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병실로 올라가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내 병명은 급성골수성백혈병이었다. 티브이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만 봐왔던 그 이름. 미지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줄만 알았던 그 병.
하얗고 마알간 여주인공이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남자주인공과 만나 열렬히 사랑했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에 불치의 병에 걸려 점점 말라가다 소멸해 가는... 본인의 고통보다 남자의 행복을 빌며 매몰차게 그를 밀어내지만, 남자는 그녀의 본심을 알아차리고 끝까지 옆을 지키다 결국에는 서로 다다를 수 없는 곳으로 떠나 눈물 콧물을 빼는..
아.. 나는 그렇게 하늘하늘 말간 여인도 아니고, 애가 둘이나 딸린 아줌만데 왜? 어질어질하며 픽 쓰러진 적도 없고 이렇게 멀쩡한데 왜? 그동안 남들한테 나쁜 짓도 안 하고 착하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왜? 억울하고 화나고 믿을 수 없는 감정들이 뒤죽박죽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제발 이 모든 게 꿈이길 기도하며 축축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예정대로 중심 정맥관 삽입을 위해 시술실로 끌려갔다. 골수검사 때와 마찬가지로 내 몸에 뭔가 물리적 압력이 가해진다 생각하니 또다시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렸다. 이 순간만큼은 내가 중병 환자가 되었다는 슬픔보다 얼른 이 상황을 모면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동식 침대에 누워 시술실로 이동하는 내내 멀미가 날 것처럼 어지러웠다. 두 세명의 선생님들이 숙련된 솜씨로 나를 옮기고 마취하고 통보하고 시술한 후 내 가슴팍에는 긴 줄이 생겼다.
시술실의 차가운 공기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몸을 덜덜 떨며 또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고
"에고.. 너무 무서우시죠? 이거 생각보다 안 아파요." 하며 아기 달래듯 나를 우쭈쭈 해주시던 선생님의 목소리에 얼마간 마음이 안정됐던 기억이 난다. 나도 아이들과 병원에 갈 적마다 안 아프다고 금방 끝난다고 손 꼭 잡고 우쭈쭈 해주던 듬직한 엄마였는데, 골수검사 때에 이어 두 번째 흑역사였다.
몸에 줄을 달고 나니 내가 정말 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점심을 먹은 후 바로 항암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남편의 급한 연락이 왔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니 항암을 하기 전 타 병원으로 옮기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두 시간 후면 항암이 예정되어 있었고 그나마 익숙해진 이곳에서 타 지역 병원으로 옮긴다는 것이 두렵고 꺼림칙했다. 겨우겨우 마음을 잡고 선생님을 믿어 보기로 했는데… 엄마 아빠도 한시가 급한 병인데 지금 또 전원을 하는 것에 걱정을 하셨다.
하지만 남편은 이게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임을 확신하는 듯했다.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정신없는 와중에도 나를 위해 동분서주한 남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렇게 엄마아빠를 설득하고 나는 조금 더 거리가 있는 타 병원으로 전원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