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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Jan 07. 2022

[20220101] 1. 덕유산 눈꽃산행

한장요약: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간만의 이른 기상에 조금 긴장했지만 새해 첫날 무사히 새벽 4시에 눈을 뜨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차 시동을 켠다.
사당에서 친구만나 만남의 광장에서 다른 일행 합류하여 덕유산으로 고고~
따듯한 레몬티로 속을 데우고 8시 반, 무사히 구천동탐방지원센터에 도착.

등산화로 갈아 신고 옷도 챙겨입고 장갑과 버프까지 꼼꼼히 방한 채비 마치고 들머리에 진입한다.
밋밋한 임도 대신 '구천동 어사길' 트레킹으로 겨울산 워밍업!
꽁꽁 얼어붙은 계곡과 그 두꺼운 얼음을 녹이며 졸졸 흐르는 계곡물, 얼음 위 솜이불처럼 뽀얗게 쌓인 눈과 그 눈에 쫑쫑 찍힌 귀여운 산짐승의 발자욱까지 갬성갬성한 눈길 트레킹이 백련사까지 쭈욱 이어진다.


파란 하늘과 고운 단청이 맞아주는 백련사를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길이다.
경량패딩은 벗고, 쌓인 눈에 바지가 젖지 않도록 스패츠도 장착하고, 그렇게 좀 더 산악인스러워진 모습으로 향적봉으로 고고!

계속된 계단에 가다서다 숨을 고르며 오르고 또 오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계단은 눈에 파묻히지만 소문난 설질의 고운 눈을 기분좋게 뽀도독뽀도독 밟으며 겨울산행의 즐거움을 만끽해본다.


그런데... 슬슬 허기가 지는데 대피소에서 날려오는 음식 냄새도 솔솔 나는 것 같고, 또박또박한 안내방송도 들리는데, 도무지 대피소는 보이질 않는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을 텐데 위장이 요동치는 덕에 조금 힘들게 마지막 깔딱을 넘어서니 와글와글 대소와 그 너머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산그리메.

어차피 먹는 나이, 제대로 챙겨 먹어보자고 친구가 시장을 샅샅이 뒤져 사온 오색떡국떡을 꺼내니 컵라면을 드시던 대피소의 다른 팀 어르신들이 흠칫 놀라신다.
흣, 무심한 척 양지육수와 고기 고명, 김가루, 흰자 노른자 고운 지단에 송송 썰어온 대파까지 꺼내니 순식간에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부러움의 눈길 ㅋㅋㅋ
화력 좋은 리액터에 귀한 살라미 숭덩숭덩 썰어 넣고 대파도 아낌없이 넣어 가히 부대찌개스러운 귀한 라면까지~
그렇게 딱히 반갑지 않은 한 살이지만 기왕 먹는 거 야물딱지게 챙겨 먹고 커피와 티까지 마셔주니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곤돌라 줄서기 선발대의 도움으로 차분히 정상석 인증샷 무사히 찍고 설천봉 곤돌라 승장으로 내려간다.
향적봉-설천봉 구간 계단은 거리는 짧지만 아이젠이 없는 관광객들이 줄줄이 미끄럼을 타는 통에 긴 행렬이 슬금슬금 이동한다.
비록 초짜 산악인이지만 든든한 아이젠을 믿고 성큼성큼 선발대를 찾아 후다닥 내려온다.

미리 줄 서준 선발대 덕에 금세 곤돌라를 타고 룰루랄라 스키장 구경하며 20분만에 하산 완료.
그런데 구천동행 셔틀버스를 무려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단다.
콜택시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오늘 휴업이란다.
똑같은 택시가 3번 왕복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간혹 오는 택시는 우리 차례가 오기도 전에 다른 손님들을 태우고 떠난다 (아마 따블을 불렀거나 운좋은 사람에게 카카오가 잡혔거나인 듯).
결국 추위에 1시간을 기다리고 (정상보다 더 추워서 있는 옷 다 껴입고 장갑 2개 끼고) 간신히 셔틀을 타 구천동으로 복귀하니 해는 진작에 지고 배가 고프다.
믿고 먹는 이영자 추천 맛집이 근처라는데 그냥 갈 수는 없어 웨이팅을 감수하고 저녁까지 먹고 출발하기로 한다.
쫀득쫀득 토종닭에 입에 딱 맞는 양념 넉넉히 두르고 솥뚜껑에서 강력한 화력으로 볶아낸 닭볶음탕, 마무리로 한국인답게 볶음밥까지 먹고 나니 그제서야 뇌가 작동을 하는 듯하다.


11시 서울에 도착하고 다시 사당 들러 내 차로 우리집 오니 시간은 이미 자정.
새벽 4시에 시작해 장장 20시간의 고된 일정의 하루였지만 피곤함보다는 뿌듯함이 더  새해 첫날이다.

덕이 많아 너그럽다는 덕유(德裕)와 함께 한 2022년 첫날,
임인년 한 해도 나에게 덕을 베풀어주고 너그러워주기를 부디 바라본다.

 



[요약]
1. 코스: 구천동탐방지원센터 - 어사길 - 백련사 - 향적봉 대피소 - 향적봉 - 설천봉 - 곤돌라 하산
2. 기온: -10/2, 풍속 1ms (등산하기엔 최적의 날씨, 땀을 식혀줄 정도의 시원한 기온, 바람이 전혀 불지 않아 영하 4도였음에도 영상인 줄, 상고대를 못 봐서 아쉽)
3. 착장
- 베이스 레이어: 푸마 웜셀
- 미드 레이어: 코오롱 폴라텍 파워그리드 집넥, 노스페이스 폴라텍 후디
- 아우터: 네파 경량패딩 (어사길에서만 착용), 800 패딩 (친구 찬스, 정상 휴식 중 착용), 파타고니아 토렌쉘 (바람이 안 불어 착용X)
- 하의: 3부 기모 속바지, 블랙야크 기모 등산바지
4. 기타 준비물
- 방한: 모장갑, 핫팩, 니트 버프 (긴머리 때문에 귀까지 올라가지 않아 불편), 귀돌이 모자 (정상에서 착용), 팜트리 동계 울 양말, 붙이는 발 핫팩, 선글라스, 스키 장갑 (착용X)
- 등산용품: 휴대용 의자 (데크라서 사용X, 방석 빌려서 사용), 썬크림&립밤, 포포크림
- 행동식: 꿀약과, 젤리
5. 장점: 곤돌라 (편하게 내려와서 시간에 쫓기지도 않고 무릎 부담도 노노)
6. 단점: 곤돌라 (주말이라 곤돌라 대기가 어마어마 & 운동화 관광객들 병목 발생, 가능하면 주중 추천), 원점회귀 아닐 시 교통편 불편.
7. 다음 방문 계획: 오수자굴 코스로 중봉의 주목과 구상나무, 덕유평전까지 감상하기

[별점] (5점 기준)
1. 난이도: 어사길은 난이도 1.5, 백련사-향적봉 구간은 4 (쌓인 눈 없었으면 3.5)
2. 풍경: 4 (멀리 소백산맥이 사방으로 훤히 내다보이는 정상뷰)
3. 추천: 4.5 (가을엔 전어, 겨울엔 덕유!)

[오늘의 교훈]
1. 겨울산행에서는 기온보다 바람(풍속)이 훨씬 중요하다.
2. 겨울산에 아이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3. 하산은 곤돌라가 진리!
4. 차 두 대 운행시 들머리, 날머리에 나눠서 주차하자.
5. 원정산행시에는 근처 맛집도 패키지로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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