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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Oct 28. 2021

Day 27 민속오일장, 4.3 평화기념관, 여행가게

한장요약: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오늘은 김동생이 돌아가는 날.

어제까지 쉰다던 소보루 빵집에 9시 땡 하자마자 가는 건 너무 실례가 아닐까 싶어 20분쯤 도착했는데 우유크림 소보루가 딱 두 개 남아있더라는...

구름처럼 라이트한 우유크림에 TWG 티를 겸하니 아주 훌륭한 모닝티타임이 완성된다.

지난 오일장에서 사 온 청귤청은 김동생의 인후통을 줄이는 데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운다.

가는 날이 장날 :)

공항 라이드를 위해 제주시로 넘어간 김에 지난번에 못 산 도라지청을 사러 민속오일시장에 다시 기로 한다.

물론 시장 구경과 주전부리 덤.

제주 곳곳에서 보았던, 조생귤도 아니고 한라봉도 아닌 탐스러운 녀석의 이름이 너무 궁금해 다음에 펜션 사장님께 여쭤보려 했는데 오일장 묘목가게에서 답을 찾았다.

답은 바로 '하귤' 다른 얘들과 정확한 차이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이름이라도 알게 되어 한결 후련해졌다.


지난 번 청귤청을 샀던 가게를 어설픈 기억력으로 다행히 헤매지 않고 찾아갈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도라지청 500g은 오늘도 다 팔리고 1kg만, 그도 다 팔리고 딱 두 개 남아있다 (지난번 구입한 청귤청은 이미 다 팔리고 아예 없어서 괜히 뿌듯).

주인 언니도 나를 알아보고선 또 찾아온 나를 어여삐 여기셨는지 1kg짜리를 시원하게 에누리해주신다.

이런 재미가 시장 오는 재미이다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시장을 둘러보며 제주향토음식이라는 빙떡도 맛본다. 메밀전병과 비슷한데 강원도식은 속이 김치로 매콤한 맛인데 반해 제주도식은 무나물 비슷한 속을 채워 넣어 슴슴하고 담백하다.

절반쯤 잘린 큰 무로 철판에 식용유를 바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은 민속오일장 맛집으로 검색하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땅꼬네 떡볶이로 결정.

얼핏 보니 어묵과 굵은 가래떡이 육수에 담겨있어 부산식 물떡인 줄 알고 물떡도 파시냐 여쭤보니 거기서 어묵 국물로 먼저 밑간을 하고 떡볶이에 넣으신단다.

얼마 전 가격이 인상되어 1인분에 4천 원이었는데 굵은 가래떡 3개, 어 3개, 만두 1개에, (요즘 비싼) 삶은 달걀까지 푸짐하게 넣어주신다.

둘 다 맵찔이인 관계로 시뻘건 양념에 조금 걱정되었지만 딱 적당하게 매콤한 빨간 맛이라 정말 맛있었다.

특히 어묵 국물이 깊이 배어 빨간 양념옷을 입은 가래떡이 정말 예술이다.

점심까지 만족스럽게 해결하고 친구를 공항에 내려주고 혼자 서귀포로 되돌아오는 길에 4.3 평화기념관에 들르기로 한다.

제주에 잠시나마 머물다 가는 이의 작은 예의라는 생각에 오기 전에 현기영의 순이삼촌을 읽긴 했지만 사실 4.3 사건에 대해서는 그저 개략적으로만 알고 있었다 (라떼는 4.3 무장반란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전시실은 단순한 4.3 사건의 개요가 아닌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큰 틀 안에서 제주의  아픔과 상처를 꼼꼼하게 볼 수 있도록 잘 구성되어 있어 제주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기념관을 나와 4.3 평화공원도 잠시 둘러보았는데 까마귀가 참 많았다.

전시관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수많은 까마귀들이 여전히 중산간을 떠나지 못한 이들의 현신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본다.


숙소로 향하는 길, 짜투리 시간을 알뜰하게 이용해 어제까지 백신휴가였다던 여행가게에 들르기로 한다.

책도 좋아하고 홍차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고운 빈티지 찻잔들.

이미 집에 있는 찻잔 세트도 다 캐비닛에 처박혀 있는 현실을 되새기며 그저 눈에만 담아온다.

진짜 내 소유의 집이 생기면 꼭 갖고 싶은 홍차장.

다양한 차들로 가득 채워진 장을 보니 산해진미가 그득한 곳간을 보는 종갓집 종부의 기분이 이러할까 싶어지며 벌써 배가 부른 기분이다.


집으로 오는 길, 오늘 4.3 기념관으로 가는 길부터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윤도현의 '너를 보내며'를 목이 터져라 따라 부른다.

"먼 산 언저리마다 너를 남기고 돌아서는/ 내게 시간은 그만 놓아주라는데"

총에 맞 사람들이 사라지고, 불에 타서 마을이 사라지고, 정권에 의해 기억사라지고...

그렇게 먼 산 언저리마다 까악까악 울어대는 저 까마귀들에 자꾸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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