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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놀@조치원

by 괜찮은 작가 imky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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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화를 주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하루 만에 또 그런 일이 생기자 혹시 갱년기 감정 기복인가 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지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주며 감정을 폭발시키고 나면 내 마음이 더욱 불편해지는 데다 부끄럽고 창피하니까. 일단 그럴 때면 심호흡을 하자고, 마음이 가라앉을 시간을 벌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항상 참아? 살아보니까 그냥 사람 좋게만 굴면 나를 호구로 보던데? 하는 미성숙한 울분도 치고 올라왔다.


다음 날 아침까지 영 찜찜했다. 반드시 해야 할 과제를 미루고 있는 기분이랄까. 조치원에 일이 있었는데 약속보다 일찌감치 가서 기분 전환을 좀 하기로 했다. 혼자 점심으로 초밥을 먹으며 그림을 그리고 글도 조금 끄적였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서도 그랬다. 문득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예전에 아이들 키우며 직장 다니던 때, 딱 한 번이긴 하지만 야근을 핑계로 집 대신 카페를 찾은 적이 있다. 생각보다 이른 밤에 일이 끝났는데 귀가하다 눈물이 날 것 같아 차를 돌린 거였다. 퇴근해도 육아와 집안일이 기다리던 때였고 혼자 가만히 쉬는 시간이 간절했었다. 카페 구석에 숨듯이 앉아 자그마한 메모지에 마구 내 감정을 쏟아 적었다. 그러고는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여 집에 들어갔던 기억.


손을 바삐 놀리며 감사한 일들을 더 적었다. 부모님 건강히 살아계시고, 남편과 자식이 있고, 나를 지지해 주는 사람이 있고, 마음 맞는 친구가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언행으로 나에게 색다른 시각을 맛보여주는 이도 있다…. 그렇게 죽 적다가 감정 기복의 감사한 면까지 쓰게 됐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심장이 마구 뛰고 얼굴에 열이 오를 만큼 분노가 끓는지 헤아려볼 수 있다는 점. 그랬다. 감정 기복에도 감사한 면이 있었다. 잘만 다스리면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열쇠가 될 법했다. 그저 억누르는 게 아니었다.


지나온 시간을 통해 나의 장단점, 상처와 배워온 것을 토대로 남은 세월 현명하게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가 있었음에 다시 한번 감사를. 감정 기복을 다스려야 할 명분과 방법을 찾아낸 것에 깊은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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