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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Oct 15. 2024

한강의 목소리

깊고 따뜻한 풍경소리를 낸 순간


며칠 전 한강작가의 노벨상 소식이 있었다. 노벨문학상이라니.. 그것도 내가 읽었던 책의 작가라니. 워낙 유명한 분인 건 알았지만 초현실적인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소설이란 걸 써본 적은 없지만 브런치 글을 통해 하나의 글을 완성하는 게 얼마나 어렵고도 정성스러운 인지 체감하고 있다.

브런치북 하나를 완성하는데도 엄청난 공력이 필요한데 책을 하나 하나 완성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언어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가닿기란 얼마만큼의 진심이 필요한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몇 해 전 작가가 맨부커상을 탔던 즈음에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권위 있는 상을 타는 소설은 뭐가 다른지 궁금했다. 드문드문 불편한 구석이 있었지만 막상 손에서 놓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겠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으면서 또 어디에선가 자주 맞닥뜨렸던 것 같은 인물 영혜.. 그녀는 아픈 손가락 같았다. 단순히 재밌다고만은 할 수 없는. 여운이 긴 이야기였다. 이창동감독의 영화를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그들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기는 어려우나 한동안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 가슴이 저릿하고 내 안에서 뭔가 계속 걸리적거리는. 불편한 각성이 일었다


노벨상 직후 서점가에는  작가의 소설 품귀현상이 인다고 한다. 종이책을 멀리하던 풍조가 얼마간 사라질 것도 기대된다고 다.

나 역시 작가의 책은 물론이고 작가는 어떤 사람 일까 궁금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작가의 얼굴은 내가 생각하던 '작가'얼굴과 비슷했다. 가녀린 체구, 굽은 어깨, 고뇌하는 표정, 밤샘 작업으로 흐리멍덩해진 것 같은 눈빛, 하지만 언뜻 웃을 땐 어린아이같은 순수함이 느껴졌다.


검색의 힘일까? 내 유튜브알고리즘에 한강 작가의 클립이 떴다. 이끌리듯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 이것이 글 쓰는 사람의 목소리구나. 한마디 한마디가 햇빛 머금은 시어 같았다. 난 알맹이도 그렇지만 그녀의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사람의 인상에서 얼굴만큼 목소리가 좌우하는 힘도 크다는 걸 그녀를 보며 실감했다.


그녀 목소리가 절정의 빛을 발한건 낭독에서였다. 어깨뼈라는 자작시를 직접 읽어주었는데 감동이 배가되었다.




어깨뼈  -한강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추러들고

당당하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당신을 만나기 전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나는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볕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 소리였으면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를 걸을 때였지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상반신이 바짝 가까워졌지


기억나?

당신의 마른 어깨와 내 마른 어깨가 부딪힌 순간

외로운 흰 뼈들이

달그랑

먼 풍경소리를 낸 순간




뻣뻣하게 굳은 내 어깨뼈를 다정히 어루만져주는 느낌이었다. 아직도 오묘하면서 깊고 따스한 그녀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어쩌면 그녀에게는 한동안 이어질 우리의 과도한 관심과 찬사가 부담스러울지도 모를 일이다. 나까지 호들갑 떨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느낀 감동을 이렇게라도 저장하고 싶다. 모두가 열광하는 것들에 쉽사리 편승하고 싶지 않지만 열광하는 것들엔 이유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독자로서, 트라우마를 뚫고 불편한 역사 앞에 맨몸으로 맞선 그녀의 강단과 용기에 물개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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