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TYSCAPE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이자, 그 정수를 담고 있는 도시다. 메디치 가문의 비호 아래에 자유롭게 예술과 인문학을 뽐냈던 시대의 천재들의 정신은 르네상스 이후에도 남아 전 인류를 빛내고 있다. 그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을 차치하더라도, 피렌체는 또한 그 도시 자체만으로도 우아하고 품격이 있다. 천장 없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듯, 피렌체의 시간은 중세 언저리에서 멈춰있는 것만 같다. 붉은 지붕이 얕게 덮여 있는 중세의 도시는 인문학이란 원래 그렇다는 듯, 따스하고 포근하다. 피렌체를 조망하는 전망대는 여러 곳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미켈란젤로 공원이 제일로 손꼽히는 이유는 그런 피렌체의 감상을 가장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 아닐까. 잔잔히 흐르는 아르노 강과 따스한 이불을 덮고 있는 듯한 도시의 지붕선, 그리고 그 위로 튀어 올라있는 순백의 두오모와 종탑의 조화는 감탄을 넘어 감동을 일으킨다.
파리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인 샹젤리제 거리의 끝, 별 모양의 샤를 드골 광장의 가장 중심에 거대한 개선문이 우뚝 서있다. 개선문의 본 목적은 물론 전사자를 추모하는 것일테지만, 파리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는 단지 파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일 뿐이다. 티켓을 끊거나 뮤지엄 패스를 확인하면 긴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는데, 그 순간이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곧 만날 멋진 파리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잠시만 인내하도록 하자. 파리 구도심은 높은 건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개선문정도의 높이에서 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게다가 몽파르나스 타워, 에펠탑 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파리의 전경은 뭔가 2% 부족할터. 개선문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 도로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 그 밖의 주요 명소들을 모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미 여행의 첫 도시였던 토론토는 북미와 유럽의 차이를 실감한 곳이었다. 엄청난 빌딩숲은 말그대로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어, 햇빛조차 땅에 닿지 못했다. 좁은 바둑판 형태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빼곡히 자란 고층건물 숲을 걷는 것은 마치 거대 대나무숲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무가 아닌 숲을 봐야 숲의 진면모를 느낄 수 있는 법. 도시숲에서 조금 벗어나 토론토의 위세를 느끼려면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야 한다. 제이 레이튼 페리 터미널(Jerry Layton Ferry Terminal)에서 여객선을 타고 도시 앞의 섬들로 들어가면 비로소 거대도시의 전경이 한 눈에 담긴다. 토론토의 랜드마크인 CN타워와 함께 네모반듯하게 건설된 마천루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마천루의 도시를 이야기할 때 맨하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 허드슨 강의 거대한 섬 위에 건설된 거대도시는 20세기 미국의 풍요와 고도성장의 상징이었다. 엘리베이터의 등장과 함께 등장한 고층빌딩은 최초의 마천루 플랫아이언 빌딩을 시작으로 크라이슬러 빌딩, 록펠러 빌딩,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 등으로 맨하탄을 마천루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마차시대의 도로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근대 마천루와 현대식 고층빌딩들이 서로 뒤엉키며 만들어내는 독창적 시티스케이프는 다양한 현대예술의 영감이 되기도 했다. 그런 맨하탄의 전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아마 맨하탄 다리 위일 것이다. 다리의 철골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거대 도시, 그리고 그 밑으로 무심히 달리는 자동차의 모습은 복잡다단한 맨하탄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가장 멋진 장면이다.
샌프란시스코는 마천루로 유명한 도시는 아니다. 금문교, 파스텔톤의 낮은 주택, 언덕을 오르내리는 빨간 트램 등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것들은 ‘도.시.’적인 느낌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중심지에 밀집돼 있는 빌딩숲의 모습은 토론토와 뉴욕 못지 않다. 게다가 고층건물과 낮은 주택가가 완전히 분리된 모습은 샌프란시스코만의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런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시 중심에서 조금 벗어나 도시 동북부의 코이트 타워 전망대로 가야 한다. 타워에 올라서 보는 시티스케이프는 쨍하게 파란 물감 위에 그려놓은 그림처럼 느껴진다. 북에서 남으로 흘러내리는 형태의 언덕에 세워진 도시인 탓에 샌프란시스코는 유독 경사가 많은데 그런 경사가 만들어내는 높낮이의 차이는 시각적으로 더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