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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멱 Jun 13. 2018

09. 이집트 : 나일과 파라오의 신비 (上)

[E]GYPT


세계여행을 하고 돌아온 뒤로 항상 따라붙는 질문이 있었다 : 다녀온 곳 중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예상가능하면서도 역시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상당히 난처했다가 이내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냈다.

가장 좋았던 곳이라고 묻는다면 범위가 너무 넓고 모두 각자의 개성이 있어서 고르기 어려운데 가장 충격적이었던 곳을 하나 고르라면 고민하지 않고 이집트를 고를거야.


수많은 여행지 중 이집트는 영원히 잊히지 않을 기억을 선사해준 여행지다. 이집트는 여행객들의 위시리스트에 항상 올라 있지만 동시에 중동과 아프리카라는 이름 때문에 또 섣불리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다. 책과 영화, 사진으로만 접했던 이집트는 단지 그곳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지만 정말 모든 점에서 내 예상을 크게 웃도는 멋진 나라였다. E의 순서를 맞이해서 이번 회차에는 특별히 이집트(Egypt)에서 다녀온 여행지 10곳을 소개하려고 한다.


카이로, 공중교회(the Hanging Church)

수천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시간이 축적된 카이로의 지층 중 단연 가장 놀라운 모습은 카이로 구시가지(Old Cairo)에서 볼 수 있는 초기 기독교의 흔적이다. 흔히 콥트 카이로(Coptic Cairo)라고 불리는 카이로 구시가지는 초기 가톨릭에서 분화되어 나온 콥트교의 성지다. 안쪽 깊숙이 아기 예수가 피난왔다고 전해지는 아기예수 피난교회 등 천년이 넘는 초대 교회들이 즐비한다. 그 중에서도 공중교회는 이집트 콥트교회의 대주교좌 교회로 가장 중요한 교회 중 하나다.

공중교회는 전철 역에서 나오면 바로 앞에 있어 찾기 쉽다. 콥트 박물관과 옛 바벨론 성채 유적 옆으로 공중교회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얼핏 중동의 문양과 비슷하지만 위에 달려있는 십자가가 이곳이 교회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비교적 소박한 안뜰이 나온다. 그 앞으로 하얗게 솟아 있는 두 첨탑이 인상적인데 누가보아도 교회의 모양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어두운 색의 나무 의자들이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 나무 장식이든, 석주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인상적인 공간이다. 그 외에도 스테인드 글라스를 비롯해 수많은 종교 이콘화가 가득한데, 익숙하지 않은 콥틱 교회 성인들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있다.


카이로, 콥트 박물관(Coptic Museum)

‘천개의 미나레트의 도시’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카이로에서 고대 기독교의 흔적을 만나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흔히 중동이라고 하면 이슬람 일색의 땅이라고 상상하지 않는가. 이런 인식이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보여주는 곳이 바로 카이로다. 이집트의 콥트교 신자가 무려 10%를 넘는다고 하니 그 위세는 무시할만한 수준이 아니다. 이집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콥트교의 흔적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콥트 박물관이다.

콥트교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는 최대 규모인데 1908년에 설립됐으니 역사가 100년이 넘은 박물관이다. 언제나 종교분쟁의 위험이 도사리기 때문에 무장 경찰이 지키고 있는 문을 통과하면 한쪽으로는 카이로가 세워지기 이전의 옛 바벨론 성채 유적이 있고 정면으로 콥트 교회 형식의 박물관 정문이 보인다. 내부의 전시물들은 시대순으로 이집트 전역에서 발굴된 콥트 유물들인데, 그 모습이 굉장히 소박하면서도 독특하다. 돌에 조각한 여러 형태의 십자가와 에수를 비롯한 콥트 성인들의 그림까지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소장품은 박물관의 나그하마디 고대 문서다. 나일강 상류의 나그하마디 마을에서 발견된 이 문서는 3, 4세기 경에 작성된 문서인데 <신약성경>부터 플라톤의 <국가>까지 다양한 문서들이 콥트어로 적혀있다. 햇빛과 카메라 플래시에 의한 손상을 막기 위한 것인지 불투명한 유리상자 안에 보관 중이다. 십자가 모양으로 작게 투명한 부분을 만들어놔서 그 쪽에 눈을 대고 봐야 문서의 정체를 볼 수 있다.


