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아버지들의 삶의 시스템 재정비, 합창에서 길을 찾다
대한민국의 베이비부머 세대는 1차(1955~1963년생)와 2차(1964~1974년생)로 구분된다. 특히 2차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는 그 규모 면에서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들은 2024년부터 정년(만 60세)에 순차적으로 진입하며, 약 954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향후 11년에 걸쳐 대거 은퇴할 예정이다. 이는 성장률 하락, 고령 자영업자 수 증가 등 다양한 사회경제적 파장을 예고한다.
이처럼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은퇴 당사자들 또한 평생을 가족과 직장이라는 두 개의 명함에 헌신했지만, 직장에서의 역할 상실은 곧 자존감의 하락으로, 갑자기 주어진 시간은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IAM교육연구소 임 준 박사는 이 현상에 대해 “은퇴는 삶의 시스템에서 '직업'이라는 중앙 엔진이 멈추는 것과 같다. 이 공백을 메울 새로운 동력 장치를 마련하지 못하면, 심리적 공백과 정체성 위기가 발생하며 시스템 전체가 불안정해진다”고 진단한다. 본 기사는 두 합창단(프랜들리 남성합창단, 보성교우 합창단)의 사례와 임 박사의 전문가 조언을 통해, 은퇴 후 취미 활동이 단순히 여가 선용을 넘어 삶의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재정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핵심 엔진임을 탐구하고자 한다.
삶의 시스템 재가동: 위기를 돌파하는 보조 동력 장치
공학과 교육학의 융합연구 전문가인 임 준 박사는 취미 활동을 '보조 동력 장치' 구축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는 은퇴 후 심리적 불안정의 원인을 '시스템적 입력, 처리, 출력의 부재'에서 찾는다. 직업이라는 중앙 엔진이 멈추면, 규칙적인 시간표(입력)와 몰입 활동(처리), 그리고 유의미한 결과물(출력)이 사라지면서 삶의 시스템이 구조적으로 붕괴된다는 것이다. 이때 취미 활동은 고장 난 중앙 엔진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동하며 삶의 의미와 리듬을 재공급하는 핵심 장치가 된다. 극한의 위기 상황에서 합창단 창단을 결심한 프랜들리 남성합창단의 김난식 초대 단장의 사례가 이러한 시스템 재가동 과정을 극적으로 입증한다.
“저는 이전부터 노래 부르고 듣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은행이 영업정지가 되고,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잊고 지내던 그 시간들과 목표가 생각났습니다. 다시 옛 직장동료에게 연락해서 합창단을 한번 만들어보자 제안하게 되었고, 그 친구가 합창단의 가장 중요한 역할인 지휘자도 모셔오게 되면서 전문적인 합창단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프랜들리 남성합창단, 김난식 초대 단장)
김 단장처럼 주체적인 입력(노력/연습)-처리(몰입)-출력(공연/봉사)의 반복은 은퇴 후 삶의 시스템을 이전보다 유연하고 견고하게 업그레이드한다.
'쉽게 꺼지는 만족감'을 넘어선 질 높은 성취
임 박사는 직장 생활의 성취가 보상에 의한 ‘일시적인 만족감’인 반면, 봉사나 공동체 활동과 결합된 취미 활동은 ‘지속 가능한 희열’을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공연 중 특히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고, 환우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벅차고 감동적인 감정을 많이 느낍니다... 직장 생활에서 목표를 달성해서 성과급과 상여금을 받았을 때 분명 좋지만 쉽게 꺼져버리는 만족감이라면, 합창단 활동을 통해 얻는 만족감은 계속해서 살아있는 것 같이 느낍니다.”
(프랜들리 남성합창단, 김난식 초대 단장)
이러한 이타적 성취는 심리적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높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직장인 시절의 성취가 '역할 수행을 통한 보상'이었다면, 합창단 활동을 통한 성취는 '자발적 기여를 통한 존재 가치 확인'으로 전환된다. 이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인 '의미 추구'를 충족시키며, 은퇴로 인해 잃기 쉬운 삶의 효능감과 자존감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는 심리적 기제가 된다.
교육학적 해석: 성인 학습을 통한 '역량 재정의'
은퇴 후 취미를 단순한 여가가 아닌 '지속적인 자기 학습'이자 '역량 재정의'의 과정으로 본다고 임 박사는 강조한다. 합창단에서 호흡법과 발성법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은 정체성 위기를 겪는 은퇴 세대에게 "나는 여전히 성장하는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현재 합창단 활동과 일반 동호회 모임은 확연히 다릅니다...프랜들리에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호흡법, 발성법을 모두 배우고 노래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발전도 보게 되고 전문적인 지식들도 쌓이게 됩니다. 저의 경우, 어디에서든지 노래할 수 있는 자신감과 노하우를 많이 얻게 되었습니다.”
(프랜들리 남성합창단, 김난식 초대 단장)
“저희 합창단은 전문 지휘자와 반주자를 영입하여 음악을 만들어갑니다. 연주회를 준비하고, 무대에 서서 노래할 때 열정이 넘칩니다...선배님들이 노래를 연습해 오셔서 불러주시면 호응해드리고, 박수쳐드리는데, 그러면서 자존감이 많이 상승하셨다는 분도 계십니다.”
(보성교우 합창단, 김희선 총무)
합창단 활동은 전문 지휘자와 반주자로부터 체계적인 음악 교육을 받으며 진행된다는 점에서 단순한 친목 모임을 넘어선다. 임 박사는 이를 '구조화된 성인 학습(Structured Adult Learning)' 모델로 해석한다. 이전 직업 역량이 필요 없어지는 은퇴 이후, 새로운 분야에서 전문성을 획득하고 예술적 역량을 계발하는 과정 자체가 강력한 자아 효능감을 제공한다. 개인이 노력의 결과로 복잡한 화음을 완성하거나, 어려운 곡을 소화해내는 경험은 정체성의 공백을 메우고, "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을 가졌음을 스스로 증명하게 한다.
