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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은 작가 imkylim Oct 07. 2024

삶다, 끓이다


  S; 선생님! 삶다, 끓이다 뭐가 달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다 보면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 나올 때가 있다.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럽지만 외국인에게는 헷갈리는 표현들. 그럴 때 나는 칠판을 지우며 설명할 방법을 잽싸게 떠올리곤 한다. 영어로는 둘 다 boil, 하지만 한국어에서는 엄연히 다른 ‘삶다’와 ‘끓이다’.     


  T:  비슷하게 느껴지지요, 물에 재료를 넣고 열을 가하니까요. 그런데 좀 달라요. 여러분, 달걀을 삶아요. 삶은 물도 마셔요, 아니면 달걀만 먹어요? 

  S: 달걀만 먹어요.

  T: 옥수수도 물에 삶아요. 옥수수는 어때요? 

  S: 옥수수만 먹어요. 

  T: 좋아요, 그럼 라면은 삶아 먹어요, 끓여 먹어요? 

  S: 끓여 먹어요.

  T: 라면 면만 먹어요, 아니면 국물도 먹어요? 

  S: 국물도 먹어요.

  T: 계란국, 된장국, 김치찌개, 미역국을 끓여요, 건더기만 건져 먹어요, 아니면 국물도 먹어요?

  S: 국물도 먹어요.     


  여기까지 설명하니 다들 이해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호했던 내용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 기뻐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는 건 정말이지 즐겁다. 굳이 구별해서 기억했다기보다는 살면서 저절로 터득했던 삶다와 끓이다. 나 역시도 그 차이를 이제야 머리에 정리한 듯 뿌듯했다.     


  그런데 사회통합프로그램 중급 1, 8과 익힘책 지문에 비빔국수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었다. ‘1. 냄비에 국수를 4분 정도 넣고 끓이세요, 2. 끓인 국수를 얼음물에 잠시 담그세요, 3. …’ 국수를 찬물에 헹구니 ‘삶으세요, 삶은’으로 하는 게 나을 듯한데 ‘끓이세요, 끓인’이라 쓰여 있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도 삶다로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덧붙였다.     


  수업이 끝난 뒤 혹여나 내 설명에 미비한 점이 있을까 싶어 사전을 찾아봤다. 삶다는 물에 넣고 끓이다, 끓이다는 액체를 몹시 뜨겁게 해 소리를 내면서 거품이 솟아오르게 하다, 라 적혀 있었다. 사전 의미대로 설명했다면 외국인들이 더 어려워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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