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GYPT
룩소르 여행은 크게 서안(West Bank)와 동안(East Bank) 여행을 나뉜다. 서안 지역은 예로부터 망자의 땅이라 하여 파라오의 장제전(미이라 제작 등의 장례를 위한 신전)과 왕가의 계곡 등 죽음과 관련된 땅이었다. 역사적으로 도시 발전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교통편도 불편하기 때문에 서안은 주로 숙소와 연계된 투어를 끼고 돌아보고, 동안은 자유여행으로 많이 다닌다.
룩소르, 메디나트 하부
람세스 3세의 장제전인 메디나트 하부는 서안에 위치한 신왕조 시대의 유적이다. 대부분의 신전이 일회성 신전이고(파라오의 미이라 제작) 걸핏하면 침수되는 나일 강 유역에 있기 때문에 온전히 보존돼 있는 장제전은 찾기 어렵다. 메디나트 하부는 그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라 여행자들에게 꽤나 인기 있는 장소다.
탑문(pylon)을 중심으로 안뜰과 석주실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수천년의 시간을 이겨낸 부조는 옛 파라오의 위업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어찌나 깊게 팠는지, 천년의 세월동안 가차없이 깎였을텐데도 부조는 여전히 깊숙하고 선명하다. 부조는 미지의 바다민족(Sea People)을 비롯해서 시리아와 누비아의 이민족과 싸워서 그들을 통치한 업적을 그리고 있다. 파라오 람세스 3세는 마치 거대한 거인처럼 신의 위엄을 드러내고 있다. 석주와 벽의 부조는 나일 강의 범람으로 색이 모두 벗겨졌지만 강물이 채 닿지 않은 천장의 색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천장의 색을 통해 당시의 신전이 어떤 모습이었을지 조금이나마 상상해본다.
룩소르, 하트셉수트 장제전
수염을 달고 남장을 하며 왕국을 통치했던 신비의 여자 파라오 하트셉수트. 그녀의 장제전은 다른 사원과 사뭇 다른 형태로 눈길을 끈다. 넓은 평야에 앉아 높은 탑문을 세워 마치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듯한 모습이 일반적인 사원의 모습이다. 하트셉수트 장제전은 배산임수라도 생각했던 것일까, 위풍당당한 돌산을 등에 끼고 3개의 층을 만들어 계단으로 각 층을 잇는다. 메디나트 하부의 안뜰 같은 역할을 1층 지붕이 대신하고 있다. 계단을 중심으로 정면을 바라보면 좌우로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윗단은 지진 때문에 파손된 것을 사암으로 복원한 것이라 약간 어색함이 느껴지지만 1층만큼은 3천년 전의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룩소르, 룩소르 신전
룩소르 동안의 룩소르 신전은 아멘호텝 3세 때부터 그 유명한 람세스 2세 때까지 구성된 신전이다. 3킬로정도 떨어져 있는 카르나크 신전의 부신전격의 성역이다. 동안은 생자의 도시이기 때문에 서안에서 봤던 신전들이 모두 파라오의 장제전이었던 것에 비해 룩소르 신전은 온전히 신에게 바치는 사원이다.
룩소르 신전은 다른 신전들과 비교했을 때 보존상태가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전면부의 탑문이 거의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어 룩소르 도심과 어우러지는 모습이 꽤나 멋지다. 탑문 양 옆으로는 원래 오벨리스크가 한 쌍 있었지만, 파리 콩코드 광장으로 떠난 짝을 그리워하는 나머지 하나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뜰에는 람세스 2세의 거상과 함께 열주가 안뜰을 감싸고 있고, 한쪽에는 아멘호텝 3세가 태어난 분만실이 있다. 신전의 하이라이트는 안쪽의 거대한 열주랑.
알렉산드리아, 카이트베이 요새
알렉산드리아를 상징하는 전설 같은 건축물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대등대(파로스 등대)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요새가 하나 있다. 카이트베이 요새는 파로스 등대가 완전히 파괴된 지 약 100여년이 지난 15세기 중반, 이슬람 맘루크 왕조의 카이트 베이 술탄이 건설한 군사 요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 이집트를 점령한 뒤로 군사적 기능을 상실했지만 이집트 근대화를 이끈 무함마드 알리가 군사 기지로 재활용하면서 요새는 부활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도 잠깐, 영국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를 폭격하면서 요새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20세기 중반을 거쳐 알렉산드리아 해양박물관을 세우는 등 대규모 재건 작업의 손길을 거친 카이트베이 요새는 구사일생으로 되살아나 지금은 알렉산드리아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변모했다.
비록 파로스 등대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으로 방문했지만, 요새 자체도 그런대로의 매력이 있다. 요새 중앙의 작은 모스크 자리부터 층층이 장병들이 주둔했던 방을 찬찬히 살피며 지나간 시간 속에서 옛 향기를 맡아본다. 방마다 작은 창이 있어 바다를 경계하도록 했는데, 지금은 비록 아름다운 지중해지만 그들에게 바다는 긴장과 경계의 대상이었을테다. 요새 성벽을 오르면 볼 수 있는 알렉산드리아의 스카이라인도 꽤나 멋지다.
알렉산드리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파로스 등대와 함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상징하는 존재였다. 수십만권의 장서를 보관했던 도서관은 당시 세계의 지식창고였고, 헬레니즘 세계의 학자들이 동경해 마지않던 대상이었다. 전성기 시절 도서관의 장서수는 70만 본에 육박했고, 이것은 1500년대 인쇄기술이 보편화되기 이전의 유럽 전역에서 보유하고 있던 장서 수의 10배에 달하는 숫자다.
도서관의 최후에 대해서는 아는 자가 없다. 초기 기독교도와 무슬림이 이교의 지식을 없앤다는 명목으로 도서관을 파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나 그 역시 불확실한 야사에 불과하다. 고대 이집트의 찬란한 문화적 성취를 상징했던 도서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새로운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그 자리에서 옛 정신을 잇고 있다.
알렉산드리아 대학교의 주도하에 새롭게 건설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국가 차원의 지원을 넘어 유네스코를 필두로 한 세계적 지원으로 2002년 개관했다. 고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위치로 추정되는 곳의 근처로 도서관 자리를 잡았지만 초현대적인 감성의 디자인 때문에 약간 산통이 깬다. 그럼에도 태양이 인간 사회와 문화 활동을 비춘다는 고대의 의미를 살려 떠오르는 태양을 형상화한 디자인부터, 전세계 문화권의 다양한 문자를 새긴 석판으로 모자이크한 외면 등에서 고대 도서관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진정성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