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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Sep 13. 2024

그때보다 지금 더 행복한가?

내 현실과 두려움을 직시할 수만 있다면


애정하는 작가님의 더와 덜에 관한 연재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투병을 시작한 지 이제 2년에 가까워진 나는 과연 그때보다 더 행복한가? 덜 불안한가? 하는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쳤다.


처음 내 병을 맞닥뜨릴 당시는 오만가지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다. 이게 정말 내 앞에 닥친 현실이 맞나 싶어 절망과 불안에 휩싸였고 정말 내가 환자가 되었구나란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시간이 지나 모서리가 깎이고 미화되었을지 언정 그때는 치료만 끝나면 다시 건강해질 수 있어라는 하나의 목표가 나를 지탱했다. 그게 멋모르는 초심자의 간절함이었든 근거 없는 희망이었든 나는 생각보다 씩씩했다. 내 병 때문에 내가 어떻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마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마치 경주마처럼 이번 항암만 끝나면, 이번 이식만 끝나면, 이 숙주만 다 나아지면. 이란 한줄기 빛만 보고 앞을 향해 달렸다.


나는 예정된 치료수순대로 완전 관해에 이르렀고 이식 절차도 끝마쳤다. 그리고 이식 1년이 지난 후 새로 태어났다며 두 번째 돌을 축하하기도 했다. 이제 15킬로나 빠졌던 살도 거의 제자리로 돌아왔고 사람들을 만나도 나를 환자 취급 하는 일도 거의 없다.


지금 나의 일상은 아프기 이전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때때로 손가락 관절이 굳어 컵을 쥐기 힘든 것, 가끔 올라오는 피부와 점막, 눈의 알레르기, 자칫 방심하면 생기는 설사, 조금만 무리하면 어지러운 증상 들로 무엇보다 지금은 내 몸에 더 집중해야 할 때라는 자각에 깜짝 놀랄 때도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무력감이었다. 머릿속에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 느낌. 내 두 발로 서서 일상생활을 살기만 해도 감사할 것 같던 순간들을 넘어 나 자신에 대한 불만이 올라오는 거였다.


하려던 여러 가지 계획을 소화하지 못하고 자꾸 눕게 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숙제를 빼먹은 아이처럼 조급해졌다. 그 마음의 근원은 아마 욕심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만큼 내 몸이 많이 회복해서 부리는 사치일 수도 있겠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내 어깨에 자그마한 혹이 생긴 걸 발견했다. 다음 날이 병원 진료이니 불행 중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잠들지 못하고 환우 카페와 검색 창을 들락거렸다. 난 오히려 몸이 안 좋을 때는 환우 카페에 들어가는 것을 꺼린다. 카페에 산재한 위급한 상황과 불안 걱정 들이 온몸을 덮치며 내 앞에 닥친 콩알만 한 일들도 덩달아 엄청난 악재처럼 부풀어 오르기 때문이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는 거였다.


다음날 선생님은 아마 내 병과는 상관없을 것 같다며 동네병원에서의 정형외과 진료를 권했다. 나는 전날밤 별일 아닐 거야라고 되새겼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대로 물이 찬 거였으면 간단히 치료하면 되었다. 하지만 그 혹은 물이 아닌 지방의 일종으로 추정되어 mri를 찍어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검사는 한 달 뒤로 잡혔다.


확신을 꺼리고 매사 조심스러운 주치의 선생님의 말씀이니 별일 아닐 거라 믿을 만도 한데 나는 요즘 무력감에 더해 불안한 마음까지 불어나 마음이 편치 않다. 너무 피곤한데도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푹 자지도 못한다.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게 숙면인데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으면서도 도돌이표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요즘 뭘 해도 신이 나지 않고 자꾸 가라앉는 기분은 그 작은 혹 때문인가 보다. 환우카페에서는 지방종이 생겨 째고 수술하신 분들이 몇 있었다. 나는 ‘수술’이라는 단어에 마구 가슴이 뛰는 걸 느낀다. 가끔은 내 집같이 편안하게 느껴진 적도 있는 병원이었는데 이제 그곳이 무시무시한 블랙홀 같다. 수술과 동반되는 입원이라는 절차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다시 내 마음에 파문이 인다.


따지고 보면 내가 멀쩡(?)해진 게 고작 반년인데 그 사이 나는 환자라는 정체성을 잊고 엄마, 아내, 뭔가 하고 싶은 게 많은 나 자신에만 깊숙이 젖어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입퇴원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거부감이 드는 나 자신에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 내 이런 불안과 걱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조금 서글프기도 하다. 내가 나의 불안을 드러내는 순간 나보다 더 걱정하고 놀랄 그들을 내가 다시 위로해야 하는 상황이 무겁다. 그게 사랑인 줄 알면서도 말이다.


문득 그런생각이든다. 내 상황을 직시하고 내 두려움에 직면해야지만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별거아니라 치부하고 덮어버리는 순간 실체없는 두려움이 나를 압도할거라고. 이렇게 지하로 뚫고 들어가는 순간 두려움 밑에 깔린 나의 밝음과 평온한 맘을 꺼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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