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연재]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외로운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박혜경의 목소리다. 그녀가 부르는 이 한 줄의 가사는 정말이지 고독하고 지독했던, 외로운 날들이 끝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 무언가 싱그러운 새로움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것 같은, 이렇게 수식어가 길 수밖에 없는! 희망으로 가득할 거라는 착각을 하게 한다. 절망과 외로움이란 인간이 느끼는 가장 위태로운 마음이 아닐까. 피하고 싶고 저 먼 곳으로 내던지고 싶고 피하고 싶고 감추고 싶은 외로움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여기 있다.
나는 대체적으로 나 자신이 솔직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솔직함으로 인해 관계에 위태로움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위태로움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아니러니 하게도 솔직함이었다. 어떤 이들은 절망 속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기도 한다는데, 그건 너무 판타지 같은 이야기이고, 만약 그 새로운 방향성이라는 게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아서 나는 함부로 절망 속에서 무엇을 발견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내 솔직함은 언제나 무기와 같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는 것. 절망 속에 있으면 나 지금 절망 속에 있으니 누군가는 좀 애를 써서 나를 좀 건져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기쁜 일이라고 여길만 한 일이 생기면 (인생에 그런 경험은 아주 짧거나 찰나였지만) 그 마음까지도 솔직함으로 표현했다. 거의 전 재산과 다를 바 없는 돈을 기부한다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밤 새 그 행복했던 이야기를 한다거나, 어떻게 하면 이 행복한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일들을 조금씩 실천하기도 했다.
이성과 감성에 솔직함으로 충실했던 나는 모든 이들이 그럴 거라 생각했다. 술수와 거짓은 아주 나쁜 사람들만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아주 나쁜 사람들'이란 일단 내 주변에는 없으며, 있다고 하더라도 나와 나의 가족과 친밀한 사이는 아니며, 한 때 친밀했다 하더라도 지금은 깊은 관계가 아니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아주 나쁜 사람들'이란 평범함으로 위장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건 나의 잘못도 아니고, 나쁜 사람들이 되어버린 그 사람들도 아니라는 걸 아는 데까지는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했을 뿐이다. 거의 대부분은 아주 나쁜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을 정당화하기에 급급해하고 스스로가 그런 사람인지 알지 못한 채 변해간다. 그 변화의 단계에 외로움이 찾아온다. 나 이대로 나쁜 사람이 되는 건가, 하는 실망감도 함께 밀려온다. 우리가 외면했던 우리의 나쁜 모습을 보는 날엔 세상을 이제야 이해하게 됐다며 체념하기를 반복한다. 조금은 달라질 수 없을까. 그저 나쁜 사람으로 나는 평범해져야 하는가.
언젠가 서점에서 만난 위로의 문장들도 지긋지긋해진다. 그 위로의 문장마저 돈을 주고 사라는 것 같아서, 이 세상에 그냥 얻을 수 없는 마음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또다시 씁쓸한 마음으로 서점을 나온다. 책이 아니라면 영화가, 영화 속에 멋진 주인공들의 짧은 대사가, 나쁜 우리를 조금은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해 주는 것 같거나, '너와 같은 사람 여기 있어요.'라고 동조라도 해주는 것 같은 날이면 '뭐, 나만 쓰레기는 아니네, ' 하며 근본 없는 안심을 마음에 간직하고 잠이 든다. 그리고 또다시 우리는 아침이다. 일상을 반복하며 조금 나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외롭고, 그리고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는 또 서점을 어슬렁 거리며 위로의 메시지를 찾아 헤맨다. 돈을 주고 그 위로를 산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외로운 날들은 정말 안녕을 고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싱그러운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까. 살아온 날들을 생각해 보면 남은 날들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세월 중 외로운 날들에 대해 안녕을 고할 수 있는 그때는 과연 언제 올 수 있단 말인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날들을 반복하고 있는 거라면 일단 목부터 풀어야 하나, 고민이다. 외로운 날들이여.... 하다가 안녕을 하지 못하면 안 될 테니.
동물들도 외로움을 느낀다. 생명이 지닌 본성이다. 세상은 본래 만들어지거나 진화될 때부터 홀로 무엇인가를 해 내거나 혼자만의 방법으로 변화하지는 않았다. 모든 생명은 서로의 영향을 받거나, 그 서로에게 기대어 살거나 또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으로든 변해왔다. 돌고래는 바다를 헤엄치다가 새끼를 낳으면 새끼의 주변을 한참 헤엄치고 이내 새끼와 함께 헤엄친다. 고양이는 세상에 태어나 어미의 공간에서 살다가 어미가 독립을 허락하는 날, 독립을 시작한다. 북극에 사는 펭귄은 더더욱 놀랍다. 무리가 함께 다니지만 헤엄을 치기 위해 대장 펭귄같이 보이는 한 마리가 바다로 뛰어들면 기다렸다는 듯 함께한다. 함께하다가 헤어지는 모든 순간에는 그들만의 질서가 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대자연은 그들을 이미 그렇게 만들었다. 그들에게도 외로움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날들이 있다면 어쩌면 그들은 함께 있음이 본성이기에 외로움이 곧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게 하는 일일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은 지구가 만들어 놓은 질서와 별개로 살아간다. 외로움을 가장 잘 느끼는 이유 중 하나다. 외로움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산골짜기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사람을 피해 왔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사람에게 상처를 받고,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는다. 그러나 사람이 자연으로부터 치유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모순 아닌가. 외로움은 분명 인간관계의 커뮤니티가 깨졌음을 느꼈을 때 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저 모든 일들을 회피하겠다는 뜻인데, 회피는 그렇다고 쳐도,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러나 일리가 있다. 우리의 커뮤니티는 어쩌면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 인간이 본래 속해 있던 곳. 그곳을 찾아야 한다. 동물의 무리가 자신들의 영역을 자신들도 모르게 지키고 있는 것처럼 인간이 자꾸만 거스르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나도 처음 외로움이란 단어를 떠올렸을 때, 누군가와의 헤어짐을 먼저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연대하고 있던 사람들과의 조우가 더 이상 불가능해졌을 때 오는 상실감. 그 상실감을 오래 붙잡고 있다 보면 외로움이 밀려왔다. 어떤 이들은 그게 세상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라며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그것이 위로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외로움을 정당화시키는 공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해야 하고, 그 옳지 않은 일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을 키워내겠다는 다짐과 같은 것을 들려줬더라면 글쎄, 나는 공격처럼 느껴지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언제나 이상한 세상은 내가 변하기를 원했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인데 말이다.
괜찮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심지어 돈을 주고도 살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침묵을 택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들로 앞으로의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당장 나는 외롭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일단 저는 계속해서 쓰는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계절은 내일도 바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임작갑니다.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는 동물권과 생명존중에 대한 생각을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분들과 함께하고자 연재하게 된 코너-ㅂ니다.
이번 연재를 '동물에세이, '라는 카테고리로 묶고 싶지는 않습니다.
물론, 주로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결국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몇몇의 동물 애호가들 또는 환경 운동가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닌
사람이 사는 이야기,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이야기가 될 테니까요.
이번 연재에서는 동물권에 관한 좋은 책을 소개하기도 합니다.
모쪼록 이번 연재를 통해 여러분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 지길,
일상에 쓸모가 있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