프롤로그



살면서 남부럽지 않게, 아니 오히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세상을 봐왔다. 오랫동안 중국에 나가 살면서 넓은 대륙을 육로로, 국내선으로 다닐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컸을 테다.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살면서 동시에 타국과 타문화에 대한 공포도 확실히 적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이질적인 것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고, 이후 지구를 한바퀴 도는 결정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됐다.


그렇다. 나는 세상을 보고 싶었고, 세상은 너무나도 넓었다. 세계일주 이전의 여행 일자를 다 더하더라도, 200여일 남짓의,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은 기간동안 세상을 떠돌았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을 때, 꽤 많이 돌아봤더라,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리.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넓었고, 나의 발길을 기다리는 여행지 리스트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소크라테스가 말하길, 학문의 끝에서 자신이 아무 것도 모른다는 사실 단 하나만 깨달았다 했던가, 나 역시 기나긴 여행의 끝에서 무한에 가까운 세상을 그 목전에서 잠시 엿보고 왔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세상에 대해서 뭐라도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작디작은 지구라는 공간이 무한의 다양성으로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져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일테다. 세상은 분명 수백 수천 수만의 아름다운 스펙트럼으로 가득한 세계다. 스펙트럼들의 사이를 탐험하는 일은 한 개인의 작은 동심에서 서서히 퍼져나가는 ‘닮음’과 ‘다름’을 알아가는 과정은 분명 형언하기 어려울정도로 멋진 일이다. 그 ‘닮음’과 ‘다름’ 사이에서 내 인지의 지평은 안으로, 안으로 풍부해지고 넓어진다.


그 과정을 조금이라도 공유하고자 선택한 방법은 하나의 같은 카테고리로 서로 다른 여행지를 묶는 방식이다. 시간 순으로 보여주는 여행기와는 완전 별개로 좀 더 여행지 자체에 대한 감상과 의미에 집중할 수 있는 방식으로 연재하려는 생각이다. 답사기는 조금 장황하고 장소에 따라서 추상적인 감상이 많이 들어가 소소하게 읽기 부담스러운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이번 연재물은 한 편에 10개의 장소를 소개하는만큼 가능한 축약적으로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의 글을 쓰려고 한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A부터 Z까지의 단어를 순서대로 연재하면서 각 단어마다 10개의 여행지를 소개하려 한다. 과연 Z까지 잘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부디 답사기와 함께 ‘아재의 목차’도 끝까지 연재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글 / 사진 사진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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