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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중아 Jan 18. 2022

[20220116] 2. 태백산 상고대

한장요약: Into the unknown


지난번 덕유산에서 쌓인 눈은 실컷 보고 왔지만 겨울산행의 백미인 설화와 상고대는 보지 못해 못내 아쉬웠던 터에 태백산 일정이 떴다.
일기예보 상으로 일요일 자정부터 눈이 오기 시작해 아침 7시면 개인다고 하니 눈꽃산행을 하기에는 최적의 날씨인 듯 보였다.
해가 뜨면 녹아버리는 상고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서울에서 5시에 출발하기로 한다.
사당에 모여 짐을 싣고 강원도로 룰루랄라.
치악휴게소에서 따끈한 우동으로 아침도 든든히 챙겨먹고 들머리인 당골 탐방센터에 도착하니 오전 9시다 (보통 최단코스인 유일사 코스로 장군봉을 지나 천제단으로 많이 오던데 우리는 설산 풍경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 능선을 오래 타는 당골 코스를 선택했다).
그런데, 일기예보대로라면 7시에 눈이 그쳤어야 하는데, 9시가 되었는데도 펄펄 날린다. 게다가 어마어마한 칼바람 때문에 눈보라마냥 몰아치며 내린 눈이 쌓이기도 전에 쓸려가버릴 정도다.

역시 강원도는 다르다고 다들 긴장하며 부산하게 보온병에 담아갈 물을 끓이고 챙겨간 보온 장비들로 단단히 방한 채비를 한다. 미드레이어에 하드쉘까지 겹겹이 껴입고, 손난로와 발에 붙이는 핫팩에 군밤모자까지 완전무장을 한다. 아이젠과 스패츠까지 장착하고 나니 다들 차림새와 마음가짐은 히말라야 원정대 못지않다.
들머리 진입 후 약 5분 만에 작은 제단 앞에 멈춰선다. 크고 곧은 나무들 덕에 바람이 들지 않으니 벌써 땀이 날 것 같아 하드쉘은 벗어 가방에 집어넣는다. 태백산은 영산이라 무당들이 많이 찾는다더니 제단 앞 묶인 검은 비닐봉지에 꽂혀있던 천 원짜리 지폐 더미가 인상적이었다.
이제부터는 계속된 오르막길이다. 당골 코스는 보통 하산길로 많이 이용하는지라 우리보다 앞선 등산객은 별로 없었는지 깨끗하게 쌓인 눈을 밟으며 오르는 기분이 좋다.
한참을 오르고 올라 소문수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고대하던 상고대는 보이질 않는다.
90% 이상의 높은 습도, -6도 이하의 낮은 온도, 3m/s 이상의 풍속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만 상고대를 볼 수 있는데 이미 해가 떠서 그새 녹아버린 건가 싶어 조마조마하다. 하산하시는 산객님들께 여쭤보니 조금 더 오르면 볼 수 있다고 하셔서 잠시 간식만 챙겨먹고 하드쉘도 챙겨입고 다시 으쌰으쌰 올라본다.


드디어 소문수봉 도착.
어마어마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사진을 찍으려고 돌아보니 오매불망 뽀얀 상고대가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다들 핸드폰을 들고 스마일을 외쳐댄다 (음성 인식 촬영기능, 우리의 손은 소중하니까요 ㅎㅎ).

여기서부터 문수봉, 부쇠봉, 천제단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은 말 그대로 겨울왕국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하얀 상고대가 핀 절경이 끝없이 이어져 오르막내리막이 전혀 힘들지 않다.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조금 오르고 나니 사방이 뻥 뚫린 천제단이다. 소문대로 엄청나게 큰 정상석 (태백산 정상은 장군봉이지만 정상석은 천제단에 있음), 소문대로 엄청나게 매서운 태백산 똥바람, 소문듣고 소원빌러 모여든 인파도 함께 우리를 맞아준다.
천제단 한배검에서는 사람들이 각자 준비해온 술도 한 잔씩 올리며 본인만의 제를 올리기도 한다. 어느 산과 계곡을 가더라도 조금이라도 공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곳에는 (흔히들 신령한 기운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소원을 담은 돌탑이 있다. 이 높은 곳까지 저 돌들을 지고 올라 제단을 쌓은 사람들의 간절함. 사실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 돌탑과 제단의 영험함이 아니라 그들의 간절함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본다.

