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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May 16. 2024

혼자두고 가지 않을께

어제 놀이방 책상을 정리하다 딸아이가 쓴 짧은 글귀를 발견했다. 작은 메모지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또 나 두고 가지 마요..."


며칠 전만 해도 못 봤는데 언제 이런 글을 써 놓았을까? 책상 유리막 아래 잘 끼워 넣은 걸 보니 정말 나 보라고 써놓은 것 같았다. 엄마 앞에선 마냥 어리광 부리고 수틀리면 바로 떼쓰는 막내아이.. 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1년 넘게 엄마와 따로 자다 이제 다시 안방으로 복귀한 아이는, 자기 전이면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성화다. 그동안 저의 희생을 보상 받겠다는 듯 늦은 시간에도 아주 당당하다.


요즘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건 할머니 어렸을 적 이야기다. 학교에서 검정 고무신을 자주 보여주는데 만화 속 배경이 할머니 어렸을 시절이라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어제도 할머니가 어렸을 때 왜 동네에서 ‘울베기’란 별명이 붙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셋째 이모할머니가 태어나 할머니는 증조할머니 등만 꼭 끌어안고 잤다는 등의 이야기를 속사포로 들려주었다. 빨리 재울 요량으로 마음이 급했다.


하지만 아이는 여전히 할 말이 많았다.

“근데 엄마는 왜 가끔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어봤어?”(다 알면서 왜자꾸 묻느냐는 뜻인가?) “음.. 리리가 엄마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러지. 계속 계속 듣고 싶어서..”

"근데 왜 아빠는 내가 엄마가 더 좋다고 해도 기분이 안 나쁘다고 하는거? 신기해. 나 같음 기분 나쁠 텐데..”

“그러게. 내일 아빠한테 물어볼까?”

“근데 리리도 맨날 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물어보잖아.”

“응 근데 엄마는 대답 안해주고 맨날 둘 다 좋다고 하잖아.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이는 토라지는가 싶더니 점잖게 말했다.


“엄마 나도 만약에 애기가 두 명 생기면 딱 한 명만 못 고를 것 같아. 나도 엄마 닮아서 애기가 다 귀여울 것 같아. 엄마 마음 동감해.”


동감한다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이의 단어 선택이 놀랍고 감동스러웠다. 역시 고슴도치엄마인 나는 사랑가득한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주었다. 마냥 어린 줄 알았던 아이가 아빠 마음, 엄마 마음을 헤아릴 정도로 많이 컸구나. 가끔은 엄마가 집에 없던 때가 떠올라 저런 글도 써놨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다.


요즘 나는 집에서 전과 다름없이 멀쩡한 엄마다. 아이들은 이제 엄마가 가끔 병원에 간데도 집에 못올까 걱정하는 법이 없(다고 믿었었고)고, 엄마가 힘들까 봐 집안일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가끔 누가 설거지 좀 안 해주나 싶긴 하지만 나도 아이들이 나 때문에 억지로 철들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아무 걱정 없이 떼쓰고 엄마 앞이니까 더 어리광 부리는 아이들을 볼 때, 속이 터지다가도 자연스러운 아이의 모습이 변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가끔은 내가 환자였다는 게 너무 생경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그제는 아침 일찍 병원 갈 일이 있어 급하게 아이가 먹던 요거트로 아침을 때웠다. 1년 동안 금기 음식이었다가 얼마 전 선생님이 조금씩 먹어도 된다고 하셔서 기쁘게 먹었다. 역시 금기 음식이었던 주꾸미와 우유를 조금씩 먹어도 탈이 없길래 이제 정말 괜찮은가 보다 하고 좀 많이 먹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배가 부글거리고 물 설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작년 몇 달이나 고생했던 장숙주 증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하루만 고생하고 지금은 나아졌지만, 매사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 딸아이의 메모를 보니 정신이 더 번쩍 다.


이렇게 무탈하게 지날 수 있음을 감사해야겠지만 아직 조심해야 할 것이 많은 사람임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 지내려 한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아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음식 가려먹기, 무리하지않기.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가 잊지 않게 도와줘서 고맙고 고마워. 너만 혼자 두고 가지 않을께. 꼭 그럴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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