카이로, 기자 피라미드

기자의 피라미드는 이집트를 상징하는 유적이면서 이집트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최대 목표이기도 하다. 약 4천년 전에 건설된 고대 이집트 구왕조 파라오의 무덤인 기자 피라미드는 수많은 피라미드들 중에서 가장 거대하고 유명한 세 개를 지칭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큰 쿠푸 왕의 피라미드를 대피라미드(Great Pyramid)라고 부르는데, 13세기 영국의 링컨 대성당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약 3000년간 인류 최고층 건축물의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그 외에도 기원전 2세기의 과학자 필론이 저술한 <세계 7대 경관> 중 남아있는 유일한 경관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의 <역사(Historia)>에도 쿠푸 왕의 대피라미드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문자로 된 사실만으로도 놀라운 점 투성이인 피라미드를 실제로 눈앞에서 마주하는 것은 상당히 오묘한 경험이다. 의외로 도심에 딱 붙어있다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너무나도 거대해서 마주하는 그 순간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다. 처음에는 그것이 생각 외의 실망감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작은 나무만을 보고 거대한 숲에 대해 실망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멀리서 피라미드 파노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도 반듯하고 완벽한 형태의 오면체의 피라미드 세 개가 놓여있는 광경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다. 상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현실적 충격에서 오는 무감각함은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든 경험이다. 그러기에 반드시 죽기 전에 피라미드를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이집트 민주화의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의 북쪽으로 아주 멋드러진 근대양식의 건물이 있다. 이집트에서 가장 중요한 유물들을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이집트 박물관은 피라미드 못지 않게 카이로에서 제일 중요한 여행지 중 하나다. 아니, 감히 말하건데, 가지 않으면 반드시 후회할 방문지다.

시대순으로 고왕조부터 최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까지의 주요한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유물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그에 비해 전시의 형태는 창고를 연상시킬정도로 엉망이지만, 그런 고대 유적을 유리창 없이 가까이서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오히려 아이러니한 축복이다. 모든 유물들이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보존 복원돼서 그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고대 이집트의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것은 미이라 전시실과 투탕카멘 무덤 전시실이다. 미이라 전시실은 추가 티켓을 구입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유리관 안에 있는 미이라가 당장 살아움직여도 이상하지 않으리만큼 오싹하게 생생하다. 투탕카멘 무덤 전시실은 왕가의 계곡의 투탕카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는 알 수 없는 영롱함으로 사람을 홀리는 마력이 있다. 아마도 앳된 나이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죽음을 맞이했을 어린 파라오의 비극이 황금마스크에서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투탕카멘의 미이라는 보존의 이유로 여전히 룩소르 왕가의 계곡 투탕카멘 무덤의 유리관 속에 전시돼 있다.


카이로, 신시가지

고대 이집트 문명부터 초기 기독교 교회, 중세 이슬람 문화까지 정말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카이로지만, 그 못지 않게 이집트 근대화의 최전선으로서 카이로의 신시가지는 또 다른 걷는 맛이 있다.

프랑스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후에는 영국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던 만큼 신시가지는 유럽풍의 건물들이 상당히 많은데, 약간 노란색으로 채색돼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의외로 신시가지 쪽은 도로도 깔끔하게 정비돼 있는 편이고 차량 소음도 적다. 거리를 걷는 것 자체가 괴로웠던 인도의 뉴델리를 상상해보면 정말 쾌적한 도시다. 고대와 중세의 역사 속 카이로를 경험하는 것이 여행자로서 제일의 관심사겠지만, 여행 온 도시의 현대적 감성을 느끼며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 역시 다시 오기 힘든 여행지에서의 소중한 경험이다.
(下편에서 계속)


글 / 사진 사진글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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