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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Oct 14. 2022

제자리를 찾아서

새 학년. 새 교실. 가지런히 열 맞춰 놓인 책상들. 내 자리는 어디일까. 정해지지 않은 자리는 위험하다. 교실 뒷문에 서서 줄지어진 책상을 보며 가붓이 한숨을 내쉰다. 사실은 교문에서부터. 아니,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아니, 아침 밥상에서부터. 아니, 전날 밤 잠자리에서부터 초조했다. 어느 자리에 앉아야 할까. 어디서도 눈에 띄는 앞자리는 싫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뒷자리도 싫다. 벽에 붙어 모두와 차단된 듯한 4분단 오른쪽은 그중에서도 가장 싫은 자리이다. 어디에 앉는 것이 안전할까. 눈에 띄지만 거슬리지는 않는 자리. 미어캣처럼 서서 교실 안을 두리번거린다. 선생님이 얼른 오셔서 자리부터 정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어느 자리가 나의 자리일까. 


새. 관형사 ‘새’가 붙은 말에는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새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새 학년 새 학기는 매번 고단했다. 앞, 옆, 뒤의 아이들과 필연적으로 가까워질 수밖에 없으므로 ‘내 자리’에 연연했다. 한 교실 안에서 일 년을 같이 나야 하는 짝꿍의 정체가 중요하다. 같은 분단의 같은 줄을 나눠 쓰는 사이는 쏟아지는 포탄을 피해 요새에 함께 숨어든 전우와 다름없다. 교집합이 없는 짝꿍은 곤란하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같거나, 잘하는 과목이 비슷하거나, 하다못해 매점 취향이라도 통해야 한다. 새 짝꿍을 만날 때마다 성령이 임하시듯 독심술이 내리길 바랐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교실, 50명의 아이들 사이에서 유리된다는 것은 전사(戰死)한 것과 마찬가지다. 


학년을 거듭해도 고립에 대한 불안함은 줄어들지 않았다. ‘절친’이라는 이름으로 친친 감아 실패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 놓아도 다음 해가 넘어와 반이 갈리면 실을 성기게 풀어야 했다. 반 편성 발표날, 어린이집 문 앞에서 엄마와 헤어지기 싫어 울먹이는 아이 같은 나를 한 친구가 달랬다. 엄마처럼. 바깥세상은 온통 전쟁터인데 이 정도로 울면 어떡하냐고 진짜 엄마처럼 다그쳤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이니 고독을 즐겨보자고도 했다. 모질다. 모질게 독하니까 전교 1등을 하겠지. 쉬는 시간에 자주 보자는 맹맹한 말로 눈앞에 닥친 이별을 덮고 각자의 교실로 향했다.


고등학교 3학년, 대입과 새 친구라는 과업을 어깨에 메고 교실에 들어섰다. 안전한 자리를 찾느라 애가 달았다. 2분단 넷째 줄로 가 의자를 당겼다. 딸려오는 느낌이 살갑다. 상냥한 의자에 그새 정이 붙었다. 옆자리에 앉게 될 아이의 정체를 상상해보았다. 이윽고 도착한 짝의 첫인상은 정겨웠다. 다른 반이 된 또 다른 한 친구가 열성적으로 사 모으는 ‘딸기’ 캐릭터를 닮았다. ‘딸기’가 말했다.

“나, 너 알아.”

“어떻게?”

“너 이재원 팬이잖아. 전교에서 유일한. 유명해.”

“어? 아는구나! 너도 H.O.T. 좋아해? 팬들 사이에선 내가 희소성이 있지.”

  짝꿍은 대답 없이 교과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벌써 수업시간인가? 벽시계를 확인하고 힐끗 돌아본 짝의 교과서는 젝스키스 사진으로 싸여 있었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다. 행여 부딪치기라도 할까 봐 고장 난 로봇처럼 팔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 H.O.T.와 젝스키스라니. 가문의 원수가 같은 분단의 같은 줄에서 만난 것이었다. 로미오의 누나와 줄리엣의 언니처럼. 적과 함께 한 요새에 떨어졌다. 불안감이 난사한다. 합판으로 만들었을 매끈한 의자가 어쩐지 불퉁하다. 엉덩이가 찔린다. 이 자리는 위험하다.


유년 시절의 봄은 늘 떨림으로 시작되었다. 정해진 자리라는 ‘고정된 안정’을 보장받고 싶었다. 새로운 의자에 앉아 내 자리를 만드는 과정은 고립과 고독이 서걱거리는 일이다. 첫 소풍에서 돗자리에 혼자 앉게 될까 봐 불안했던 초등학교 시절, 혼자 버스를 타고 등교하게 될까 봐 무서웠던 중학교 시절, 수학여행 모둠에서 친한 친구들과 떨어질까 봐 초조했던 고등학교 시절, 혼자 강의실에 있게 될까 봐 동기들과 꾸역꾸역 수강신청을 맞췄던 대학교 시절. 소설 속 인물 유형을 분석하듯 나의 유년 시절을 살펴보면 혼자가 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의존형 인물’이다. 기저에 불안을 쌓아 둔 의존형 인물이 시기마다 친밀함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원수의 만남이었던 ‘딸기’와 나는 같이 매점에서 핑클빵을 사 먹고, 야간 자율학습을 도망치고 간 노래방에서 SES 노래를 함께 불렀다.


