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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23. 2021

Day 22 이중섭 미술관, 스테이위드커피, 새빌카페

한장요약: 육지 것들의 제주살이


돌이켜보니 벌써 14년 전인 2007년에 다녀왔던 이중섭 미술관.

그땐 이중섭 거주지와 이중섭 미술관만 덜렁 있었는데, 요새는 이중섭 거리도 단정하게 조성되었고 이건희 컬렉션으로 더 인기가 많다 하여 미리 예약을 해두었다.

몇 년 전 덕수궁 미술관에서 이중섭 전을 보긴 했지만, 한 개인의 소유였다가 세상으로 나왔다는 작품들이 궁금해서 부러 시간을 내었다.

작품들 중에서 서귀포 살이와 관련이 있는 것들로 전시되다 보니 가족들 관련한 그림이 많았다 (기대했던 소 그림은 언제 제대로 보려나 ㅠ).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들의 삶이란 참 얄궂다.

고생고생하며 고집스럽게 본인만의 예술세계를 빚어내고 고치고 발전시키고 가꾸며 외롭고 가난하게 살다 죽어서야 인정받고... 냉정하게 말하면 자식 좋은 일만 하는 듯하다.

보기만 해도 슬퍼지는 그림에 가슴이 아리다.

어쩐지 가로수길 마냥 조금은 호화로워진 이중섭 거리를 좀 훑어보다 괜히 혼자 낯설어진다.

1.4평의 작은 그의 방이 조금 더 서글퍼진다.

언니의 지인분을 뵙기 위해 산을 넘어 제주시로 이동.

약속시간 전에 잠시 짬이 나서 오일장을 구경하기로 한다 (제주시 민속오일장은 2,7일, 서귀포 향토오일장 4,9일).

향토오일장보다 더 큰 규모에 조금 더 정돈된 느낌이다.

과일, 생선, 야채, 묘목, 먹거리 등 한 바퀴 휘 돌아보다가 눈에 든 것은 청귤청.

청귤이라는 품종이 따로 있고 설익은 풋귤과는 다른 것이라고 일러주신다.

(도라지조청도 맛있어 사고 싶었지만 500g은 다 팔리고 1kg 큰 병만 남아있어 1인 가구는 부담이 되어 아쉽지만 패스).

시장 구경을 마치고 큼지막한 갈치구이와 아주 잘 익힌 고등어구이로 점심을 해결한다.

제주도에 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바다음식을 먹고 가야지~

오일장에서 멀지 않은 스테이위드커피로 이동.

12년 전 제주로 오셔서 커피 하나에 온 힘을 다해 하나의 브랜드로 키우시고 이제는 스테이위드커피만의 블렌딩으로 200명의 구독자들에게 정기 배도 하신다고.

원래 서귀포 쪽에 있다가 제주시 매장을 오픈한지는 이제 3주라고 하셨는데 3층 건물이 아주 깔끔하고 새로 사셨다는 엄청 큰 로스팅 머신도 구경할 수 있었다.

(광고글 아님! 나는 커피 못 마시고 차만 마시는 사람이라 커피숍에서 한라봉차 마심)

다시 귤밭 사장님을 만나러 새빌카페로 이동.

핑크뮬리로 유명한 곳이라 주차장부터 인산인해였고 7시 마감인데 우리가 도착한 5시 반 무렵에 이미 음료와 베이커리가 품절 투성이었다.

일기예보상으로 바람 풍속 7m/s 가져간 옷을 죄다 껴입고서야 핑크뮬리 밭으로 나설 수 있었다.

거센 바람에 실내로 들어와 간신히 끼어 앉아 잠시 몸을 녹이는데 귤밭 사장님네 딸내미가 자기 집으로 저녁 먹으러 가야 한다고 우겨서 한림으로 이동.

장래희망이 공주라는데 그래도 뮬란이나 라푼젤 같은 용감한 공주는 4살 따님께서 나를 키 큰 언니라 불러줘 기분이 좋았다 (너네 엄마랑 별 차이 없다 ㅋㅋ).

플로리다 게인스빌 시절의 추억들과 제주살이의 장단점과 농부의 고단함과 감귤농장의 마케팅과 향후 육지살이 계획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대화에 하마터면 날을 샐 뻔했다.


이중섭의 그림도, 커피집 사장님도, 귤밭 주인 농부님도, 한 달 살러 온 나도, 심지어 핑크뮬리도, 그렇게 온갖 육지 것들이 제주에서 만나 갖은 추억을 만든 그런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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