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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Apr 12. 2024

돌보는 마음

나를 너를, 우리를


연재나 한 번 해볼까? 하고 주저주저하던 게 엊그제 같은 데 벌써 몇 주가 흘렀다. 매사 즉흥적이고 결단력이 부족한 내게 지정된 요일에 강제로 글을 써내야 한다는 상황이 다소 성미에 맞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도전해 보고 싶었다. 내게는 좀 더 계획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처음엔 주 2회 정도로 시작해 볼까 하다가 혹시라도 연재 횟수를 채우지 못할까 싶어 1회로 줄였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아주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주제파악을 잘했다고 해야 하나? 한 가지 주제로 글을 써낸다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 연재 글을 써내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하다 딸아이에게 하소연까지 했다.

“딸내미 엄마 오늘까지 연재글 써야 하는데 아직도 완성을 못했어.” “으잉? 엄마 웹툰도 써?”ㅋㅋ

그림까지 그리면서 연재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그분들은 더 대단해 보인다. 난 그림도 잘 못 그리지만 특히 기계로 그리는 그림은 엄두도 못 내겠다. 딱딱하고 네모진 것들은 죄다 딴 나라 물건 같다. 기계치라는 이야기다. 이런 생각을 하면 내가 옛날 사람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요즘은 중학생들도 다 컴퓨터로 숙제하고 파워포인트까지 뚝딱 만들던데, 내가 대학생 때 쩔쩔매며 하던 것들을 우리 딸아이는 벌써 척척 해내는 걸 보면 새삼 놀랍다.


어쨌든 연재가 쉽지는 않지만 애초 내 목표와 가까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내 쓰는 마음에 엄청나게 할 말이 많아 선택한 주제는 아니었지만, 쓰다 보니 내가 왜 쓰려고 하는지 왜 쓰는 사이 마음이 정돈되는지, 쓰고 나면 왜 기분이 좋아지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게다가 내 생활 습관과 단점도 보완할 수 있으니 분명 이건 행운일 테다.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써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혼돈의 카오스에서 빠져나와 좀 더 멀쩡하고 단정해진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은 (뒤돌아 보면) 집착이자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내 생각과 걱정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묘약과 같으니 어찌 행운이 아니라 말할 수 있을까.


쓰는 행위는 이런 지엽적인 행운 말고도 내 일상을 좀 더 촘촘하고 영글게 만드는 신묘한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 쓰기를 시작한 덕에 나는 내 일상을 좀 더 잘 살아가려 노력한다. 아무 일 없이 계속 쓰려면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최대한 많이 움직이려 애쓴다. 잘 쓰기 위해 한자라도 더 읽어야 하고, 잘 쓰기 위해 내 하루하루를 소중히 가꿔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쓰는 사이사이 감정의 굴곡과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좌절하는 것 또한 일상이지만 내가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알기에 금세 일어설 수 있는 것 같다. 어떤 작가의 말대로 부지런히 쓰기 위해 부지런히 체력을 키우다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까지 덤으로 얻는 것 같다.


일기를 시작으로 브런치, 연재까지. 어느새 내 일상에 쓰기라는 새로운 축이 하나 생기자 내 세계가 좀 더 확장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이곳에 오면 방대한 세상과 방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대부분 나처럼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비슷한 결에서 오는 편안함과 공감대로 내가 어디에 있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한 고전문학자는 글과 책이야말로 모든 사람을 가장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드는 매개체이며, 디지털의 가장 큰 장점이란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나 모든 데이터와 정보를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거라 설파했는데, 브런치 세상에 와서 이를 실감했다. 현실세계에서는 결코 만나기 힘들었을 여러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마치 방대한 수필집을 읽는 것 같았다. 무수히 많은 일상 속에서 자기만의 색깔을 찾는 방식으로 행불행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보며 공감하고 위로받았다. 그 방식은 대부분 쓰기로 이루어져 있기에 나는 어떤 연대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그래서 쓰면서 나는 가끔 나 스스로를 돌본다는 느낌을 받는다. 고통에서 나를 일으켜 주고 나쁜 생각에서 나를 건져주며 내 좁은 마음을 확장시켜 활짝 열어젖히게 만드는.

그래서 나를, 너를, 우리를 돌보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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