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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May 30. 2018

07. 묘사 : 보고, 느끼고, 그리다 (上)

[D]EPICTION


인간의 창조정신은 본능에 기인하는가, 문명화 단계에서 후천적으로 발전했는가. 인류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동굴벽화, 라스코 유적을 기점으로 우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참 많이도 그려댔다. 라스코 벽화가 순수한 창조정신에서 탄생한 것인지, 사냥에 대한 기록 내지는 염원으로 그린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동굴벽화를 기점으로 인류는 본 것을, 그리고 상상한 것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때로는 종교적 목적으로, 기록의 목적으로, 또 때로는 순수한 미술의 목적으로 수천년동안 발전한 우리의 예술작품들은 그 자체로 역사의 시간을 온전히 담고 있는 또 하나의 타임캡슐이다. 이번 편에서는 세계 곳곳의 인상적인 예술작품 10개를 소개하려고 한다


1. 요르단, 마다바 ‘마다바 지도’

(성조지 성당)

마다바 지도, 왼쪽에 예루살렘과 사해, 요단 강과 시리아 일부가 묘사돼 있고 우측으로는 이집트와 나일강 삼각주가 그려져 있다

요르단의 마다바는 예로부터 비잔틴 교회가 성횡했던 지역이다. 로마-비잔티움 제국 시절에 자리 잡은 종교는 이슬람 우마야드 왕조기에도 살아남아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비잔틴 교회의 영향으로 모자이크 유적이 곳곳에 남아있어 ‘모자이크의 도시’라고 불리는 마다바.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인 모자이크는 누가 뭐라 해도 성 조지 성당의 ‘마다바 지도’다.
6세기에 만들어진 모자이크 지도는 시리아부터 이집트 나일 강 삼각주까지 묘사하고 있는 거대한 성지 지도다. 현존하는 성지 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 눈에 띄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돼 있는 예루살렘의 모습. 세밀한 정도가 엄청나서 실제 예루살렘 구시가 유적과 비교했을 때도 잘 들어맞는다.


2. 이집트, 룩소르 ‘람세스6세 무덤’

(왕가의 계곡)

Describing Egypt의 화면을 캡쳐한 것.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풍화와 범람의 피해를 피해 아직도 어제 그린 것처럼 벽화가 생생하다

이집트에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이 언제였노라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왕가의 계곡을 유람할 때라고 이야기한다. 피라미드,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 등 이집트는 어느 한 순간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경이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왕가의 계곡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은 이집트 뿐만 아니라 그 어느 여행지의 기억과도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강력했다.
피라미드로 대표되는 고왕조 파라오들의 무덤과 달리 신왕조의 파라오들은 도굴을 피해 무덤을 계곡의 땅 속 깊숙이 만들었는데, 그것이 왕가의 계곡이다. 도굴을 피해서 만들었다지만 이미 거의 대부분 도굴돼서 무덤은 대부분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총천연색의 벽화는 지하에서 살아남아 수천년 전의 기억을 현대의 우리에게 전승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벽화의 보존이 뛰어난 무덤은 람세스6세의 무덤이다. 티켓을 추가 구매해야 해서 많이들 가지 않지만 단연 최고 수준의 벽화를 구경할 수 있는데, 도저히 4000년 전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정도의 벽화를 경험할 수 있다. 보존을 이유로 내부 사진 촬영은 불가한데, Describing Egypt라는 사이트에서 로드뷰처럼 무덤 내부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3. 스페인, 마드리드 ‘시녀들’

(프라도 미술관; 벨라스케스)

출처 위키피디아

프라도 미술관은 마드리드와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관이다. 스페인 왕실 소장의 미술 작품들을 한 데 모아 전시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작품들도 여럿 있지만 역시 스페인 작가들의 작품들이 수적, 질적으로 압도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다.
17세기 스페인 예술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대가 중 한 명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마스터피스를 마주 보는 순간은 참 오묘했다. 예상보다 큰 화폭의 그림 안에는 펠리페4세의 공주인 마르게리타 공주를 비롯해 여러 명의 시녀와 난쟁이 광대, 그리고 개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특이하게도 벨라스케스 자신의 모습도 보인다. 그 와중에 그림의 초점을 맞추는 인물이 시녀인지, 공주인지 알 수 없게 연출해놨고, 오히려 우리(관람객)을 향하는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관람객이 단지 실재하지 않는 평면의 공간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우리는 17세기의 그들을, 그들은 21세기의 우리를 보고 있는 듯한 모습은 ‘시녀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감상이다.


4. 이탈리아, 피렌체 ‘비너스의 탄생’

(우피치 미술관; 보티첼리)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은 메디치 가문의 후원 아래에서 마음껏 예술적 천재성을 뽐낼 수 있었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옛 메디치 가문의 궁전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각종 르네상스 미술품들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스터피스’라 불리는 예술작품들을 실제로 만나는 것은 언제나 놀라운 경험이다. 많이들 이야기하듯, 그들에게는 알 수 없는 아우라가 있다. 사실 ‘비너스의 탄생’은 별로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었지만, 역시 마스터피스의 아우라가 있었다. 보티첼리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비너스의 탄생’은 말로 다할 수 없게 따뜻하고 우아하다. 그림 속의 비너스는 아름다웠고, 그녀의 눈빛은 캔버스를 뚫고 내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눈빛, 과연 사랑의 여신답다. 그 이후로도 많은 그림 속의 여인들을 만났지만 ‘비너스의 탄생’ 속 비너스만큼 아름답고 우아한 여성은 만나지 못했다.


5. 바티칸 시국, ‘시스티나 소성당 천장벽화 & 최후의 심판’

(바티칸 박물관; 미켈란젤로)

(좌) 최후의 심판 (우)천장화 / 사진에 못 담는 것이 너무 아쉬워서 이렇게 엽서 세 장을 구매했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흔히 ‘신이 내린 조각가’라고 불린다. 조금 과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면 당장 짐을 챙겨서 바티칸으로 떠나라. 바티칸 박물관 투어의 가장 끝 일정인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벽화, 그리고 ‘최후의 심판’을 보는 순간, 신이 내린 조각가 뿐이 아니라 신이 그대로 현신했다고 해도 믿을정도다.
‘조각가’였던 미켈란젤로는 교황에게 사실상 ‘납치’되어 시스티나 소성당의 천장화와 벽화 작업에 돌입한다. 그 과정이 어찌나 가혹했던지 시스티나 소성당의 작업이 끝난 후 미켈란젤로는 평생을 반불구로 살아야했다. 하지만 결과물은 가히 신의 작품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천지창조의 순간부터 구약의 이야기들이 프레스코화로 높은 천장을 가득 채우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자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천장화가 신에 대한 경이와 숭배로 시선을 하늘로 향하게 한다면, 정면의 ‘최후의 심판’은 신의 권능과 공포로 심판자 앞에 신도들을 조아리게 만든다. 자비의 예수는 근육질의 무자비한 심판자가 되어 그의 어머니 마리아조차도 아들을 막을 수 없다. 이 모든 경이의 작품을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그린 것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下편에서 이어집니다)


글 / 사진 사진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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