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ker가 되고 싶은 소심한 Guesser
회사 생활을 4년 정도 해오면서 늘 받아왔던 피드백이 있다. 바로 'No'를 못한다는 점이다. 이게 내 성격 문제인 줄 알았는데, 마침 오늘 팀에 있는 매니저가 재미있는 이론(?)을 알려주었다.
당신은 Asker (묻는 자) 인가?
Guesser (추측하는 자)인가?
우린 두 종류로 나뉜다. Asker (묻는 자)와 Guesser (추측하는 자)이다. 직장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예시를 들어보겠다. 내 보스가 어느 날 나를 불러서 내일까지 급한 업무 하나를 끝내달라고 부탁했다. 그 업무에는 까다로운 조건들이 많았고 업무가 이미 쌓여있는 나는 고민을 하게 된다. Asker는 그 업무가 어느정도로 급한지 혹은 현실적인 타협점을 찾기 위해 여러 질문을 되물어본다. 반면 Guesser는 이 업무를 받자마자 이건 내 보스의 '기대치'라고 생각하고 알겠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어떤 쪽이겠는가?
• 누구에게 부탁을 받았을 때 'No'를 잘 못함
•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하고 있음
• 매니저가 나한테 어떤 일을 시켰을 때에는 다 이유가 있을거라 생각함
• 내 질문이 바보같은 질문일까봐 그냥 조용히 있을 때가 많음
• 내가 뭘 부탁하면 상대방에게 번거로울까봐 그냥 내가 하게 됨
• 누가 귀찮은 업무를 부탁하면 해 주긴 하지만 짜증남
• 내가 무엇을 물어봤을 때 거절당해도 사실 괜찮음
• 내가 상대방의 부탁을 거절해도 너무 신경 쓰이거나 딱히 미안하지 않음 (일이고 이성적으로 그 결정이 맞으니까)
• 내가 예상하지 못한 만일의 상황을 고려해서 우선 물어봄
지금쯤이면 눈치를 챘겠지만, Guesser는 상대방에 의도/감정에 대한 추측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에 옮긴다. 좋게 말하면 눈치가 빠르고 날카롭지만 안 좋게 말하면 과하게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가끔은 혼자 답답해하거나 끙끙 앓는다. 반면 Asker들은 다이렉트하고 단순하고 투명하지만 가끔 눈치가 없거나 버릇없다고 오해받기도 한다.
주로 아시안 사람들은 Guesser들이 많다고 한다. 사실 어떤 성향이 더 좋고 나쁜건 없다. 다만, 나와 일하는 상대방이 나와 다른 성향이었을 때 주로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다. 특히나 직장생활에선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설득 노하우를 터득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Asker와 Guesser들의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커뮤니케이션 해야 한다.
내가 만약 Guesser라면 모든 것을 과하게 해석하지 말자. Asker가 부탁을 했을 때 거절해도 그 사람에겐 no problem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미안한데, 사실 거절 당한 사람은 괜찮다는 말이다. 주로 그들이 여러 부탁/질문을 했을 때는 '혹시나', ‘확인차’ 혹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Guesser라면 일할 때 더 많이 질문을 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 물론 다르겠지만 가끔 상대방은 큰 의도 없이 물어보거나 부탁할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도 명확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때는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꼭 이 방식대로 해야하는 이유가 있는지, 이것이 정말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일인지를 꼭 물어보고 재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질문을 했는데 상대방이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팡질팡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함께 디렉션을 다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만약 Asker고 상대방이 Guesser라면, 내가 무언가를 부탁할 때 1) 내가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 2) 언제까지 원하는지와 3) 배경 설명을 꼭 해줘야 한다. Guesser는 자기 멋대로 의도를 추측하기 때문에 '뭐 아직 이해는 안 가지만 그래도 다 계획이 있어서 시키는거겠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근데 막상 Guesser가 열심히 부탁을 다 들어줬는데 그렇게 유의미한 성과가 안 나온다면 오히려 서로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무슨 말을 할 때는 꼭 나의 의도와 배경을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업무 상 Asker 성향이 강한 Product Manager들과 일할 기회들이 많다보니, 이번 이론이 Guesser인 나에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이제 혼자서 과하게 해석하고 오해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