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INE
03. Brine 소금물 (上) - 소금물을 개척하다
끝을 알 수 없는 공허한 어둠 속에서 파랗게 빛나는 푸른별 지구.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바다는 생명의 요람이자, 거대한 자연장벽으로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미지의 세계는 언제나 탐험 욕구를 자극했고, 바다는 가장 오래된 교역로로서 인간의 역사와 함께 했다. 바다는 미지의 위협과 달콤한 황금을 동시에 약속하는, 어찌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공평한 신인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비옥한 토지와 담수를 끼고 탄생했지만, 해양도시는 역사적으로 가장 부유한 도시었다. 수평선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염수의 호수는 인류에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약속했고, 기회와 모험을 찾는 이들은 그에 이끌려 수많은 해양도시를 건설했다. 이번 회차에서는 바다와 관련된 여행지 10곳을 소개하고자 한다.
전라남도의 중심도시, 목포는 엄연히 ‘항구’다. 남해안의 멋진 다도해를 품고 있는 목포는 항구라는 특성 때문에 일제의 수탈이 심했던 도시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옥한 곡창지대인 나주 평야에서 수탈한 곡식을 일본으로 운송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목포는 군산과 함께 일제 수탈의 전진기지였던 셈이다. 그런 이유로 목포는 지금까지도 일제의 근대 유산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도시 중 하나다. 유달산을 품고 있는 목포 원도심에서 일본영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 등 일제가 남기고 간 근대 유산을 찾는 것은 목포 여행의 색다른 재미다.
일본 열도의 최남단 오키나와가 일본에 복속된 것은 고작 1세기 전의 일이다. 조선, 베트남과 함께 동아시아 조공체계 속에서 해상무역을 통해 살아가던 엄연히 독자적인 왕국이었다. 류큐 왕국이라는 이름은 일제에 병합된 이후 지워진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오키나와는 슈리성 등의 흔적을 통해서 류큐 문화의 명맥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다. 아픈 역사를 알아가는 것도 좋지만, 오키나와 여행에서 바다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 세계에서 가장 큰 수조로 작은 해양생태계를 재현한 츠라우미 수족관은 물론, 직접 바다로 나가 다이빙으로 바닷속 물고기를 만날 수도, 먼 바다에서 혹등고래 가족과 인사를 할 수도 있다. 굳이 액티비티를 하지 않더라도 해안도로 위에서 만나는 오키나와의 바다는 충분히 찬란하다.
요르단 강과 함께 이스라엘-요르단의 자연 경계가 되는 사해는 한 때 홍해와 연결돼 있던 바다였다. 언젠가 바다와 연결이 끊어지고 사해는 고립된 호수가 됐다. 내리쬐는 사막의 태양은 쫄쫄-유입되는 수량으로 감당할 수 있는 세기가 아니었다. 그렇게 메말라간 호수는 해발 저(低)도의 ‘죽은 바다’가 됐다. 수면이 해안보다 400미터나 낮게 있지만 그 규모는 여전히 상당하다. 좁은 가로폭으로는 이스라엘 땅이 서쪽 너머로 눈에 닿지만, 길다랗게 북쪽으로 뻗어있는 바다의 끝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다. 사해의 재미는 뭐니뭐니 해도 몸을 띄우는 것일텐데, 그 재미는 실제로 체험해보지 않으면 평생 알 수 없을 것이기에 딱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물 자체가 몸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라 단순히 구명조끼를 입고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막의 나라 이집트에도 해양도시는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기에 건설한 수많은 알렉산드리아 중 남아있는 유일한 도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다. 지중해성 기후 때문에 날씨도 굉장히 좋고 관광 휴양 도시로 많이 개발됐기 때문에 본토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도시다. 카이로만큼이나 번화한 도시고 서구의 영향을 받아 근대 건축물도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서 높게 지은 건물들은 바닷바람의 영향으로 군데군데 얼룩져 있지만, 그 또한 알렉산드리아의 매력이리. 다만 고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절, 세상의 중심이라 해도 넘치지 않았던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다. 그 유명한 파로스의 등대가 있던 자리에는 중세 이슬람의 군사 요새만 있을 뿐,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그나마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고대의 대도서관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 지은 것이라도 있지만 복원된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모로코는 지중해의 길목에서 스페인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데, 배로 한 시간이면 넘어갈 수 있어서 많은 여행자들이 모로코와 스페인을 묶어서 여행하곤 한다. 그럴 때 반드시 들르게 되는 도시가 있으니, 모로코의 해양도시 탕헤르다. 유럽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도시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와 유럽 문화가 혼재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라케시, 페스, 또는 셰프샤우엔처럼 메디나(구시가지)가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간간히 보이는 유럽-이슬람의 혼합된 모습이나, 해안을 따라 마치 요새처럼 세워진 메디나는 분명 사막과 산 속의 도시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날이 좋으면 스페인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탕헤르가 아니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이리. (下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