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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반짝 Oct 24. 2022

소음 경보


 삐이—삐이—삐이—.

 귓속에서 이명이 들린다. 그 순간 눈앞의 초점이 아지랑이처럼 꿀렁인다. 지금 나의 세상은 온통 소음이다. 이명은 마치 끊어서 치지 않고 내보내는 모스 부호 소리 같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암호 해독가가 온다 해도 해독할 수 없다. 동시에 눈앞에서 스테레오로 펼쳐지는 두 아이의 징징거리는 소리도 암호처럼 풀 수 없다. 지구적 감염병의 시대, 바이러스를 피해 초등학교의 겨울 방학은 두 달을 꼼꼼하게 채운 채 진행됐다. 코로나19 시대, 집은 전체가 서라운드 입체 음향 시스템이 완비된 방공호다. 나와 딸과 아들, 셋이서 엉겨 붙은 집 안은 소음을 피해 숨을 곳이 없다. 방공호 안에 또 다른 패닉룸은 없다. 재미와 호의로 시작된 놀이가 야유와 짜증의 싸움으로 탈바꿈하기까지 소음은 데시벨을 차근차근 높이며 투명한 거인처럼 공습해온다.


옆 방에서 ‘누나, 우리 실바니안 놀이하자’라는 말로 시작된 인형극은 까르륵 웃음소리로 전개된다. 둘이서 손가락만 한 인형을 들고 여러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즉흥적으로 대사를 만들어 극을 이끈다. 첫째 딸과 둘째 아들이 번갈아 빈틈없이 대사를 친다. 쉴 새 없이 오고 가는 낱말들 사이로 딸의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소리가 들리고 극은 현실과 오버랩되며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장난감이 부딪치는 소리, 서로의 잘못을 지적하는 소리, 다시는 너랑 놀지 않겠다고 절교를 선언하는 소리, 둘째 아들이 쿵쿵 방문으로 향하는 소리, ‘쾅’ 방문이 닫히는 소리, ‘야! 문 똑바로 안 닫아? 다시 와서 장난감 정리하고 가!’ 동생을 향한 첫째 딸의 겁박하는 소리, ‘엄마! 누나가 나한테 나쁜 말 했어!’ 둘째 아들의 울음 섞인 고자질 소리, 질세라 문이 열리며 ‘쟤가 먼저 나한테 인형 던졌어!’ 첫째 딸의 억울함을 고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눈에 빨간불이 켜지고 효자손이 올라가면 위기와 절정이 치닫던 극은 커튼이 쳐지며 막을 내린다.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가 촘촘하게 짜여진 비극이다.     


효자손을 든 결말에도 소음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방공호의 구석에서 데시벨을 낮추고 똬리를 뜬 채 도사리고 있다. 숨죽인 소음에 작은 불씨가 튀어 오르면 새로운 비극이 막을 올린다. 그 순간 소음의 주인공은 나로 바뀐다. 정제되지 않은 화가 눈과 입에서 활활 타오른다. 아이들은 방화복 없이 그대로 순정한 불을 덮어쓴다. 한번 치솟은 불길은 걷잡을 수 없다. 바닥을 드러내고 모든 것을 새까맣게 태워야 끝이 난다. 어안이 벙벙한 아이들을 보면서도 잔뜩 벼려진 화를 삭이지 못해 한참을 씩씩거린다. 이것은 단순한 화풀이. 훈육을 가장한 폭력이다. 자비 없는 화마가 휩쓸고 지나간 아이들의 눈에는 회색빛 그을음이 진다. 엄마는 부당하다는 그을린 눈. 나는 그 눈을 안다. 나는 내 엄마를 그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다.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엄마는 마치 애가 끊어진 듯 울었다. 실제로 애간장이 모두 장례식장 냉동고 안에 누워 있는 아빠 대신 낼 수 있는 소리의 볼륨을 최대로 높여 통곡했다. 문상객이 올 때마다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데시벨을 높이며 오열했다. 대상은 바뀌었지만 엄마의 오열 과정은 마치 제사 의식처럼 똑같았다. 맞절이 끝난 뒤 엄마는 문상객의 손을 부여잡고 ‘저 인간이 결국은 이렇게 갔다’라는 가사로 노래를 시작했다. 아빠의 무능함과 무책임함, 그 아래 눌린 엄마의 지난한 삶이 한탄의 가락으로 흘렀다. 노래의 후렴이 끝날 즈음 ‘이제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문상객의 답가로 한 차례의 제의가 끝이 났다. 엄마의 오열에는 더는 변명의 기회가 없는 아빠의 치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국화꽃으로 둘러싸인 액자 속 아빠는 피어오르는 원망의 향을 덮어쓴 채 말이 없었다. 액자 속에 유배된 죄인처럼. 끝 간 데 없이 되풀이되는 오열 의식에서 아빠는 몇 번이고 죽었다. 엄마의 처절한 통곡 속에서, 사람들의 온온한 위로 속에서 아빠는 몇 번이고 사형을 집행당했다.      


