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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Dec 12. 2024

삶은 떨림이지

첫눈 내린 날


주 4.3 사건으로 다 빨갱이라며

학살을 당한 동네 사람들

하루아침에 고아가 된

길 잃은 삼 남매

7살 때 그렇게 친척집을 떠돌아다녔는데

눈칫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팠네

공부는 늘지 않고

비록 손은 떨리지만

새로운 것을 배울 때마다 내 맘이 떨리는 것은

삶은 배움도 만남도 이별도 다 떨림이라는 것을...



시라는 건 참 오묘하다.

단 몇 줄로 한 사람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줄 수 있다니.

나는 이 시를 지은 84세 할머니의 시 낭송을 듣고 엄청난 마음의 파동을 느꼈다.

할머니는 지역도서관 성인문해시간에 한글을 배워 이렇게 시 한 편을 완성하셨다고 한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내 마음에 뜨거운 비가 내렸다.

이날 밖에는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내 옆에서 같이 낭송을 듣던 딸아이도 눈을 반짝이며 열심히 박수를 쳤다.

아이가 정말 뭔가를 느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날 시민저자 출간기념회 행사 중 제일 좋았다고 했다.


문득 생각했다.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이런 글을 쓰려면 내가 이런 삶을 살아야겠지. 


딸들한테 사랑한다고 문자 한 통 보낼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받아쓰기 백점 맞으면 보너스 받는 지금의 기쁨을 시로 녹여내는 할머니의 우직함에 코끝이 찡하다. 비록 공부는 늘지 않고 손은 떨리지만 한 자 한 자 글자를 깨치고 부모님의 이름까지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할머니의 마음이 어땠을지 떠올려본다.


런 게 바로 삶이 묻어나는 글의 힘인가 보다.

그 날 할머니의 시를 듣고 내 마음도 파르르 떨렸다.



첫눈 내린 날


오늘 아침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첫눈은

내게 떨림이었다. 

휘청이는 우산 아래

내손을 꼭 잡고 도서관 언덕을 함께 오른 딸아이의 온기도

내겐 떨림이었다. 

당신의 시를 만난 것도 

내겐 떨림이었다. 

정말 

떨림이 맞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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