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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돕 Mar 04. 2024

가끔은 나도 애교쟁이가 된다

사실은 애알못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만약 우리 집 유일한 남자가 이 제목을 본다면 이 사람, 요즘 먹는 약이 너무 많아 정신이 나간 거 아니야 하고 도리도리 세차게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


그렇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 10년 차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 남편에게 애교를 보인 기억이 없다. 아마 옛날 옛적 애교 비슷한 뭔가를 시도하거나 시도하려 노력한 적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 다.


이렇게 평생을 애교와는 담쌓고 지내 온 내가 스스로 그것도 당당하게 자신 애교쟁이라 칭할 수 있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녀 앞에만 서면 나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모습이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집 막내 앞에서 나는 세상 다정하고 혀 짧은 엄마가 된다. 혀 짧은 게 무슨 애교냐고 항변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무뚝뚝한 k-장녀인 내겐 40년이 넘도록 혀가 짧아졌던 기억이 없다. 오직 아이들 앞 한정이다.


주말을 맞아 아이들이 친가에 다녀왔다. 막내는 몰라도 아이가 모두 친가에 가는 일은 드물었다. 머리 큰 첫째는 이제 자기 방이 아닌 곳에서 자는 걸 싫어한다.  길고 긴 겨울방학, 휴가를 얻은 기분이었다. 무엇보다 방학 최대 난제삼시세끼 챙겨줘야 하는 부담감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외식, 쇼핑, 영화 3종세트를 해치우며 나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사이사이 아이들이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이들이 돌아오자  입은 봇물 터지듯 터졌다. 일단 부비부비 안아준 다음 밥은 뭐 먹었냐, 또 한밤중에 라면 먹고 아스크림 먹고 몸에 안 좋은 거 잔뜩 먹었냐, 잠은 몇 시에 잤냐 숙제는 다했냐 질문세례를 퍼부었다.


중학생이 되어 이제 자기 방에  주로 꽈리를 틀고  앉아있는 첫째도 오늘은 잠시 과묵한 컨셉을 버리고 수다쟁이가 되었다. 선생님 오기 하루 전에 허겁지겁 해치우느라 애먹던 학습지 숙제를 거의 다 끝냈다고 자랑이다.


고뤠? 이 대목에서 내 변신이 시작되었다.

“오구 오구 그래 쪄요? 징짜 징짜 잘해쪄여.”라고 말하며 첫째의 궁둥이를 토닥였다. 아이는 못 볼 걸 봤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한 번 쓱 보고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웃참하는 걸 보니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생각한다. 북한군보다 무섭다는 대한민국 중학생한테도 엄마의 애교는 통하는구나.ㅋㅋㅋ


첫째가 들어가자 나는 본격적으로 애교 모드에 돌입했다. 내겐 아직 아기 같은 둘째의 볼때기를 마구 만지고 엉덩이도 잘 있나 두드려보고 꾹꾹 안아주었다.  “우리 이삐는 엄마 안 보고 싶어쪄요?” "우리이삐 누구땰?" "우리이뿐 똥강아디"

아이가 잠들 때까지 만지고 안아주며 같은 말을 반복한다. 둘째는 언제나처럼 지치지 않고 "엄마땰" 하고 대답해준다.


아이는 자려고 누운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엄마를 느꼈는지 눈을 한번 떴다 감은 다음 씨익 웃는다. 그리고 내 목덜미에 팔을 뻗어 꼬옥 안아준다. 아마 아이는 이게 엄마의 애교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기끔 호랑이처럼 포효하기도 하지(방학엔 더 자주..) 대개의 엄마는 예전부터 이렇게 혀 짧은 소리를 왔기 때문이다.


어느날 둘째가 나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내가 뭐만 하면 다 잘했다고해?자기도 밥 다먹은게 화장실 다녀온 게 뭐그리 잘한 일인가 싶었나보다. 하지만 그녀는 알까? 엄마의 혀가 다시 길어지기 전에, 제  머리가 더 크기 전에 이 순간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사실 이건 내 자신한테 해주고싶은 말일 것이다.


이제 제법 의젓해진 그녀는 아직도 엄마 앞에선 엉덩이를 씰룩씰룩 거리고 엄마처럼 혀 짧은 소리도 잘 낸다. 애한테도 혀 짧은 소리를 낸 적이 있었지만 그 기간이 그리 길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 아쉽고 미안하다. 


남편은 커녕 엄마아빠도 알지 못하는 나의 몹쓸 애교. 우리 아이들한테만은 마음껏, 오랫동안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받아주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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