고정된 자리에서 고립되고 싶지도 고독하고 싶지도 않았던 의존형 인물의 절정은 결혼이었다. 안정의 완전한 고착이라고 여겼던 결혼은 고정된 자리와 한층 더 견고해진 고립과 고독을 불러왔다. 도시를 옮기고 곧바로 이어진 출산은 나를 남편 명의의 집에 붙박았다. 낯선 도시, 허허벌판의 언덕 위에 탑 같이 세워진 집 안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라푼젤처럼 혼자였다.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려도 아무도 잡고 올라오지 않았다. 고립과 고독으로 절여진 나날 속에서 육아라는 얇은 공통점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지만, 같은 도시에서 같은 연령의 아이를 키운다는 것만으로 두텁게 느껴졌던 인연의 끈은 조금만 세게 쥐어도 바스러지는 삭은 실이었다. 관계는 우연만으로는 땋아지지 않는다.


낯선 도시에서 인연의 끈을 꿰려 출산 전에 등록한 문화센터. 불룩한 배 위에 천을 올려 두고 배냇저고리를 꿰매는 똑같은 모습에 강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러나 임신부에서 엄마가 되는 동일한 과정을 통과하며 이어간 인연의 실은 삭고 말았다. 생의 시간이 몇 개월이 채 되지 않는 한 아기가 마찬가지인 다른 한 아기를 꼬집었을 때, 그 아기의 엄마는 말했다. 

“어머, 우리 아기 왜 그래. 쟤가 만만해서 꼬집는 거야? 호호.”

행동의 의미를 모르는 아기와 말의 의미를 모르는 어른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결이 맞지 않은 가느다란 관계를 손에 쥐고 연연하는 것은 고립되는 것보다 더 고독한 일이었다. 고립과 고독의 경계에 서자 비로소 심연에 바짝 다가설 수 있었다. 오롯한 내면의 탐구 덕분에 좋고 싫은 것이 명징해졌다. 외롭다는 이유로 가치관이 맞지 않은 이를 만나며 인생을 허비하기는 싫다. 관계의 단절을 결정하고 보니 「명랑한 은둔자」의 저자 캐럴라인 냅이 시리얼을 만들다가 문득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라는 문장이 떠올라 환희에 찼던 것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희열에 찬 순간이 찾아왔다. 적당히 밝고 적당히 잘 어울리지만 결이 맞지 않는 사람과는 같이 있고 싶지 않다. 그게 꼭 필요한 사람일지라도. 볼트와 너트처럼 꼭 맞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 진심을 다해 녹아들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은 혼자이고 싶다. 이것이 평생 고독을 기피해온 나의 정체다. 고립과 고독의 경계에 내 의자를 두고 앉아 나를 들여다보고 온전히 지키고 싶다. 침잠의 시간을 기꺼이 누리고 싶다. 심연의 물을 꺼내 보일 수 있는 이들에게만 머리카락을 늘어뜨리고 싶다.


학교라는 공식적인 제도 안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우연과 필연이 자물린 결과이다. 옆자리라는 우연에 같아서 좋은 것과 달라서 좋은 것의 필연이 한데 섞여 친해지는 것이다. 학교 친구처럼 같은 도시에서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비슷한 연령의 아이를 키운다는 씨줄에 함께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공명하는 날줄로 엮어진 이들이 있다. 둘째 아이가 백일일 무렵, 동네 소식에 깜깜한 내가 우연히 알게 된 주부 독서모임에 나갈 마음을 먹었다. 아기띠에 둘째 아이를 싸 매고 나간 그 자리에서 운명처럼 결이 비슷한 이들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오롯이 소개할 수 있는 자리라니 어쩐지 흥분됐다. 인중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각자 읽은 책에 대해 한참을 얘기했다. 자리가 끝날 즈음 용기를 냈다. 

“저기… 시간 되면 우리 얘기 좀 더 할래요?”

그날 모임이 끝나고도 자리에 남아 더 이야기를 나누던 이들과 지금까지도 종종 만나 삶을 나눈다. ‘구미’라는 도시에 자리를 잡은 지 12년. 그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시간 동안 때론 팽팽하게 때론 느슨하게 관계를 직조하는 친구들. 서로의 특질을 순일하게 존중하고 수용하며 옹호해주는 그들을 통해 나는 제자리에서 고립되지 않으면서도 온화하게 나만의 고독을 지킬 수 있다.


얼마 전 그들과 나눈 봄밤. 빔 프로젝트 화면에서는 맥 라이언이 시애틀에서 잠 못 이루고 있었고, 우리는 샹그리아 한 잔을 손에 들고 바스대는 구미의 밤을 부여잡고 있었다. 

“우리가 이제 밤에도 만난다.” 

“잘 살아냈다.” 

“앞으로도 잘 살아내자. 짠!”

씨줄과 날줄이 촘촘하게 엮어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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