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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주혜 Sep 26. 2023

편파 판정

[연재] 생명으로 우리는 귀엽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나의 경험상 이 말은 참 무섭다. 부부가 되어 가장 좋은 점은 헤어질 곳이 없다는 점이다. 나는 남편과 좁혀지지 않을 것 같은 의견 충돌에 버럭 화를 내고 집을 나서 본 적도 있지만 결국에는 갈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서먹한 분위기로 한 공간에 있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닌데, 그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사람이 먼저 사과의 제스처를 취한다. 정작 우리가 싸웠던 그 본질에 대해서는 제대로 언급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분위기에 또 그냥 고개를 끄덕이며 싸움을 끝낸다. 그래서 문제는 다시 똑같은 문제로 싸운다는 거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본질을 다룬다고 해서 부부간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 번은 제대로 잘잘못을 따지고 들어야지 하면서 감정이 앞서는 말들을 내뱉거나 서로를 향한 마음마저 왜곡하는 판단의 언어들이 쏟아지는 날이면 다시 집을 나서야 하나 고민한다. 싸움의 원인은 어떤 사건일지 모르지만 싸움이 반복되는 이유는 언제나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은 탓'이다. 나는 막상 집을 나서면 갈 곳이 없는 것을 깨닫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나의 부부 싸움은 그렇게 반복된다.


내가 생각한 결혼은 이런 진퇴양난의 상황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결심한 결혼은 그랬다. 인생의 수많은 기회와 방향들을 포기하고 한 사람으로 충분하고 충만함으로 만족하는 것이 바로 결혼이다. 모든 것을 포기한다니 그렇다면 이런 걸 왜 하느냐 싶지만 인간이 무지한 게 이거 하나뿐이었던가. 한 사람의 아내가 되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좋은 일, 기쁜 일이라고 착각하며 시작하는 게 바로 결혼을 결심한다는 마음인 거다. 어딘가에서부터 온 이상한 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 착각 없이 온전한 이성적 생각과 경험으로 결혼을 결심했다는 사례를 나는 잘 들어보지 못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나와는 다른, 결혼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결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장이 있다면 나는 그때 조금 더 진지한 논쟁을 하고 싶다. 지금 이 글에서는 내가 생각한 결혼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결혼을 결심한다는 마음에 대해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 인간이 자신과 전혀 다른 인간을 사랑한다는 마음은 그 사랑이라 불리는 타인이 단점보다 장점이 많거나, 내가 가지고 있는 결핍을 상대으로부터 채울 수 있어서 생긴 마음이 아니라는 것이 그 결론이다. 결혼은 오롯이 당신의 삶을 내가 살겠다는 결심만이 남는 마음이다.


삶이 버겁고 힘들고 때론 예상치 못한 난관이 생각보다 더 가파를 때에도 그 모든 순간의 과정을 함께 하며 나아가겠다는 결심. 그 결심이 바로 결혼이다. 진정으로 결혼이란 것을 이루고 살아간 사람들은 그래서 갈 곳이 없다. 이 사람과 함께 만든 세상, 앞으로 만들 세상, 지금의 세상 외에는 다른 그 어떤 세상을 계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인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로 완성하는 아름다운 세상과 다시는 꿈꿀 수 없는 세상이 동시에 공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바로 결혼이기 때문이다.


내가 남편과 싸운 이후에 가야 할 곳이 없는 현실은 이런 의미에서 언제나 옳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관계들은 깨지고 난 다음에 위로를 모으기에 급급하다. 관계가 깨지고 나서의 상처받은 마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주기를 원하고, 슬픔을 토로하며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함께하기를 원한다. 물론 위로와 공감 그리고 조금 더 넓은 포용은 우리가 사는 각박한 세상을 조금 더 너그럽게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보는데 그것은 바로 가장 처음의 결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다. 우리 사회의 청춘들이 관계를 고민할 때, 나아가 결혼에 대해 고민할 때 그 시작하는 마음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일단 부딪혀 봐,라고 말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결혼을 생각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개개인의 삶의 가치가 얼마나 존재로 풍요로운지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사는 방법이 옳아, '라는 말로 강요하거나 다그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과 옳은 가치관으로 단호하게 삶의 의미를 전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한 우리 사회다. 이런 결혼의 선배가 많아졌으면 하는 거다. 좁은 집단 속에서 단순히 이슈를 만들어 내고 싶은 고민 상담이 아닌 애정 어린 눈빛과 목소리로 앞으로의 누군가의 미래와 누군가의 글쓰기, 또는 누군가가 하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것은 반드시 한 개인의 삶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향력으로 발휘될 것이라 생각한다.


