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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13. 2021

Day 12 물영아리오름

한장요약: 산을 올라 늪을 만나는 신비


드.디.어. 비가 온다.

비가 오면 운치를 더한다는 물영아리 오름으로 가자!

사실 귀포엔 아침 내내 비는 오지 않고 눅눅하기만 했는데

왠지 구름 속 중산간 지대는 날씨가 또 다르지 않을까 싶어 일단 출발을 해본다.

중산간도로를 타자마자 보슬보슬 빗방울이 흩뿌려지기 시작하고 주차장에 도착하자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가방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나도 준비해온 우의를 걸쳐입고, 나름 단단히 채비를 한 후 오름으로 향한다.

오름 가는 길 오른편, 수크령이 초원을 덮고 있다.

햇살 반짝이던 날에 찍힌 사진엔 수크령도 함께 반짝이던데 비가 내리는 오늘은 조신히 바람에 몸을 맡기고 있다.

드디어 악명이 자자한 천국으로 가는 천 개의 계단 등장!

(TMI. 올라가며 세어보니 대충 700개 정도 되는 듯하다.)

가파르기도 한 데다 비까지 와서 계단에 집중하며 올라간다.

나는 오늘도 씁씁후후 계단 백 칸에 한 번씩 쉬면서 중간중간 쉼터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하늘도 보면서 꾸역꾸역 올랐다.

꿋꿋이 계단을 다 오르고 나니 습지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친절한 안내.

쭉쭉 위로만 위로만 오르느라 긴장했던 다리가 내리막을 만나니 살짝 휘청인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습지분화구.

이곳은 람사르 협약에 의해 지정된 습지보호구역이라고 한다.

비가 온 탓에 희뿌옇게 찍힌 사진과 영상이 아쉽다.

실제로는 산신령님 나타나 도끼 주인 찾아줄 기세였는데...


내려올 때는 둘러 내려오는 완만한 생태길을 택한다.

파란 우의 덕에 스머프 빙의하여 랄랄라 내려오는 길.

비마저 막아주는 편백나무 숲에서는 잠시 목도 축이고 답답한 우의도 벗어던진다.

목장의 경계를 위해 쌓았다는 잣성을 따라 돌아 나오는 길.

산을 오르고 올라 늪을 만났다.

예상도, 상식도, 기대도 벗어나 외려 이를 뛰어넘는다.

계획대로, 규격대로만 살아지지는 않는 법.

잠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만 내 몫의 산도 오르고 오르다 보면 늪을 만날지 소금광산을 만날지 혹은 그 무엇을 만날지 모를 일이다.

필요한 건 그저 성실함과 설레임, 그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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