그는 “이러한 성인 학습은 전문성과 예술적 역량을 동시에 키우며, 자존감과 성취동기를 회복시키는 교육학적 핵심 기제가 된다”고 분석하며, "이는 은퇴를 앞둔 2차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금융 준비만큼이나 '인지적-심리사회적 준비'가 필수적임을 시사한다. 즉, 퇴직 전에 이미 삶의 시스템을 재정비할 새로운 학습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계의 확장: 세대를 아우르는 끈끈한 지지망
합창단은 직장 명함을 벗어던지고 '아버지 세대'라는 동질성만으로 소통하는 건강한 공동체이다. 보성교우 합창단은 57세부터 82세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견고한 심리적 지지망을 형성한다.
“저희 합창단의 최고령 선배님은 82세로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합니다. 평균 연령이 69세 정도 됩니다. 아버지 세대를 넘어 할아버지 세대까지 함께 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가 합창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꾸준히 모이고 있습니다.”
(보성교우 합창단, 김희선 총무)
이러한 끈끈한 관계는 은퇴 세대의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지속성을 위한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합창단은 직장 중심의 경직된 수직적 관계가 아닌, 순수한 취미와 동질감(‘아버지 세대’라는 공통 경험)에 기반한 수평적 공동체를 형성한다. 이러한 관계는 단순한 친목을 넘어선다. 임 박사는 이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축적 과정으로 분석한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란 사회 구성원들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자발적으로 협력하고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 등의 무형 자원을 의미한다. 합창단처럼 정기적으로 만나 공통의 목표(공연)를 추구하는 모임은 이 사회적 자본을 강화하는 이상적인 형태이다.
그는 다문화 청소년 연구 경험에 비추어, "가족 지지가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듯, 은퇴 후 비혈연 공동체에서 얻는 정서적 지지와 상호 존경은 노년층의 심리적 웰빙에 필수적인 '제2의 부모 지지망'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합창단의 정기적이고 구조화된 만남은 사회적 고립을 방지하는 물리적 앵커(anchor)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동년배들끼리 은퇴의 어려움과 노년의 삶의 굴곡을 나누면서 '정서적 상호 조절(Emotional Co-regulation)'을 경험한다. 이는 기존의 직업적 정체성을 관계적 정체성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고령화 사회에서 개인이 건강한 정신 건강을 유지하고 삶의 효능감을 지속하는 데 있어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IAM교육연구소 임 준 박사는 합창단 활동의 궁극적 가치를 '총체적 삶의 시스템 복원'에서 찾는다. 은퇴 후의 삶은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중앙 엔진(직업)의 상실로 인해 심리적 공백과 정체성 위기가 발생하는 불안정한 상태이다. 임 박사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합창단 활동의 메커니즘을 다음과 같은 3단계 선순환 구조로 정리하여 제시한다.
1단계_리듬 및 구조 복원 (공학적 관점)
합창단의 정기적인 연습 및 공연 일정은 은퇴 후 느슨해진 삶에 주체적인 '삶의 리듬'과 '시간 구조'를 재설계한다. 이는 멈춰버린 중앙 엔진 대신, 주체적인 '입력(연습) → 처리(몰입) → 출력(공연)'의 흐름이 명확한 '보조 동력 장치'를 성공적으로 가동시키는 핵심 기제가 된다.
2단계_자기 관리 및 효능감 증진 (개인 교육학적 관점)
활동 참여를 위해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시간 약속을 철저히 지키는 과정 자체가 강력한 자기 관리의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 합창단 활동에서 체계적인 음악 교육(구조화된 성인 학습)을 통해 새로운 예술적 역량을 획득하며 '나는 여전히 성장하는 존재'라는 효능감을 재확인하게 된다. 이는 '나를 위해 스스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자존감 회복으로 직결된다.
“합창단 활동에선 제 몸이 무기입니다. 몸을 건강하게 해서 참석하면 되는 것입니다. 합창단 활동을 위해서라도 몸을 건강하게 관리하시는 선배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또 시간 약속도 철저히 지키십니다.”
(보성교우 합창단, 김희선 총무)
3단계_ 사회적 자본 강화 및 의미 추구 (사회 교육학적 관점)
동년배 공동체 활동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자본'과 상호 존경은 고립을 방지하는 '제2의 부모 지지망'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정서적 지지는 새로운 학습을 통한 '성장하는 자아'와 결합하여, '쉽게 꺼지는 만족감'을 넘어선 '지속 가능한 삶의 의미와 희열'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은퇴 후 심리적, 사회경제적 파고를 겪는 베이비부머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미래 걱정이 아니라, 일상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아를 재정의할 수 있는 나만의 '건강한 무기'를 마련하는 실천이다. 누구나 부를 수 있고, 음치는 교정할 수 있는 합창과 같은 취미는 곧 제2의 인생을 위한 '새로운 명함'이 되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은퇴 아버지들의 열정을 담은 프랜들리 남성합창단의 세 번째 연주회가 곧 무대에 올려질 예정이다.
일시: 11월 18일 화요일 오후 7시 30분
장소: 도원동교회 (용산구 새창로 12길 11-8)
주제: "우리들의 이야기"
출처 : 브랜드뉴스(BRAND NEWS)(https://www.ibrandnews.com)
https://www.ibran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