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내 하찮은 머리와 아이의 매직을 위해 미용실에 다녀왔다.
하찮은 머리의 어원은 우리 딸아이로부터 나왔다. 어느 날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나가려는 차 딸아이가 숨 넘어가게 웃어젖히는 거 아닌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는 내 의아한 물음에 아이는 엄마 머리가 너무 하찮아서 웃기다고 했다.
으잉? 근 2년 만에 머리를 묶고 이 정도면 괜찮네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참인데 하찮다고? 항암 차 머리를 민 이후 난 쭉 모자를 쓰고 다닌다. 뒷머리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자랐지만 웬일인지 앞머리는 아직 쥐 파먹은 수준이다. 게다가 머리숱이 적어져서 볼륨이 없다고 해야 하나? 볼륨씩이나 바라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모자를 벗으면 안 그래도 급 노화한 얼굴이 만천하에 발가벗겨지는 기분이다. 그래서 보호색처럼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이제 뒤꽁지가 어깨에 닿아 그런지 몇 가닥은 안으로 몇 가닥은 바깥으로 말려 모자를 써도 정돈이 되지 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숱은 진짜 적고 짧은데 이리 삐쭉 저리 빼쭉한 곱슬머리를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동료 환자들을 봐도 나와 비슷한 곱슬이다. 그래서 일명 반 묶음으로 머리 몇 가닥을 모자 뒤 꽁무니에 빼내 고무줄로 짱짱하게 묶었다. 꽤 괜찮은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다. 앞모습은 분명 괜찮았는데.. 뒤 꽁지머리가 웃겼구나. 하긴 고무줄을 대여섯 번 돌려서야 겨우 묶었으니 그럴 만 하기도.. 아이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하찮은데 귀여워. 으하하하하하”
위로 섞인 웃음에 고무줄을 살포시 풀러 내 머리의 볼륨을 살리는 노력을 했다. 내가 머리를 완전히 밀고 집에 왔을 때 안타까운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던 둘째와 달리 빵 터져 웃던 해맑은 아이다. 그때도 그녀는 엄마가 기영이(만화 검정고무신에 나오는)랑 김계란(빡빡이 유튜버란다) 닮았다며 숨 넘어가게 웃었더랬다.
그래 네가 웃으면 엄마도 좋아.
원래 반곱슬이었으나 몇 번의 시술로 단정함을 유지하던 아이 머리는 엄마의 방치로 인해 심하게 구불거리는 수준이 되었다. 구불구불 탐스러운 머리는 내 오랜 로망이었지만 아이 사정은 달랐다. 건강미(?) 넘치게 숱이 너무 많고 다듬은 지 오래되어 특히 비가 오는 날은 얼마나 부스스한지. 사춘기 특유의 그 삐딱함과 엇나감을 대변하듯 산발이 된 머리를 똥머리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상태가 된 지 오래였다. 늘 시간이 없다던 그녀는 기말고사가 끝나서야 귀한 시간을 내주셨다.
아이 머리를 위해 미용실에 가며 나도 작은 소망 하나를 품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대로 머리만 살짝 다듬으면 순식간에 세련된 숏컷으로 변신할 것 같았다. 그럼 모자 없이도 당당히 나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아이가 시술을 받는 사이 디자이너 선생님께 조심스레 상담을 요청했다. 그리고 그간 고이 기른 머리를 자르고 다듬었다.
하지만.. 난 여전히 모자를 쓰고 다닌다. 머리를 잘라 볼륨이 살아난 듯도 했지만 여전히 삐쭉 빼죽이라 모자를 써도 정돈되지 않는다. 내 머리는 아직도 하찮다.
우리 아이는 어떨까? 숱을 쳐내고 길이도 자르고 매직으로 눌러주니 내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의 뒷머리는 여전히 구불거린다. 시술 전 디자이너 선생님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이가 똥머리를 자주 해서 그런지 곱슬이 정말 심해요. 매직을 해도 다 안 펴질 수 있는데 괜찮으세요?”
이건 안 펴진 정도가 아니라 파마를 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가벼워진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이 머리는 여전히 고집불통처럼 구불거리지만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기말시험 후 좀 더 가벼워진 아이 마음처럼, 똥머리로 꽉 묶지 않아도 풀러놔도 참 보기 좋다. 이제.. 시험 끝났으니 딱 하루만 학교 빠지고 싶다는 투정만 안 부렸으면 좋겠다.
혜야 여름 방학이 멀지 않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