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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Oct 13. 2024

투병에도 번아웃이 있다면

한걸음 한걸음


저녁식사 자리에서 귀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엄마는 세상에 귀신이 있는 것 같아 없는 것 같아?


예전에도 들어본 적이 있는 질문이다. 아이들에게 똥과 귀신은 빠질 수 없는 흥미로운 이야깃 거리니까. 귀신 이야기는 점점 거슬러 환생까지 갔다.


만약 귀신이 있다면 하늘나라도 있고 환생도 있는 거잖아.

엄마는 만약 환생할 수 있다면 뭘로 태어나고 싶어?


음. 엄마는 안태어나고 싶어.

응?

그냥 안태어나는게 좋은 거 같아.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면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왜냐면 나는 그 전에도 이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늘 같은 대답을 했었다.

사람이고 여자.

새? 나무? 아무리 다른 걸 생각해봐도 사람이 좋았다. 여자로 태어나 엄마로 사는 삶,

평탄하다고 하면 평탄할 수도 있겠으나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는데 그래도 나는 내 삶이 만족스러웠었나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고 싶어졌다. 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 생로병사를 겪는 것이 싫어졌다. 끝도 없는 자기연민과 자기비하 사이를 오르락 거리며 한없이 한없이 가라앉고 싶지 않았다. 그 무엇으로도 태어나지 않는다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이니까. 안태어나면 아무것도 모르니까.


아마 요즘 글이 쉬이 써지지 않았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나보다. 내 이런 마음을 직접 대면하고 싶지 않아서. 내가 좋아하는 이 공간을 굳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내 불안과 우울로 채우고 싶지 않아서.


상황이 절망적이더라도 마음 속에는 한 줄기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훨씬 좋아진 지금 나는 왜 이 모든게 다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일까. 별것 아닌 걸로 가까운 사람과 삐걱거리고 아이와의 사소한 트러블에도 크게 반응하고 상처에서 헤어나오질 못한다. 애써 빛을 향해 한걸음 내딛다가도 생각없이 던진 돌멩이에 맞아 하릴없이 진창으로 빠져 버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나라는 사람은 원래 이렇게 생겨먹은건가. 어둠 속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 아래로 아래로 침잠하기만 하는.

좀 더 넓은 마음으로 유연하게 행동할 수는 없는 걸까. 어디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느낌이 내 마음에 송송 구멍을 낸다. 이게 다 내가 환자여서 그래 라는 피해의식까지. 어딘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다. 단단히 꼬이고 꼬였다. 내 마음이.


하지만 오늘은 애써 생각해본다. 이만큼이나 쓸 수 있었으니 되었다. 이만큼 쓴 것 만으로도 한 줌의 희망이 다시 피어오르는 것도 같다. 만약 내 친구가 나에게 이런 고민을 토로했다면 난 뭐라 했을까?


가끔 삐걱일 때도 가끔 삐딱할 때도 있는거지. 자책하지마. 지금까지 잘해왔어. 이렇게 조금씩 마음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자. 너가 어떤 모습이든 너는 존재 자체로 소중해. 나는 너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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