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선택지

by 스돕

전원한 병원에서의 입원도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이루어졌다. 첫날밤을 같이 보내주기로 했던 남편은 병원 방침 상 다시 돌아가야 했다. (간호간병 병동이었기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 한해 코로나 검사 후 음성으로 확인된 보호자만 상주할 수 있었다.)


처음 와 본 병원에서 혼자 밤을 보내려니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미 늦은 시간이라 병실의 환자들은 모두 커튼을 단단히 쳐 놓았고 정적만이 감돌았다. 나는 외딴섬에 홀로 떨어진 이방인 같았다. 다닥다닥 붙어있던 이전 병실과 달리 널찍한 병실 공간이 오히려 더 쓸쓸하고 휑한 느낌을 주었다. 이젠 다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낯선 환경에 환자복을 입은 내 모습을 보니 또 다시 서러움이 복받쳤다. 나의 밤은 계속 눈물범벅이었다.


다음날 나의 새로운 주치의 선생님과 만났다. 이번엔 엄마 아빠도 함께였다. 진료실로 우르르 들어오는 가족들의 모습에 선생님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위중한 환자 가족들 앞에서 흡사 사형선고와 같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나의 첫 주치의선생님은 일반적 치료방법에 덧붙여 환자를 살리고자 하는 본인의 열정과 완치가능성에 대해 강조하셨다. 하지만 이 분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내 병의 양상과 치료방법을 제시하실 뿐, 어떠한 호언장담도 없었다. 대신 내가 묻는 어떠한 질문에도 명쾌하고 구체적으로 답해 주셨고 난 안갯속 같았던(사실 맞닥뜨리고 싶지 않았던) 이 병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선생님을 만나고 보니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병원을 옮긴 것이 실수 같고 다시 돌아가고만 싶었는데 선생님을 믿고 맡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항암 치료를 몇 차례 진행하며 그 믿음은 점점 확고해졌다. 선생님은 매일매일 내 상태를 세심하게 체크하고, 아주 사소한 질문과 우려에도 즉각 피드백을 주셨다, 남자선생님들에게는 말하기 껄끄러운 부분도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래서 입원하는 동안 내가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바로 회진 시간이 되었다. 매일매일 독한 약이 혈관을 타고 들어오며 내 몸엔 갖가지 이상이 생겼다.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입안과 입술이 다 찢어져 괴로웠다. 발바닥엔 수포가 생겨 걷기 힘들었으며 온몸엔 발진이 돋아 간지러움과 아픔에 잠을 자기 힘들었다. 이런 변화가 생길 때마다 선생님께 이야기하고 곧 나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래도 견딜 수 있었다. 언젠지 모르지만 당신의 고통엔 분명 끝이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1년 전 아빠의 투병으로 서울 모 메이저 병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보호자로서 참 궁금한 게 많았는데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외래에서 고작 5분 남짓이 보통이었다. 그나마 환자나 보호자가 말할 기회는 거의 없이 본인이 설명하고 통보하고 끝나는 식이었다.


목소리가 쩌렁쩌렁해 진료실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던 그 의사는 70이 한참 지난 아빠에게 반말을 섞어가며 말하기 일쑤였고, 혹시 일정을 바꿔줄 수 있느냐는 엄마의 질문에는 치료에만 집중해야 할 본인에게 쓸데없는 요구까지 한다며 불같이 화를 냈다. 그곳에서 의사와 환자는 완전히 갑과 을이었고, 의사들의 권위의식이 엄청나구나 하는 인상만 받았다. 그런 의사도 만나봤기에, 이런 사려 깊고 찬찬한 선생님이 나의 주치의라는 사실이 더 감사하게 다가왔다.


너무나 뻔한 얘기지만 치료과정에서 의사의 스킬에 더불어 가장 중요한 건 환자의 마음과 의지이다. 환자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긍정적으로 이끄는 것 또한 의사의 역량이고 치료의 핵심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난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의지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 마음 편히 치료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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