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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Jun 22. 2023

돈 자랑하기

- 오프닝에 더하여

이것이 내게 더 잘 어울려. 결혼을 준비하며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남편이 될 나의 남자친구에게도, 딸의 결혼식을 아낌없이 지원해주고 싶은 부모님에게도,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에게도 같은 말들을 했었던 것 같다. 결혼을 준비하다 보면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듣게 된다. 결혼식에 대한 로망, 기대. 이런 것들이다. 나도 한 번쯤 생각해 본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입장하는 나. 그날의 신부. 이제 곧 남편이 될 나의 남자친구가 세상 가장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장하는 나를 바라볼 그 순간. 뭐 이런 것들이 떠오른다.


그러나 결혼은 현실이었다. 하고 싶은 만큼 돈을 쓸 수 있고, 또 마음먹는 만큼 쓰지 않을 수도 있는, 결국엔 돈 문제였다. 그렇다면 나의 결혼이란 내게 돈이 얼마나 있다는 것을 얼마큼 자랑할 것인지의 여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결혼에 대한 나의 로망은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결혼식에 관한 정보들을 정리하며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할지, 어떤 마음으로 다가가야 할지 답답하던 그때, 내 안에 스쳐가듯 확실한 결론이 생겼다. 돈을 보여주는 결혼식이 아닌, 나를 보여주는 결혼식이고 싶었다. 나다운 결혼식. 


나다운 결혼식이란 목적을 세우고 하나둘씩 정리했고 조금씩 실천했다. 결과적으로 촌스럽지만 소박한 결혼식이었던 나의 결혼식은 결과적으로 5년이 지난 지금도 만족스럽다.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던 축하의 장소, 신에게 사랑의 서약을 맺었던 약속의 장소. 부모를 떠나 우리만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만들어보겠다는 나와의 다짐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혼돈의 장소. 그 모든 것이 그 장소 안에 있었다. 우리의 결혼식은 스몰웨딩도 아니었다. 그저 내게 잘 어울리는 결혼식이었다. 


나는 가끔 나의 결혼식을 생각한다. 세상이 자꾸만 나만의 방식을 버리고 세상을 따라가라고 유혹할 때,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일에 대해 누군가 의미 없다 여기며 회의적일 때, 잠시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에 대한 점검을 스스로 하지 않고 다른 이들을 통해 비교하며 나아갈 때, 그때마다  생각한다. 내게 잘 어울리는 모습을 생각하고 집중했던 그때를 떠올린다. 그것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나만의 아름다움, 나의 가치관, 나의 세상이 그 모습 그대로 가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상기해 주기 때문이다. 결코 돈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추억. 그때의 기억과 냄새. 사람들. 나는 가장 나다운 모습이었을 때 아름다웠다. 


나는 요즘 돈에 대해 생각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이 얼마나 많은지에 관해 이야기하려던 건 아니지만 돈은 없다가도 있고 있다가도 없는 게 돈이라고 아빠는 늘 말했었고, 노골적으로 돈을 아끼는 사람보다는 잘 쓰고 베푸는 사람이 좋다. 다들 돈에 대해 생각해 봐서 알겠지만 그건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돈을 대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이 불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돈 때문에 죽는 생명들을 보며 신을 원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금만 관심 있게 공부하거나 생각해 보면 신은 돈을 만들지 않았다. 돈은 전적으로 인간이 만들어낸, 아니 더욱더 정확히 말하지만 인간의 욕망이 또 다른 욕망들과 견줄만한 대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 신을 원망해야 한다면 왜 인간을 내버려 두기만 하느냐, 하는 질문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 저절로 부가 따라오는 현상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돈에 대해 지긋지긋한 사연으로 산 사람들의 삶에 돈을 좇는 삶이 옳고 그르다,라고 나는 감히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이 돈 자랑을 하는 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 갖고 있는 돈으로 누군가 돈 때문에 슬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차피 모두 불공정한 상태로 태어나 살아가고 그 상태를 끊어내거나 돌이키기란 쉽지 않다는 건 모두 공감할 거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을 상대적인 평가를 반복하며 절대적으로 살아가는데 그것은 대부분 비극이다. 어차피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삶의 무게를 버티고 살아간다. 모두가 그 비극을 마주하고 있다면 상황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돈이 없는 당신보다는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는 건 분명하지,라는 알량한 자만심을 접어뒀으면 하는 것이다. 


내가 언젠가 돈이 정말 많아졌을 때에도 나는 나보다 돈을 사랑하지 않고 싶다. 내가 언젠가 돈이 정말 없어서 앞이 깜깜이 보일지라도 나는 내 삶을 비관하고 싶지 않다. 돈은 그럴 작정으로 내게 왔다가 갈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더 멀리 가 버릴 수도 있지만 돈을 만들어낸 우리는 반드시 돈과 같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다. 돈을 자랑하기 전에 나 다움을 자랑하고, 돈으로 가려진 세상을 벗겨내 진실을 보기를 원한다. 나에게는 훈련이 필요하다. 돈 자랑하는 너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능력. 돈 자랑하고 싶은 나의 마음에 나 다움이 숨어 있는지 진실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 나의 능력은 훈련 중이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그래서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이미 그럴 것이라 믿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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