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일본인 모두를 위한 영화
'야만'
동양의 문명국이 되고자 했던 일본과 그 국민들은 제국주의라는 야만과 인간의 신격화에 눈이 멀어 아이러니하게도 야만의 지배를 받게 된다. 무엇인가 찜찜함을 느끼면서도 마치 눈을 가린 닭이라도 된 마냥 그들은 그 야만의 힘에 이끌려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두 손발 묶인 채 일렁이는 그림자만을 얌전히 바라보고 있던 그들의 앞에 자유로이 돌아다니며 알짱거리는 박열이란 존재는 그야말로 야만의 존재,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박열과 그의 무리만이 야만에 도전하는 비야만의 행위자들이다. 그들은 민중의 눈을 가리고 있던 권위에 도전하고 손발이 묶여있던 사람들의 밧줄을 풀어주려 한다. 그들에게 일본인 조선인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그들이 우물에 독을 타지 않은 이유다.
'망각'
망각의 문제는 우리들에게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영화의 마지막, 내무대신 미즈노는 박열에게 망각의 저주를 내린다. 그리고 그 저주는 적어도 나에게는,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까지 꽤나 잘 통하고 있었다. 박열이란 인물이 누군지도 전혀 몰랐고,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문장도 전혀 생소했고, 심지어 박열이 당연히 옥생활 중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게 잊혀간 투사들이 한 둘이 아니겠지. 영화는 '철저한 고증'과 '실존 인물'들을 영화 속에 표현함으로 망각의 저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의 극히 일부를 기억의 빛으로 밝혀준다.
전반적으로
감정의 굴곡이 심한 영화가 아니라 크게 재밌는 영화는 아니었고 동주에 비하면 감정적 동요도 적었다. 하지만 본인의 두 작품을 통해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준익 감독의 능력에 또다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큰 재미가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큰 감동이 있었고 끝난 후에도 그 생각에 눈물이 맺히는 작품이었다. 아직까지는 믿고 보는 이준익이라는 말을 계속 사용해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