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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Sep 23. 2023

헤어지지 않을 결심

[연재]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영화를 본 후,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뒤에도 정리가 안된 이 마음은 영화 때문인가, 나의 짧은 생각이 영화의 끝에 가닿지 않았기 때문인가. 내가 명작이라 생각하는 몇몇의 영화들은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주는 영화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전 세계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영화였고 많은 사람들이 극찬을 하며 개개인의 인생에 소위 인생영화로 등극하기도 했다. 나도 영화를 본 뒤 그 여운이 오래갔다. 영화 속에서 각자가 좋아하는 장면들이 다를 테지만,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여기다.


해준,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시다가 뒤돌아본다.

직벽의 끝에 앉아 위스키 마시는 도수, 기분 좋은 듯 눈 감고 음악에 집중하다가 인기척 느끼고 돌아본다. 차가운 결의가 담긴 얼굴로 달려오는 서래. 도수를 밀어버린다. 도수, 허공에서 손을 휘저으며 서래를 잡으려 하지만 거칠게 깨진 손톱 끝이 그녀의 손을 스칠 뿐이다. 왼 손등에 할퀸 상처가 생긴다. 롤렉스 시계 분침이 10시 1분에서 2분으로 넘어간다. 추락하는 도수. 서래도 달려온 관성 때문에 떨어질 뻔했지만 허리에 자일을 묶어 나무와 연결해 둔 덕에 가까스로 멈춰 선다. (헤어질 결심 각본, 정서경 박찬욱)


  이 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영화의 시작으로 가보자. 영화의 첫 장면은 주인공 해준이 산을 오른다. 형사 해준은 그곳에서 변사자를 발견하고 사건을 접수한다. 그 사건의 시작으로 영화의 서사도 함께 시작한다. 변사자의 아내 서래를 만난 이후 해준은 알 수 없는 자신의 감정에 요동하게 된다. 피의자인 서래, 그전에 인간으로, 한 여자로 살아가는 서래의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 발견 때문에 자신이 눈앞에 해야 할 일을 망각하게 되기도 하는데, 관객은 그 모든 과정을 해준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영화인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다. 관객의 이런 혼란과 입장, 그로 인해 펼쳐질 반응들을 기대하며 해준과 서래의 서사를 만들었을 것이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꼭 작가주의 영화가 아니어도, 액션이나 로맨스, 장르물과 같은 영화도 한 편의 서사를 통해 그 영화가 주려는 본질적인 메시지를 관객이 고민하게 됐다면 그것은 좋은 영화에 속한다. 나의 경우에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은 아주 좋은 영화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해준의 마음이 사랑이냐, 아니냐, 하는 논쟁을 펼칠 수 있고, 그렇다면 나아가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래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많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서래는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 하는 점이고, 서래를 이해해야 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해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걸음 본질로 나아간다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고, 나쁜 사람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점이다. 우리는 이 짧은 영화 한 편을 통해 기존에 의심 없이 믿고 있었던 삶의 작은 단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다. 이야기가 우리에게 살아 움직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는 동물과 사람의 서사를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관계의 본질을 깨닫곤 한다. 자신의 주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반려견이 그 주인을 잊지 못하고 무덤 앞으로 늘 찾아갔다는 이야기, 반려견을 아주 멀리 떠난 주인이 언젠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 세월을 잊고 다시 반가워했다는 이야기. 수의사를 떠나 야생으로 돌아간 동물이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다시 수의사 곁으로 찾아와 인사를 하고 갔다는 이야기. 동물이 사람에 대하여 그야말로 그리워하고 때론 보은 하며, 기억한다는 이야기는 존재가 다른 우리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동물에게는 사람과 함께 했던 날들이 그들의 짧은 인생에 중요한 서사로 자리 잡고 있다. 동물이 그 서사를 중요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은 그 사건과 사건에 따른 감정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내 곁을 떠난 주인의 발자취를 매일 반복하며 기억하고, 언젠가 나를 사랑해 줬던 그 손길과 냄새를 기억하고, 아픈 곳을 치료해 주며 좋은 음식을 줬던 누군가의 호의를 매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잡한 생각에 얽혀 사는 사람과 달리 좋으면 좋고, 행복했으면 행복했다는 그 마음만을 기억하는 동물들은 도무지 그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없는 구조로 태어난 존재다.