언젠가 동물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글을 쓴 적이 있다. 나의 글을 읽었던 어느 선배는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말했다. '그럼 자기는 고기를 먹지 않겠네? 그 베치테리언인가 그래?'  그 선배뿐만이 아니었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도 이런 나의 생각을 조금은 불편해했다. '개는 개야, 동물은 동물이야.' 어떤 이들은 말했다. '집에서 키우는 개 하고, 가축은 엄연히 다르지, 그게 이론적으로도 그렇다던데?' 어디에 근거를 둔 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들은 단호했고, 평소에는 누구에게도 좋은 사람들이었다. 또 한 번은 일로 만난 사이에서 조금 친해져 사적으로도 몇 번 식사를 했던 동료는 말했다. '돈이 되지 않는 일이면 쉽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렇게 글을 쓰는 건 수익성 면에서 좀 떨어지잖아요. 많이.' 동물에 대해 쓴다는 말은 주변 사람들에게 꽤 오래도록 이슈가 되었다. 나의 삶에 관심이 다들 이렇게 많은 줄은 몰랐지만 그 관심을 어떻게 보답해 줘야 하나 고민이 크다. 내가 동물에 대해 글을 쓰고 싶다고 이야기를 했던 건 마치 결혼을 앞둔 신부의 마음과도 같았다. 앞으로 나는 이런 삶을 살고 싶은데, 당신의 응원과 진심 어린 격려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먼저 그 길을 갔던 사람이 있다면 그냥 세월이 흐른 대로 흘러간 시간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 길이 험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동물에 대해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던 그 동기에 대해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주고 지금도 소외된 생명과 울부짖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혼과 마찬가지. 동물을 대변하겠다는 마음 또는 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고 싶다는 결심은 앞으로의 삶에 대해, 나아갈 방향성과 행보에 대해 조금 더 좁은 길을 가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나는 결혼을 통해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이며, 남편도 나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리 싸워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동물에 대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며 그들을 점점 알아가면서 나는 나의 필요를 떠올린다. 그들에게 어쩌면 내가 필요한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충만함. 그리고 나에게 그들의 존재가 또한 전적으로 필요하다는 안정감. 존재로 서로를 인정하는 우리는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왜곡된 사랑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필요와 쓸모로 함께하고 있다. 그렇기에 어쩌면 내가 동물에 대해 쓰겠다는 마음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미 있던 것에 대해 그저 나열하는 일.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아 온전하게 바라보기를 애쓰는 일.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태어나고 살고 죽는 지구의 모든 움직임을 받아들이는 일. 우리는 겨우 이것들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생각해 보라. 그저 그런 이 일들이 온전하게 움직이지 못한 채 한쪽으로 치우친 세상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가. 지금도 반복되고 있을 어떤 생명들의 소리 없는 죽음과 공포에 떠는 삶들은 고작 이 자연스러운 순리대로 살고 싶을 뿐이다.


공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을 편파판정이라고 한다. 남편과 싸운 후 뭔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잘잘못을 따진다. 한쪽으로 치우쳐 우리 가정에 올바른 질서가 무너질 것 같기 때문이다. 보통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거나 한쪽의 이기심으로 시작된 갈등이 이런 사태까지 불러오는데, 조금 언성이 높아졌더라도 편파판정으로 마무리하지 않으려 애쓴다. 감정을 뒤로하고 문제를 돌이키며 다시금 질서를 회복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그 처음 마음을 다시 회복한다. 인간사는 편파판정에 분노한다. 질서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기로 선택한 이 길은 세상의 수많은 편파판정에 분노하며 결심한 길이다. 지금도 그 결심에 누군가는 비웃지만 결과적으로 비뚤어진 세상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말들에 흔들릴 것 같으면 시작하지도 않았다. 다시 가을이 왔고 겨울이 올 것이다. 내가 겨울을 알고 있는 이유는 겨울을 내내 지나왔었기 때문이다. 그저 함께 겨울을 걸어가 줄 사람들이 내가 가고자 하는 이 길에 더 많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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