바람을 조금 피할 수 있다는 망경대에서 각자 가져온 컵라면과 핫앤쿡을 풍성하게 나눠먹는다 (야심차게 준비해간 즉석 떡국은 떡이 전혀 익지 않아 실패).
반재 코스로 하산 시작. 꽁꽁 얼어붙은 계곡물을 보니 영하 10도의 온도가 실감이 나긴 하지만 새로 산 가성비 끝장템 우모복 (마이큅 초오유) 덕에 따듯함을 품고 하산한다.

태백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물닭갈비는 소문대로 맛있다. 냉이를 듬뿍 쌓아 올려 강원도 산골의 맛이 제대로 느껴진다. 마무리는 역시 탄수화물 가득 볶음밥.

배불리 먹고 서울로 향하는 밤의 고속도로에서 생각한다.

아름답게 맞아주어 고맙다, 강원도. 이 고운 설경을 보러 겨울이 가기 전에 이 길을 따라 금방 다시 오게 될 것 같다... See you soon!


요약

1. 코스: 당골 - 소문수봉 - 문수봉 - 부쇠봉 - 천제단 - 만경대 - 반재 - 당골, 약 12km, 총 5시간 10분 운행

2. 기온: -10/-9, 풍속 5ms (옷은 레이어링을 잘해서 식사할 때 잠시 빼고는 전혀 춥지 않았지만 능선길, 특히 나무 없이 조망이 탁 트인 봉우리에서는 바람이 어마어마)

3. 착장

- 베이스 레이어: 콜롬비아 옴니히트

- 미드 레이어: 코오롱 폴라텍 알파 집넥

- 아우터: 아톰lt (오르막 착용), 파타고니아 토렌쉘 (들머리 초입 잠깐 + 능선길 올라서며 착용), 마운틴 이큅먼트 초오유 패딩 (휴식시간부터 아톰lt, 토렌쉘 벗고 하산까지)

- 하의: 히트텍 레깅스, 블랙야크 기모등산바지

4. 기타 준비물

- 방한: 모장갑, 핫팩, 버프, 귀돌이 모자, 팜트리 동계 울양말, 붙이는 발핫팩, 선글라스, 스키장갑 (착용X)

- 등산용품: 아이젠, 스패츠, 무릎보호대, 휴대용 의자, 썬크림&립밤, 포포크림

- 행동식: 꿀약과, 젤리, 소세지 (터치펜 대용 가능)

5. 장점: 능선산행 (소문수봉부터 쭈욱 능선길이라 멋진 산그리메를 병풍삼아 산행 가능)

6. 단점: 능선바람 (봉우리처럼 트인 구간에서는 피부 찢어지는 줄, 버프와 군밤모자 필수)

7. 다음 방문 계획: 최단코스인 유일사 코스에서 장군봉 찍기


[별점] (5점 기준)

1. 난이도: 2.5 (초반 능선까지 올라타기까지 조금 고되지만 그 이후로는 오르락내리락)

2. 풍경: 4.5 (흔치 않은 파란 하늘에 하얀 상고대 감상! 날씨요정님, 감사합니다!)

3. 추천: 4.5 (방풍방한만 제대로 한다면 제대로 눈꽃산행 가능)


[오늘의 교훈]

1. 하드쉘과 우모복은 아무리 무거워도 지고 가자.

2. 사진 찍을 때는 버프를 벗자.

3. 핫팩은 발바닥 말고 발등에 붙이자.

4. 즉석떡국은 아무래도 겨울산에서는 무리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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