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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18. 2021

Day 17 성읍민속마을, 영주산

한장요약: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날이 추워 동네서점 투어를 할까 했지만

지난 2주간 열심히 다니며 간신히 자리잡기 시작한 등산용 근육이 그새 시들해질까 봐 오늘도 오름오름 트레킹맵을 뒤적여본다. (헬창들이 근손실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고나 할까 ㅋㅋ)

오늘의 목표는 영주산,이지만 사실 근처 성읍민속마을의 팥죽집을 가기 위한 구실일 뿐이다.

오전 온라인 예배를 보고 출발하니 1시쯤, 예상 도착시간은 2시가 넘으니 혼밥족으로 점심 피크 타임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시간을 달려 도착했는데 다른 식당은 다 한가한데 이 집만 갓길까지 차가 넘쳐난다.

가게에 들어가니 다행히 마지막 테이블 하나가 남아 팥칼국수 한 그릇을 시킨다. (새알은 2인 이상부터 주문 가능 ㅠㅠ)

면 굵기가 고른 것으로 봐선 수타면은 아닌 듯한데 수타만큼이나 쫄깃하고 광주에서 먹던 팥죽처럼 진하다.

내 음식이 나오기도 전부터 뒤로 웨이팅이 쭉쭉 늘어나며 혼자 테이블을 차지한 나는 뭐라 하는 이도 없는데 괜히 눈치가 보인다.

먹다가 중간에 차 빼 달라고 해서 뛰쳐나가 차를 빼주고 왔는데도 면이 붇지 않, 토기 덕인지 그다지 식지도 않아 다행히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제 배를 채웠으니 칼로리를 소모하러 갈 시간.

영주산 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여기도 웨딩 촬영이 한창이다.

날도 추운데 드레스 하나 입고 오들오들 떨면서도 방긋방긋 잘 웃 신부님, 존경합니다!


영주산은 초반 2/3 능선은 수크령과 억새가 가득한 초원같은 느낌이다. (덕분에 말똥폭탄이 자주 보인다;;)

많이 가파르지 않고 탁 트인 시야에 멀리 바다까지 내다보이니 오르는 길이 참 즐거운 산이다.

다만, 오늘 바람은 참 거칠고 차가워서 경량 패딩조끼와 바람막이 정도로는 조금 버거운 느낌이다.

정상까지의 1/3은 얕은 계단이 놓여있다. 사실 얕아도 너무 얕아서 너무 종종걸음인 기분이라 두 칸씩 오르다 보니 살짝 땀이 나며 조금은 바람을 이겨낸 기분이 든다.


정상에서 보는 전망은 들인 노력에 비해 과하게 훌륭해송구할 지경이다.

멀리 한라산부터 크고 작은 오름들이 한눈에 보이고 뒤편의 성산일출봉까지 돌아보는데 눈에 거슬리는 것 하나  시원하게 펼쳐있다.

오늘 바람 조금만 덜 불었다면 온전히 정상 전망을 누리고 왔을 텐데 땀이 식으니 금세 손과 귀가 시려서  어서 내려가고 싶어졌다.


먼길 온 김에 바로 옆 야트막한 모구지 오름도 가고 싶었지만 모구지 야영장에서 길을 잃고 오름 입구를 찾지 못한 채 체온만 내려가는 것 같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어느 텐트에서 나는 삼겹살 향에 정신이 더 혼미해지기도 했다.

동부산간쪽 오름에 갔다 숙소인 서귀포로 향할 때면 저무는 햇볕에 금빛으로 반짝이는 억새가 너무 고운 서성로를 지난다.

숙소인 서귀포부터 중문까지 심어진 야자수 볼 때마다 여기가 제주도인지 플로리다인지 가끔 나를 헷갈리게 한다.

이맘 때면 단풍으로 물들던 Georgia의 South Millage Ave, 지는 석양을 따라 그대로 Cedar Key까지 달리고 싶던 Florida의 Archer road, 일주일을 버티게 해 주던 테니스 게임을 위해 지루한 풍경에도 매주 달렸던 Texas의 Hwy 6까지, 지난 내 삶의 여정 속 많은 길들이 떠오른다.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남은 2주도 나는 열심히 서성로와 남조로와 중산간도로와 일주도로, 그 어딘가를 열심히 헤매고 다닐 테지.

더 열심히 헤매이며 찾아보자, 그 이후의 내 삶에 어떤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덧. 성읍민속마을에 무료주차 흑돼지 구경 이런 문구에 혹해 들어가면 마유크림이니 오미자차니 이런 것들 강매한다고 들어서 차로 지나며 구경만 해서 사진은 없음.

밥 먹고 영주산 가는 길에 네비가 이상한 곳으로 안내하길래 주소 바꾸려고 주차장도 아니고 갓길에 잠시 세웠더니 득달같이 달려 나오길래 나는 영주산 가는 길이고 잠깐 네비 치는 중이라고 얼른 빠져나옴.

옛 제주의 분위기가 궁금하다면 '제주민속촌'이 입장료 조금 내고 맘 편히 구경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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