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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이지우 Jan 17. 2024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한 검사

나에 대한 보고서를 받다.

 2022년 9월, 종합심리검사(풀배터리검사)를 하러 서울에 갔다. 왜 검사를 받고 싶었냐는 친언니의 질문에 답조차 까먹은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나를 한심하게 볼까 봐 불안했다. 다행히 언니는 나를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었지만 나를 완전히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안 나오면 어떡하지? 내가 그냥 한심한 거면 어떡하지? 차라리 원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ADHD가 의심된다는 결과를 받았다.


종합심리검사 항목
K-WAIS-IV, BGT, TCI, MMPI-2, SCT, HTP, Rorschach


 검사항목은 K-WAIS-IV, BGT, TCI, MMPI-2, SCT, HTP, Rorschach 검사가 있었다. 검사를 하러 서울로 가야 했고, 해석상담은 50분 줌으로 진행해 주셨다. 보고서는 총 12페이지였다. 구성은 크게 4가지로 지능평가, 기질 평가. 성격평가, 종합평가가 있었다.  지능검사에서도, 다른 평가 항목에서도 꾸준하게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특별히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이 너무 공감이 되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검사는 바로 기질적 특성의 평가, TCI 검사였다. 기질과 성격에 대해서 평가해 주는데 MBTI를 좋아한다면 이 검사를 꼭 한번 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나 자신에 대해서 더 이해하고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기질은 타고난 특성으로 잘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기질 검사 결과, 나는 자극 추구가 78로 높은 편이었고 (1년 뒤, 다시 했을 때 100이 나왔다.) 위험회피가 100, 사회적 민감성 50, 인내심이 0으로 극단적인 결과가 나왔다. 자극 추구가 높아서 호기심이 많고 충동적인 면이 있지만, 위험회피가 높기 때문에 충동대로 행동하지 않고 조심한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공감이 됐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쏟아서 내가 피곤한 것이라고 한다. 이럴 수가! 나의 타고난 기질을 알게 되니 나의 행동과 생각들이 이해가 되었다.


 타고난 기질은 어떤 환경을 만났느냐에 따라 성격이 되는데, 성격 검사 결과도 극단적이었다. 자율성 0, 연대감 61, 자기 초월은 16이 나왔다. 자율성이 0이라는 것은, 내가 바로 서 있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 남들에게 잘 휘둘리고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한다. 사실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주변의 영향을 정말 많이 받아왔고 "보통"이라는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이 겉으로는 얌전하고 성실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지만 그 속은 엉망징창이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자세히 알게 되는 게 무서웠다. 나의 본모습은 게으르고, 한심하고, 바보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기질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고 하셨지만, 조금의 억울함은 들었다.

 

 마지막으로 종합적 평가와 진단적 인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ADHD, C-PTSD가 나왔다. 우울 증상이 아주 오래된 문제 같다고 하셨고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권유받았다. 만성 우울 증상이 배경 정서를 이루고 있다는 표현이 정말 딱 맞았다. 내가 느끼는 모든 문제점이 보고서에 있었다.


 검사 결과를 받은 뒤, 그럼에도 계속 결과가 잘못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DHD가 맞을까?라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고 궁금해서 미칠 거 같았다. 임상심리사 선생님께 메일을 드렸더니 정말 친절하게 답변해주시기도 했다. 확실히 ADHD가 의심된다는 뜻이라며 관련 책도 추천해 주셨다. 내가 진짜 ADHD일까? 궁금증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그렇게 정신과를 찾아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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