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니

by 스돕

단순하기도 하지. 어젯밤엔 꿈에라도 나올까 두려웠던 골수검사를 끝내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선생님이 2주 있음 퇴원할 수 있다 하셨는데, 2주 동안 이것보다 더 힘든 치료는 없겠지?라는 생각에 한고비를 넘긴 자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건 엄마한테도,

엄마 생각보다 괜찮았어. 이거 하기 전이 훨씬 더 무서운 거네. 끝나고 나니 별거 아니야. 하며 호기를 부렸다.


다음 날, 보호자와 함께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호출이 왔다. 남편과 나는 손을 꼭 잡고 주치의 선생님을 향해 갔다. 걱정이 안 된 건 아니었지만 설마 이렇게 젊은데, 지금 아픈데 하나 없이 이렇게 멀쩡한데 무슨 큰 병이기야 하겠어. 하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 출산을 했기에 안면이 있었던 선생님은 꽤 두꺼운 서류뭉치를 내밀었다. 내 병을 설명하기 위해 내가 알아야 것들이 이렇게 많다니.. 내 상황은 결코 단순한 게 아니었다.


장난기가 싹 빠진 선생님의 눈빛이 나를 관통했다. 꼭 나에게 뭔가 빚진 사람의 표정 같기도 하고 슬픈 영화를 보는 관객의 측은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는 제일 생각하지 싫었던 최악의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한 시간을 꼬박 앉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2주가 아닌 최소 몇 개월의 치료기간, 생존율, 재발 가능성, 회복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난 머리가 멍해지며 하늘에 붕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게 지금 현실이라고? 그렇게 힘들게 치료를 해도 어쩌면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치료가 끝나도 안심할 수가 없다고?


선생님은 나에게 아직 특별한 증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젊은 데다 따로 지병도 없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했다. 내 목숨에 관한 확률을 말하는 것이었다. 미룰 필요도 없고 빠를수록 좋으니 바로 정맥관 삽입을 하고 내일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했다.


진료실 문을 나오며 남편과 나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청천벽력 같은 사건 앞에서 충혈된 두 눈만이 깜빡이고 있었다. 믿을 수 없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진료실 밖에는 엄마 아빠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대한 멀쩡해 보이려 노력하며 엄마 아빠에게도 사실을 알렸다.

좀 오래 걸려도 치료하면 된데.라고 말끝을 흐리며.. 사색이 된 엄마아빠에게 아침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불쌍한 남편을 맡기고 난 다시 병실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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