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piction
미켈란젤로에 대해 이미 너무 많은 찬사를 쏟아낸지라, 추려야 할 것도 많은 상황에서 그를 두 번이나 언급하는 것이 상당히 고민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의 기억을 되돌아보건데, 도저히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만약 인류유산 중 단 한가지만 남겨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상’을 선택하리. 그것은 분명 절대 과장이 아니다. 산피에트로 성당에 들어서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거대한 성당에 압도당해 멍때리고 있던 중, 한쪽에서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나던 ‘피에타’를 봤다. 그 순간 도저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살아있는 존재의 아우라였고, 나는 그 속에서 영혼을 보았다. 누군가 마리아와 예수의 성령이 조각에 깃들어있다고 얘기한다면 그 또한 믿으리. 인간의 손에서 탄생했다고 믿기지 않는 아름다운 마리아와 애잔한 예수의 모습에서 그 누가 사랑과 연민을 느끼지 않겠는가. 20대 나의 나이에 걸작을 조각한 미켈란젤로는 이를 통해 신의 조각가가 됐다.
다른 화가에 비해 반 고흐의 초상화가 유독 많이 남아있는 것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전문화가 역시 인간인지라,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했고 보통은 모델을 섭외해서 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연습도 겸했는데 지독히도 가난했던 반 고흐는 그럴 사정이 못 됐다. 하는 수 없이 그는 거울을 두고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그림을 연습해야 했고, 그렇게 수백점의 자화상을 남기게 됐다. 그의 자화상은 가진 것 없는 환경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 할 수 없던 열정과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그의 사연을 알고 나니, 그동안 왜 그렇게 초상화 속 그의 눈빛이 서글픈지 이해가 됐다.
미술 작품에 있어 전시 연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면 오랑주리 미술관의 ‘수련 연작’을 보라. 지베르니에서 생의 마지막 30년을 머물면서 빛을 연구하던 장 클로드 모네에게 정원의 수련은 다시 없을 뮤즈였다. 지베르니 정원에서 그린 수련 그림만 250여개가 넘는다. 그만큼 다양한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 시리즈’를 감상할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은 오랑주리의 ‘수련 연작’이다.
두 개의 타원형 공간의 벽을 장식하고 있는 작품은 지베르니 정원을 파노라마뷰로 찍은 듯 관람객의 사방을 둘러싸고 있다. 수련을 그리고 있지만 오히려 수면에 반사된 꽃과 하늘, 그리고 빛의 산란이 주인공이다. 약간은 탁한 색감으로 푸른 빛을 띠는 그림은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감상이 달라 재밌다.
런던의 내셔널 갤러리를 간 유일한 이유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윌리엄 터너다. 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기보다는 영국 화가 중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알고 있는 인물이었고, 영화 <터너>를 통해서 조금 흥미가 생긴 점도 있었다. 네임밸류가 다른 유명 화가들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다른 나라의 미술관에서는 쉽게 볼 수 없어서 더 궁금하기도 했다.
미술관에 윌리엄 터너의 작품 수는 많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작품이었다. 캔버스 전체가 안개 속을 헤매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하지만 고요한 느낌보다는 안개와 구름, 또는 어둠을 헤치고 나가는 듯한 역동성이 엿보인다. 그 속에서 응축된 빛의 이미지는 렘브란트의 빛과는 또 다른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어릴 때 흔히 그림을 이상하게 그리면 “피카소처럼 그렸다”고 놀리곤 했다. 피카소의 작품을 실제로 본 이후부터는 더 이상 그런 농담을 하지 못할 것 같다. 피카소의 그림을 제대로 처음 접한 것은 파리의 퐁피두 센터였다. 피카소의 그림이 상당히 궁금했던 나는 큐비즘의 대가 앞에서 말문이 턱 막히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고, 일그러진 사람의 형상에서 마아우라를 느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로 마주한 피카소의 그림은 아름다웠다. 일그러진 형상 속에서 그 실체를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고, 매끈하게 그려진 그 어느 그림보다 우아하고 멋있었다. 그림이란 결국 외연의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관념에 한 방 먹이는 것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다. 그림은 그의 그림 중에서 가장 유명한 ‘아비뇽의 처녀들’.
글 / 사진 사진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