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발을 디딘 곳. 그곳은 땅의 끝자락. 남편 회사의 하계 휴양소로 선정된 리조트는 새것이었고, 여름의 끝이라 마침 신청자가 없었다. 4시간의 거리를 달려 도착한 땅의 끝에는 빈 주차장의 바닥에서 반사되는 눈부신 햇빛과, 그것에 싸여 뜬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새 리조트가 서 있었다. 곶 위의 리조트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중간에 쌓아 놓은 돌담 때문인지 해변으로 파도가 들이치지 않았다. 파도풀을 운영하지 않을 때의 워터파크처럼 땅끝은 고요했다.
리조트의 인피니티 풀도 마찬가지였다. 수영장 안의 물은 나와 가족들의 움직임에만 출렁일 뿐이었다. 바다를 눈앞에 두고도 파도를 알지 못한 채 들고나는 사람들의 몸짓에만 출렁였다. 수영할 줄 모르는 이들의 동작 또한 인피니티 풀의 표면처럼 고요했다. 튜브 없는 물놀이는 두 다리를 쉴 새 없이 걷게 했고, 물속을 거니는 무중력 상태는 몸을 금세 지치게 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재미가 없었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파란 하늘과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며 물속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재미없는 일이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턱을 괸 채 마늘을 까는 일처럼 아주 많이.
물놀이가 끝난 후의 땅끝은 고요가 겹을 쌓은 듯 조용했다. 그리고 소란이 없는 땅의 끝에는 밥이 없었다. 읍내와 떨어진 한적한 곶 위의 리조트에는 무중력 운동을 마친 이들을 위한 마땅한 밥이 없었다. 나와 남편은 검색 끝에 시장이 있다는 터미널 근처로 차를 타고 나갔다. 터미널은 오지의 분소처럼 작았고 시장은 아마도 장날에만 서는 듯했다. 영업 중인지 확신할 수 없는 치킨집과 동태탕 식당이 호두과자의 호두처럼 띄엄띄엄 있는 그곳에서 족발집을 발견했다. 밥에 굶주린 우리에게 치킨보다는 족발이 최선의 메뉴였다. 그럼에도 선뜻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 가게의 유리는 중앙선을 기점으로 아래는 연두색 셀로판지로 덧대어져 있고, 위는 묵은 때 때문에 마치 간유리처럼 보였다. 맛있을까? 보다는 괜찮을까? 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가게 언저리에 정차하고 네이버에 들어가 상호를 검색해 보았다. 역시나 영업 중이라는 정보 외에 가격도 리뷰도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네이버 플레이스에 등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놀랍기도 했다. 정보 없는 선택은 불안을 끌어안는다. 한참을 머뭇거리자 남편은 차에서 내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에 돌아와 족발의 가격과 소요 시간, 그리고 가게 안에 동네 사람으로 보이는 손님이 한 테이블 있다는 정보를 알려 주었다.
“맛없으면?”
“다른 선택지가 없잖아.”
리조트로 돌아와 족발 꾸러미를 풀어 테이블에 하나씩 꺼내놓자, 아이들은 환호했다. 냄새부터 맛있다고. 맛있는 냄새가 나서 맛있겠다는 아이들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는 어린 장금이 같았다. 그때까지도 아무 정보 없이 사 온 족발의 맛이 어떨지 확신이 없던 나는 대장금인 양 근엄한 표정으로 족발과 보쌈김치, 계란찜의 외관을 살폈다. 족발의 껍질은 갈색과 고동색의 그 어디쯤으로 잘 닦은 마룻바닥처럼 윤이 났다. 그렇지만 보통 족발이 이 정도는 윤이 나지 않나? 기포와 물기가 찰박이는 노란 덩어리 위로 연두색 파가 누워 있는 계란찜은 평범했다. 평범하네, 평범해. 그냥 그럴 듯. 시골 족발에 대한 나의 평가는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족발을 먹기 전에 먼저 리조트 편의점에 내려가서 즉석밥을 데워 올 사람을 뽑아야 했다. 샤워 후 잠옷 차림의 우리는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옷을 갈아입고 즉석밥을 데워 오는 수고를 한 이에게 젤리 특혜를 주느냐 마느냐 이야기하고 있는데 화재 경보가 울렸다. 뭐야, 진짜야, 가짜야? 눈을 굴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동안에도 화재 경보는 꺼지지 않았다. 진짠가 봐. 어떡하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문으로 향했다. 공포영화의 장면 전환처럼 갑자기 분위기가 변환되었다. 문 쪽으로 빠르게 걸으면서 무엇을 챙겨야 할지 우왕좌왕했다. 욕실 앞에 팽개쳐둔 로브를 챙기고 신발을 신으며 카드키를 빼 들었다. 가장 먼저 문을 열고 나간 둘째 아들이 앞장섰다. 복도 끝 유리창을 통해 아래에 흰 연기가 퍼지는 게 보였다. 아들은 밖에 연기가 난다고 소리치며 비상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곧바로 “뜨거워! 다른 문으로 가야 돼!”라고 소리쳤고,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뛰어갔다. 나는 앞장서는 둘째 아들과 남편, 옆에서 뛰는 첫째 딸의 위치를 확인하며 뒤따라갔다. 로브가 생명줄인 양 앞섶에 꼭 끌어안고. 복도를 다시 반 바퀴 돌아 다른 비상문을 열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우리 가족의 객실은 다행히 3층이었다. 위층에서 내려오는 다른 사람들과 합류했다. 뒤따라오는 노부부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뛰었고, 우리 앞에 있는 가족들은 엄마와 아빠가 아이 한 명씩을 안고 뛰었다. 누군가 “이쪽이 맞나요?”라고 물었고, 누군가 “이쪽으로!”라고 외쳤다. 적요 상태의 리조트에서 처음 만난 투숙객들은 어느새 생명공동체가 되었다. 비상계단은 1층 로비로 이어졌다. 비상문을 열고 뛰어나가자, 로비 옆 카페에는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하며 우리는 건물 밖으로 뛰어나갔다. 안내데스크의 직원은 잠옷 차림의 우리에게 다가와 경보기가 방역 연기를 오인해서 작동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보기는 방역 연기를 오인하고, 아이는 손잡이의 온도를 오인했다.