부당했다. 엄마의 악다구니 같은 노래에 마땅히 장례식의 주인공이어야 할 아빠는 조연으로 밀려났다. 아빠에게서 주연 자리를 빼앗은 엄마의 곡소리는 내 고막을 치고 들어와 머리를 뚫고 나가는 소음이었다. 아빠가 유명을 달리한 것은 자신을 내팽개친 채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스스로 거세한 것과 다름없는 지난 삶에서 엄마는 명백한 피해자였다. 엄마는 아빠의 속죄양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엄마를 그을린 눈으로 쏘아봤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그 광막한 불평등의 간극은 원망의 화살을 산 사람 쪽으로 돌리게 했다. 죽은 사람은 더는 말할 수 없으므로. 죽은 사람은 더 이상 입이 없으니까. 엄마가 곡소리로 황망한 아빠의 죽음을 버틴 것처럼 나는 장례식장 한구석에 혼자만의 방공호를 만들었다. 그 안에서 장례식장을 가로지르는 엄마의 곡소리를 증오하며 아빠의 장례식을 버텼다. 부당하게도.     


아이들의 그을린 눈은 그날의 부당했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을린 눈은 통점을 건드렸고 누그러들지 않는 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나는 그 눈과 마주보기 어려워 식은 화를 욱여넣고 황급히 도망쳤다.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유리된 아파트 지하의 스피닝실로 뛰어갔다. 암막 커튼이 사방으로 쳐진 까만 방에는 종합백과사전 세트만 한 스피커가 두 대 달려 있다. 스피커에서는 bpm을 130 이상 끌어올린 노래가 고막을 때리듯 크게 흘러나온다. 원래의 가사를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빨라진 박자에 맞춰 스피닝 자전거를 타면 심박수가 터질 듯이 올라간다. 고정된 자전거 위에서 두 다리는 쉬지 않고 점프하듯 페달을 굴리고, 상체는 박자에 맞춰 팔굽혀펴기 동작을 한 곡당 100번 정도 한다. 허벅지와 심장에 이내 불이 지펴진다. 이명이 따라붙을 틈이 없다. 이명은커녕 잠깐의 딴생각만으로도 동작을 틀리기 일쑤다. 이 순간 찢어지는 노랫소리는 나에게 잠시 현실을 잊게 해주는 백색소음이다. 그런데 스피닝실 벽에 달린 조그만 스피커에서 소음이 일었다. 몸을 혹사하는 일련의 동작에도 균열이 갔다. 스피닝 수업의 강사가 노래를 껐다. 모두의 동작이 멈추자 조용해진 스피닝실 안으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오늘은 우리 아파트 소방 안전 점검을 하는 날입니다. 잠시 후 화재경보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면 놀라지 마시고…’ 

스피커에서 우리 생활에 반드시 울려야 할 소리가 흘러나온다. 소음이 아닌, 적재적소에서 마땅히 들려야만 하는 소리. 방송이 끝나자 강사는 다시 음악을 틀었다. 사람들은 이내 노랫소리에 집중했다. 나 또한 무거운 동작을 수행해내며 바닥을 부유하는 화를 땀으로 빼냈다. 아이들에게 성마르게 풀지 못하도록.     


수업이 끝나고 열기로 시뻘게진 얼굴을 달고 피트니스 센터를 나섰다. 집에 가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부초밥을 만들어 슬그머니 내밀어야겠다. 이왕이면 사과하는 게 좋겠지. 갸륵하게 다짐하며 기어가듯 엘리베이터 앞에 다다르자 둘째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어디야? 지금 아파트에 불났어! 나랑 누나랑 밖에 나왔어!” 

다급한 아이의 목소리는 이미 숨이 찼다. 

“아니야, 불난 거 아니야. 지금 어디야?” 

덩달아 나도 조급해졌다.

“불났어! 소리 났어! 우리 지금 계단으로 내려가고 있어! 엄마 어디야?”

“이거 진짜 불난 거 아니야. 불났을 때 대비해서 경보기 작동하는지 시험하는 거야. 엄마 지금 지하에서 엘리베이터 타니까 너희도 엘리베이터로 가서 타. 알았지?” 

“연습하는 거라고?”

어리둥절해하는 둘째 아이를 달래고 때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탔다. 순조롭게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멈췄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양쪽 볼에 발갛게 불이 난 얼굴의 두 아이가 나타났다. 열두 살과 열 살의 두 아이가 집안에서 입는 얇은 내복 위에 겨울 점퍼만을 걸친 채 헉헉거리며 서 있었다. 16층인 우리 집에서 8층까지 둘이서 숨가쁘게 내려온 모양이었다. 아침부터 셋이서 따로따로 운동을 한 셈이었다.

“얼른 타. 이거 불났을 때 화재 경보 울리는 거 연습한 거래. 둘이서 놀랐지? 그래도 잘했어.” 

어쩐지 계단에 아무도 없더라는 첫째 아이의 순일한 말에 다 같이 웃으며 엘리베이터 안에 옹기종기 모였다. 세 사람의 손이 올올이 자물렸다. 다시 만난 셋에게 엘리베이터는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패닉룸 같았다. 여기서 만나서 다행이다. 우리 이제 안심이다. 그 순간,

“너희들! 발 시리게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나오면 어떡해?! 그거 신고 뛰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슬리퍼를 신었어?! 운동화를 신었어야지! 어휴, 엄마가 여러 번 말했었잖아!”      


삐용삐용—

소음 경보가 울린다. 엄마발 소음은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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