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차례의 소동이 지난 후 당장에 갈 곳이 없던 나는 21일 하루만 친구가 있는 협재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곳은 내 여행 메이트가 스태프로 지내는 곳이었으며, 그 기회로 친구가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의 사정을 들은 그곳의 직원분들께서는 나를 살갑게 대해주셨다. 잘 나왔다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잘했다고 말씀해주셨다.
친구의 스태프 숙소로 가서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누웠다. 그런 나를 보며 오히려 친구가 더 열심히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를 찾았다. 정작 나는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아무 생각없이 있었는데, 친구는 그런 내가 걱정되었는지 쉬지 않고 게스트하우스를 찾아봤다. 그러던 중 ‘끌림 365’라는 곳이 올라왔고, 구하는 날짜가 나와 딱 맞아떨어져서 그곳에 지원을 하게 되었다. 문자를 넣음과 동시에 전화가 왔고, 전화 내용은 짧고 간결했다.
끌림-“지금 제주도에요?”
나-“네, 저번 주부터 제주도에 있었어요.”
끌림-“내일부터 근무 가능해요?‘
나-“네! 가능해요!”
끌림-“수건이랑 슬리퍼만 갖고 오면 돼요.”
나-“앗... 수건은 없는데...”
끌림-“그럼 그건 제가 사드릴게요. 내일 봬요”
나-“네! 감사합니다~”
끝.
정말 간결한 대화였지만 이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나의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편안해짐과 동시에 기분이 좋았고, 눈덩이처럼 커져만 같던 걱정들이 거짓말처럼 사르르 녹아버렸다. 내가 무슨 걱정을 했는지 한순간에 잊을 수 있었고, 나로 인해 같이 걱정하던 친구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마웠다. 그렇게 한숨 돌리던 찰나 끌림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끌림-“너무 급하게 부른 것 같아서, 혹시 그다음 날 올래요?”
나-“아니요! 괜찮아요:)”
끌림-“아 그래요? 그럼 그냥 내일 와요~”
나-“네! 내일 봬요~”
순간 무슨 일인가 싶어 전화를 받았는데, 알고 보니 나를 배려해준 전화였다. 그러나 당장 다음날부터 갈 곳이 필요했던 나는 그 배려를 거절했다. 전화를 끊은 후 끌림의 블로그에 들어가 보았다. 블로그를 보니 나의 설렘은 더해져만 갔다. 꿈꾸던 제주 생활이 펼쳐질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진 속의 스태프들이 너무 행복해 보였다. 그곳에 내가 간다는 현실이 꿈만 같았고, 바로 다음 날 그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22일 아침 여느때와 같이 평화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친구를 만나 협재 바다를 바라보며 잔잔한 노래를 들었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배가 고파질 때쯤 점심을 먹으러 ‘빠레뜨 한남’을 갔다. 한남동에서도 가보지 않은 곳을 제주도에서 가게 된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근처라는 이유로 가게 된 곳이었고, 음식 맛이 기억에 남는 곳은 아니었지만, 탁 트인 협재 바다를 보며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평범했던 점심을 먹고, 전에 방문했던 ‘쉼표’라는 카페에 갔다. 이름과 걸맞게 쉬기 좋은 곳이고, 전에도 방문했던 적이 있던 곳이라 친숙했다. 비양도를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곳이었기에, 음료를 시키고 2층으로 올라가 협재해변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했다. 흐린 날씨로 인해 처음에는 꼭대기만 안개로 살짝 가려져 있던 비양도가 어느샌가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른한 오후를 맞이하고 사라지는 비양도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기고 나니 어느샌가 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맡겼던 짐을 가지고 택시를 불러 끌림으로 향했다. 전과는 다르게 걱정 반 기대 반이 아닌, 설렘과 기대만으로 가득했다. 택시 안에서 또 한 번의 전화가 왔다.
끌림-“어디쯤이에요? 얼마나 걸려요? 우리 지금 다 같이 카페 가려고 하는데 얼마 안 걸리면 기다렸다가 같이 가려고”
나-“저 10분 정도 걸려요!”
끌림-“알겠어요. 조심히 와요. 기다릴게요.”
나-“네! 알겠습니다.”
또 한 번의 전화가 나를 설레게 했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는 이곳에서 행복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기대되었고,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