6시가 훌쩍 넘었어도 여전히 환한 여름날의 저녁, 고요한 곶 위의 하얀 리조트 정원. 그곳에서 잠옷 바람으로 서 있는 우리들의 형상은 어쩐지 오인의 끝처럼 보였다. “아… 그럼 이대로 그냥 객실로 돌아가면 되나요?” 누군가 물었다. “카드키를 안 들고 왔는데….” 누군가 말했다. 나는 젖은 로브로 앞섶을 가리며 남편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 카드키 들고 왔어.” 고요한 리조트, 잠시 소란했던 생명공동체는 허정허정 각자의 객실로 돌아갔다. 객실로 돌아오니 족발과 계란찜의 식은 냄새가 났다. 어쩐지 반가운 냄새였다. 상추에 즉석밥을 한 숟갈 올리고 그 위로 새우젓 하나, 족발 한 점을 쌓아 쌈을 만들었다. 한입에 넣고 씹는데 콧구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너무 맛있잖아? 계란찜은 일식 계란찜처럼 푸딩 같은 맛도, 폭탄계란찜처럼 인위적으로 부풀려 탄 맛이 더 강하게 나는 맛도 아니었다. 평범하지만 선뜻 그 맛을 내기는 어려운 ‘평범한 계란찜’이었다. 족발집의 외관과 정보 없음에 특별심사위원인 양 까탈스럽게 굴었던 게 자못 민망했다. 작은 시골 마을 터미널 옆 족발집의 낡은 외관은 그만큼 오래 그 자리에 머물렀다는 뜻일 것이다. 이렇듯 직접 보았음에도 정작 안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것을 보면, 정보의 유무가 선택에 대한 불안의 유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듯하다. 불안은 선택 후에 오는 책임에 더 가깝다. “내가 리뷰에 맛없다고 쓰여 있다고 했잖아!”라는 말로 탓과 책임을 회피하고 질타하는 쪽에 서려는 지질한 꼼수다.
족발을 담은 포장 용기가 바닥을 보일 즈음 객실의 창밖도 색이 변했다. 파랗고 고요하기만 하던 수평선이 알록달록해졌다. 7시가 지나도 밝았던 저녁이 그제야 본령을 찾으려 하고 있었다. 드나드는 사람 없는 인피니티 풀은 완전히 적요했다. 리조트의 창세부터 바다의 파도가 무엇인지 모르고 태어난 인피니티 풀은 사람들의 몸짓에만 출렁이는 것이 저의 본령일 것이다.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정보를 검색했던 것일까? 아마도 속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오인하지 않기 위해 무수한 이유를 찾지만, 사소한 한 가지 이유로 결정적인 오인을 하고 만다. 그야말로 오인의 끝판왕이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누구를 무수히 오인해 왔을까?
뛰느라 진이 빠진 듯 즉석밥을 두 공기째 먹고 있는 아들에게 물었다.
“아까 비상문 손잡이 말이야. 진짜 뜨거웠어?”
“뜨거웠어. 그래서 바로 뛰었어.”
“그랬을 리 없는데…. 진짜 불난 게 아니니까. 그런데 아까 카드키가 아니라 핸드폰이랑 가방을 챙겼어야 했는데. 화재 대피 요령 같은 거 전혀 생각 안 났어. 막상 닥치니까 머리가 안 돌아가더라.”
“엄마, 불나면 아무것도 챙기지 말고 그냥 바로 뛰어나가야 돼!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바로!”
얼마 전 학교에서 화재 대피 연습을 한 아들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상구를 찾아서 바로 뛰어나가야 한다고. 자신은 아까 핸드폰도 안 들고 바로 나갔다고. 평소 생명줄 같은 핸드폰을 두고 뛰어나간 아들을 보며 넘치는 정보는 오히려 회로를 정지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의 말처럼 눈앞에 보이는 대로, 손바닥에 느껴지는 대로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바로 뛰어나가보자. 언제나 오인하는 사람이 나의 본령으로 호명되기 전에.
“그런데 로브는 왜 안고 뛴 거야? 코랑 입 막으려고?” 남편이 물었다.
“아니… 가슴 가리려고……. 브라자를 안 입고 있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