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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Mar 29. 2024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선생님의 칭찬이 중요한 건 아니야

이제 좀처럼 엄마를 찾지 않는 중학생 딸아이가 방에서 소란스럽게 뛰어나오며 말했다.

"엄마 이것 좀 봐봐!!"

"뭔데?"

"내 일기장"

지금이야 학생인권이니 사생활 침해니 해서 일기 숙제가 금지되었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해도 일기 숙제가 있었다. 아이는 승전보를 들고 귀환한 전사처럼 자랑스럽게 일기장을 내밀었다.


“우와 이렇게나 많아?"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쓴 일기장이 알록달록했다.

”글씨 또박또박 이쁘게 쓴 것 봐. 놀이터에서 윤서랑 그네 타는 거 그린 거. 동생 밉다고 고슴도치처럼 그려놓은 거 다 기억난다.”


1학년 때 쓴 건 그림일기였다. 신기하게 한참 전에 봤던 일기인데도 어제 일처럼 다시 되살아났다. 아이가 조막만 한 손으로 뭐라도 쓰는 게 대견해서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기억 때문인 듯했다.


2학년 때 썼던 일기는 일취월장이었다. 분량도 많이 늘어났지만,  오늘 있었던 일을 순서대로 나열했던 단순구조에서 벗어나 그날의 사건, 감정들이 좀 더 세밀하고 생생하게 적혀 있었다. 일기 말미에는 담임선생님의 피드백도 있었다. 단정한 글씨체로 깨알같이 써 내려간 선생님의 피드백은 언뜻 보기에도 정성스러움이 묻어났다. 꼼꼼히 읽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날마다 아이의 마음에 공감해 주고, 선생님도 그랬을 거야 선생님도 해보고 싶네, 주주는 정말 글을 잘 쓰는구나 칭찬까지...


“주주야 2학년 때 선생님 정말 좋으시다. 주주 일기 열심히 읽으셨나 봐. 꼭 편지 받은 기분이었겠어.” “응. 그때 선생님이 나한테 일기가 너무 재밌다고 발표도 자주 시키고 칭찬 많이 해주셔서 일기 쓰는 게 숙제 안 같고 너무 재미있었어.”


하지만 3학년 때 일기는 들쑥날쑥 이었다. 분량도 그렇지만, 글씨가 날아가는 적도 많았다. 날아가는 글씨는, 하기 싫은 숙제 얼른 마치고 놀이터로 뛰어나가야지 하는 아이의 심정을 격하게 대변하는 듯했다.


"쥬쥬야 이땐 일기 쓰기 싫었어? 글씨만 봐도 진짜 하기 싫은데 억지로 쓴 거 같다."

"응 맞아. 2학년 때 선생님은 일기도 열심히 읽어주고 칭찬도 많이 해줬는데 3학년 때 선생님은 싸인만 띡 해주고 끝이었거든. 숙제만 해가면 되는 거니까 대충 썼지 뭐.


3학년 일기에는 선생님의 피드백이 거의 없었다. 가끔 재밌었겠다. 속상했겠다 식의 한 줄 문구도 있었지만, 싸인만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피드백이 길고 짧은 거야 선생님의 스타일 차이 일수도 있고, 선생님이 일기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척도는 될 수 없지만, 아이는 그전 선생님의 다정하고 기다란 답변에 익숙해져 그게 자신의 일기에 대한 무관심처럼 느껴졌었나 보다.


아이의 얘기를 듣고 보니 내가 '쓰는 마음'도 어린시절의 아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쓰고 싶어서, 마음이 후련해서 쓰는 것도 맞지만, 남들이 보라고 꺼내 놓은 이상 내 글이 많이 읽히고 반응이 좋으면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났으니까... 더 잘 써서 또 칭찬받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와 달리 내 마음은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없었다. 조금 더 복잡다단했다.


얼마 전, 끽해야 몇 십 명을 기록하던 내 브런치 글의 조회수가 몇 천을 넘어 만이 넘었다는 알림을 받은 적이 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하다가 입을 틀어막았다. 내 글이 포탈 메인과 에디터 픽에 노출된 것이다.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문득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혹시 내 신분이 노출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망상에도 빠지며.


내 글을 많은 사람들이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글 쓰는 게 더 어렵게 느껴졌다. 뭔가 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강박에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방문자수 대비 라이킷이 많지 않은 것도 나를 조바심 나게 했다. 내 글이 별로인가. 그렇담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까. 스타병에라도 걸린 듯 남의 시선을 걱정했다.


나를 응원하고 헝클어진 마음을 비우려던 나의 글쓰기는 인정 욕구에 코가 꿰여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고 있었다. 일기처럼 매일 쓰던 모닝 페이지도 건너뛰며 내 마음은 평정심을 잃어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몇 번의 롤러코스터를 탄 후 이제 나의 브런치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다. 쓰다 보면 누구나 글이 간택되는 경험을 할 수 있고, 그것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고수 작가님들은 조회수와 라이킷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글 쓰는 사람은 조회수가 아니라 자신의 '발행 글 수'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얘기에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아 가슴이 찌르르했다.


선생님의 칭찬처럼 느껴지던 내 글의 간택은 분명 아찔하고 잊지 못할 추억이었지만 그저 그뿐이었다. 무서워도 다시찾게되는 놀이기구저럼 또 그런 행운이 오길 바라지 않는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또한 잔잔한 내 쓰는마음 안에  스며들 수 있길 바란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기르고 싶다. 내 곁에 칭찬해 주는 선생님이 있든 없든 끊임없이 나 스스로를 인정하고 북돋으면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나도 아이처럼 오래전 내 글을 다시 들춰보며 추억에 젖어보고 싶다. 어쩌면 엄마도 이런 때가 있었어하며 아이와 공유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분명 이불 킥하며 볼이 빨개지는 순간도 많겠지만, 그보다는 오래전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할머니처럼 넉넉한 웃음을 지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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