동물을 대하는 사람의 마음은 어떤가.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강아지도 어쩌면 처음에는 나의 이기적인 마음으로 그를 대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외로움을 채워주는 존재, 나만을 바라봐 주는 존재로 말이다. 이렇게 나를 위해 시작한 이 마음만을 가지고 간다면 나와 함께 하는 존재는 불행해질 것이 뻔하다. 처음부터 나를 위해 존재하는 네가 원해야 할 것은 오직 나를 위한 일이어야 하니까. 이것은 관계의 오류를 낳는다. 사랑은 온 만큼 줘야 하는 것. 사랑이란 그 시작은 동정이거나 외로움이거나 그 밖의 수많은 다른 모양일 수 있지만 그 모양이 과정에 이른다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공평하게 나누어야 할 행복의 무게가 된다. 나와 함께하는 개도 나만큼 행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존재하기를 원했던 너에게서 너를 위해 존재하는 나로 우리들의 관계는 균형을 이뤄야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이 모든 이야기가 조금은 쉽게 와닿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동물과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과연 관계에서의 균형에 대해 이야기를 한들 과연 쓸모가 있는 말일까. 나는 결코 그렇다고 본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오늘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고, 잠을 자고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는 모든 일은 어느 한 종류의 생명의 존재로 인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의 필요를 누군가의 무한한 희생으로만 채우고 있다면 그것은 언젠가 불균형을 이루어 미끄러지거나 쏟아진다. 생명 간의 거리에도 늘 적당한 선과 기울기는 존재하므로 그 높낮이가 앞서거니 뒷서거니는 해도 오롯이 한쪽으로만 치우칠 수는 없다. 사랑은 받은 만큼 주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이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만약 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그 사랑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인간사에서 이미 경험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동물과 자연이 생명으로 동일한 인간에게 오늘날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준 만큼의 사랑이다. 그것은 오롯이 우리 모두를 위한 균형을 위해서다. 그래서 그들이 오늘도 멈추지 않고 있는 일이 있다. 헤어지지 않을 결심.


내가 <헤어질 결심>에서 위에서 언급한 이 장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해준과 서래와의 관계가 있기 전, 도수와 서래와의 관계에 주목해 볼 수 있었던 대목이기 때문이다. 이 장면은 관객이 서래를 이해하게 되는 결정적 장면이 되기도 하는데, 사랑이란 말은 일방적일 수 없으며, 그전에 사랑을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개인의 진지한 생각이 필요로 하다는 확신을 하게 하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의 서사는 그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에는 세계의 움직임과 다를 바 없다. 그 세계는 끊임없이 어떤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질문하는데, 개개인의 몫이 버거울 때는 다른 사람의 자리에 있는 서사도 들여다보며 우리는 내면의 성장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어쩌면 우리는 개개인이 조금 더 안락하게,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한 다양한 방법, 그를 위한 이기적인 마음을 배우기 이전에 주는 사랑과 받는 사랑에 대한 균형을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삶에서 인간에 대한 관계 속에서 고민이 멈추지 않는다면 자연이 알려주는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중력이란 이름으로 떨어지는 자연의 힘은 상처를 남길 수도 있는데, 또 그 중력이 있기에 안전히 버틸 수 있는 방법을 알아차리는 것. 시간이란 시계 분침으로 알아갈 수 있지만 도저히 눈에 보이지 않는데 바로 그 힘은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붙잡을 수 없어서 괴롭지만 그렇기에 괴로운 일들도 저 멀리로 보낼 수 있다는 편안함을 느낀다는 것. 이런 놀라운 일들을 반복하는 지구는 (그리고 가까이에는 우리 곁에 있는 동물들이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이 혼자만의 세상을 꿈꾸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우리는 아직 인간과 헤어질 결심을 하지 않았으니, 인간인 우리가 이제 돌이켜 달라고 말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렵지 않다. 그들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듯. 우리도 함께하는 존재로 그들 보다 더 무엇인가로 나아가지 않고 서 있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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