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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Mar 22. 2024

괴로운 마음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처럼

쓰기를 하며 내가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은 본디 내가 원하는 바가 뜻대로 되지 않아 일어나는 감정이다. 잘하고 싶은데 잘 안될 때가 많아서, 분명 쓰고는 싶은데 뭘 써야할 지, 어떻게 써야할 지 몰라서 괴롭다. 그래서 쓰기 전부터 완성할 때까지 혼자 얼마나 구시렁대는지 모른다. 모르겠어! 못 쓰겠어! 그 단어가 뭐였더라? 하나의 글을 완성 할라 치면 저런 감탄사와 의문사가 수시로 튀어 나온다. 글쓰기 전까지 나는 내가 이렇게 혼잣말을 잘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그래도 시간이 가면서 배우는 건, 뭘 쓸지, 어떻게 쓸지 고민하는 시간은 짧게 마무리하고 액션을 취하는 게 낫다는 점이다. 내 경우는 그랬다. 나의 '생각'이 '사유'로 나아가지 못해서였을 것이다. 오래 생각한다고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것도 아니고 옆길로 새는 때가 많았다. 일단 노트북을 켜고 뭐라도 두들겨야 죽이 됐든 밥이 됐든 뭔가 먹을 만한 것이 나왔다. 물을 조금만 더 부을까? 조금만 뜸들이면 될 것 같은데? 같은 작은 희망이 싹튼다.


이렇게 괴로운 시간을 거쳐 글쓰기를 끝내면 괴로움이 없어질까? 분명 후련한 순간이 있다. 고이 키운 자식들을 시집장가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시원섭섭하다. 하지만 어제 나름 괜찮다고 생각했던 글을 오늘 다시 읽어보면 마뜩찮을 때가 대부분이다. 아무리 고쳐도 요상하고 '니가 진짜로 말하려는 게 뭐야?'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그러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또 읽고 고치는 게 지겨워 그냥 발행 버튼을 누르기도 한다. 어떤 작가의 글이든 초고는 다 쓰레기였다 는 말을 위안 삼으며…


그래도 계속 쓰는 건 쓰는 즐거움이 쓰는 괴로움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의 글을 끝맺고 나면 뭐라도 해 냈다는 성취감이 생긴다. 아리까리했던 감정이 정확히 뭔지 알게 될 때도 있고 나도 모르던 내 모습을 만나 신기하기도 하다. 나 자신과 조금 더 친해지는 느낌이다. 피드백을 받으면 누군가와 감응 했다는 생각에 기쁘다. 그 땐 괴로움이 보람으로 변한다.


법륜 스님은 즉문즉설에서 본인의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면서도 지치지 않고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비결이 뭐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야 돈 받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그렇지. 뭘 듣고 싶어 하는지 신경쓰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지껄일 수 있으니 얼마나 편해.”


돈 받고 하는 건 곧 일이 되고, 그러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속 시원히 다 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다른 사람 질문에 답해주는 일이 힘들지 않고 즐겁다는 요지로 하신 말씀이었다. 나 역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면 되니까 괴롭다고 툴툴대면서도 또 뭔가를 끄적이게 되는 것이다. 나의 괴로움은 사실 아이의 투정과 비슷하다. 더 잘하고 싶고 더 사랑받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니까.


하지만 스님의 말씀은 겸손함의 발로였을 것이다. 사람은 듣기보다 말하고 싶어하는 존재다. 쓰기 역시 말하기의 또다른 이름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심을 접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에게 도움을 주려는 노력이 어찌 즐겁기만 할까. 그에게 인간에 대한 사랑과 세상을 위한 사명감이 없었다면 아무리 자기 멋대로 대답하는 일이라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나도 언젠가는 내 마음가는대로 거침없이 말해도 세상에 무해하지 않고 빛이 되는 글이 써지길 바란다. 그처럼 성인군자도 아니고 내 한 몸 추스리기에도 버거운 나에게는 너무 무모한 바램이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동안은 괴로움도 달콤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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