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돕 Mar 15. 2024

비워내고 싶은 마음

훌훌

이미 밝힌 바 있듯, 나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뭔가를 끄집어내고 싶어 쓰기를 시작했다. 그게 뭐 대단한 것은 아니고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불편한 상황을 자꾸 덮어버리고 회피하려는 내 평소 성향에 기대어 보면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었다. 이제 살만큼 살아서 좀 더 뻔뻔해진 거 같기도 했다. 


생. 로.  병. 사. 

사람으로 태어나면 늙고 병드는 게 당연한 건데, 마침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때에 일이 닥친 것 뿐이다 라는 생각을 하면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난 아직 세상 이치도 잘 모르고 어리석은 구석도 많은 범인이었기에 가끔씩 억울함과 회한이 밀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내 머릿속엔 '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 날엔 괜히 서럽고 눈물이 났다. 


눈물 없이는 꺼낼 수 없었던 나의 불청객이 별거 아닌 걸로 여겨지는 때가 잦아지면서 나는 마음의 평화를 찾아갔다. 그즈음 내 몸과 정신에 깃든 어두운 파편들을 어떤 식으로든 비워내야 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방법은 요원했지만 뭐라도 해야 했다. 내가 왜 갑자기 쓰기에 대해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그게 말보다는 쉬워서라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하는 말은 자주 나의 의도를 벗어났다. 병원에 드나드는 일이 장기화되며 더 심해졌다. 나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했던 사람조차 내 말을 오해하는 때가 많았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서였을 수도 있고 나를 잘 아는 사람이니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을 거라는 지독한 오만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나의 말들은 미처 냉장고에 넣지 못한 생선처럼 원래의 생기를 잃고 금방 쉬어 버리기 일쑤였다. 변명도 피곤했던 나는 점점 입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사실 내게는 할 말이 많았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아무 이야기나 해도 되는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슴이 마구 뛰었다. 일기장보다 훨씬 더 광대하고 오픈된 세계라 좋았다. 게다가 글이라면, 천천히 숙고한 후에 쓸 수 있으니 내 마음을 좀 더 온전하고 싱싱하게 내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마음을 제대로 직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나는 브런치 신청 이틀 만에 합격 메일을 받았다. 대학 합격증이라도 받은 듯 기뻤다. 하지만 써야 할 사람이 되어 읽는 글들은 너무 대단해 보였다. 글 하나하나에 꾹꾹 눌러 담겨진 통찰력, 유머, 필력. 갈팡질팡하던 마음을 마구 늘어놓으려던 내 계획이 너무 초라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그냥 썼다. 그때는 그냥 다 비워내고 풀어놓고 싶었을 뿐이니까. 하나의 글을 완성할 때마다 내가 뭔가 엄청난 일을 해 낸 사람처럼 기뻤다. 글을 올릴 때는 새색시처럼 설렜다. 몇 개 없는 라이킷에도 구름을 탄 듯 기분이 들떴다. 나를 응원하고 위로하려고 쓴 글에서 다른 사람의 하트까지 받으니 한가득 덤을 받은 기분이었다. 욕심 없는 아이처럼 매일이 설레는 나날이었다.



이전 01화 응원하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